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홍콩보안법 제정 방침을 밝힌 것은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 전날인 지난달 21일 밤이었다. 그로부터 40일 만에 법제정의 마지막 관문인 전인대 상무위에서 투표에 참여한 162명 전원일치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 '독립' '해방' 외치면 감옥갈 각오해야
이제 홍콩에서 시위를 하면서 기물을 파손하는 등 폭력행위를 하거나 '홍콩 독립'이나 '홍콩 자치'를 외치면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흔들면서 도움을 요청해도 마찬가지다.
형량도 무겁다. 2009년부터 마카오에서 시행되고 있는 보안법의 최고 형량이 30년 이상이고 본토 형법에서 국가전복 및 분열 행위에 대해 종신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만큼 무기징역 등의 중형이 예상됐는데 그대로 되었다.
보안법의 소급 적용 여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관련 조항이나 문구가 들어 있으면 조슈아 웡 등 홍콩 민주화 운동을 대표하는 인사들이 과거 행위로 인해 처벌받을 수 있다.
◇ 홍콩시위 지켜보며 칼 갈던 시진핑
홍콩보안법은 2003년에 홍콩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다 시민들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무산된 바 있다. 한차례 좌절된 보안법이 중앙정부에 의해 강력한 법안으로 살아난 것은 지난해 홍콩시위를 묵묵히 지켜보며 칼을 갈던 중국의 1인자 시진핑 주석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6월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열렸던 송환법 반대집회는 최대 200만명이 참가하면서 베이징을 위협했다. 규모뿐만 아니라 '홍콩 독립', '홍콩해방' 등의 구호가 등장했고 중국의 상징인 오성홍기를 훼손하는 등 베이징에서 볼 때 그냥 놔둘 수 없는 폭탄이었다.
홍콩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지난해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전현직 지도부 사이에서 심도있게 논의되고 공감대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크다. 베이다이허 회의는 중국의 전현직 지도부가 휴양지인 베이다이허에 모여 향후 정책 방향과 노선을 토의하는 회의다.
그러나 홍콩사태에 대한 시진핑 주석의 공개적인 발언이 나온 것은 베이다이허 회의로부터도 3개월이나 흐른 지난해 11월 4일이다. 시주석은 국제수입박람회 참석을 위해 방문한 상하이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불러 "홍콩 '수정안 풍파가 이미 5개월째 지속하고 있다“며 “폭력과 혼란을 제압하라"고 지시했다.
시 주석은 이보다 20일 정도 앞선 10월 13일 네팔을 방문한 자리에서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든 어떤 사람들이 분열을 기도하더라도 몸이 가루가 돼 죽는 결과밖에 없을 것"이라고 강한 발언을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시 주석은 12월 16일에도 지방선거에서 참패한 캐리 람 장관을 다시 불러 재신임하면서 "홍콩 사회의 여러 분야가 단결해서 홍콩의 발전을 이끌고 정상 궤도 위에 다시 올려놓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올해 신년사에서도 "조화롭고 안정된 환경 없이 어떻게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있겠는가"라며 "홍콩의 번영과 안정은 홍콩 동포의 염원이자 조국의 염원이다"고 홍콩 문제를 언급했다.
◇ 코로나19처럼 홍콩보안법도 결국 시진핑이 최종 승자?
지난해 하반기에 잦았던 시 주석의 홍콩 문제 언급은 2020년 신년사 이후에는 쑥 들어갔다. 마음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벽두에 터진 코로나19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주석 뿐만 아니라 2003년 사스 공포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홍콩도 중국 지도부를 자극하는 집회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전세계의 관심이 코로나19에 쏠린 사이 시진핑 주석과 그 측근들은 홍콩보안법을 제정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치밀한 도상작전을 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초 코로나19가 중국에 확산될 당시 시진핑 주석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릴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지만 오히려 기반을 탄탄하게 만들어줬듯이 6개월 동안 지속된 대규모 홍콩시위에 이은 홍콩보안법 제정의 최종 승자 역시 시진핑 주석일 가능성이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