[뒤끝작렬]"출산 못해 철 안든다"는 이낙연 의원님께

이낙연 "남자는 출산 경험 없어 나이 먹어도 철 안 든다" 발언 논란
野, 일제히 비판 "여성 우대하는 척 출생과 육아 책임을 여성에 전가"
외국에선 '출산' 스펙 내세웠다 총리직 뺏기기도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안녕하세요, 이낙연 의원님. 저는 서울에 거주 중인 30대 미혼 여성입니다.


"남자는 (출산) 경험 못 하기 때문에 나이가 먹어도 철이 안 든다"고 하신 의원님 말씀에 상처받은 비(非)출산 여성 중 한 명입니다.

좋은 뜻으로 한 말씀인 줄 알지만, 지금부터 왜 의원님 말씀에 수많은 여성이 "철도 안 들었는데 왜 대선에 나오느냐"는 날 선 반응을 보였는지 몇 자 적겠습니다.

민주당의 주요 표밭이기도 한 대한민국의 2030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 중에 "남자는 애 아니면 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남자는 애라서 육아도, 집안일도 다 못 한다는 핑계를 은연중에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이 "출생을 경험한 여성을 우대하는 척하면서 출생과 육아의 책임을 여성에게 모두 전가하며 아빠로서의 역할, 책임, 경험을 경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의원님을 비판한 것도 이 맥락입니다.

또 "인생에서 가장 크고 감동적인 변화는 소녀가 엄마로 변하는 순간"이라고 하신 데서도 뭇 여성들은 착잡함을 느꼈습니다. 출산의 신성시는 결국 출산의 의무화로 이어졌고, 이는 비출산을 죄악시해 여성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으로 귀결됐기 때문입니다.

의원님, 영국에서는 출산의 감동을 스펙으로 내세웠다가 총리직을 뺏긴 사례도 있습니다. 영국 보수당 차기 당대표 겸 총리 후보로 선정됐던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부 차관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경선에 이점으로 작용한다"며 "이 나라 미래에 실질적 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해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경쟁 후보였던 테레사 메이 당시 내무장관에게 총리직을 내줘야 했습니다.

메이 전 영국 총리뿐 아니라 독일의 최장수 총리인 앙겔라 메르켈, 호주의 첫 여성 총리인 줄리아 길러드도 출산 경험이 없는데 이들에게 '철없다'고 할 순 없겠지요.

다음으로 점점 더 많은 여성이 비출산을 다짐하는 까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대접과 배려를 받으며 그 변화(출산)를 겪고 싶은 지극히 당연한 욕구'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실상은 대접도 배려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19년 경력단절여성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해도 직장 복귀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전체의 43.2%밖에 되지 않습니다. 응답자의 약 35%는 결혼, 임신·출산, 양육, 가족돌봄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했다고 답했고 재취업까지는 평균 7.8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일자리의 질과 임금이 떨어진 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 중 일부로 부족한 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여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정해진 공식이 없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모든 여성이 자신과 가족을 위해 내린 선택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녀'도 '엄마'도 아닌 CBS 박희원 기자 올림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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