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열전]공익신고자를 신고한 국방부…뭐가 두렵나

'군납비리 손실금액 환수 미흡' 신고자를 안보지원사령부에서 조사
이미 언론보도된 성능 재검증 시험 결과를 '군사기밀'이라며 신고
공익신고 위축 우려 제기

※튼튼한 안보가 평화를 뒷받침합니다. 밤낮없이 우리의 일상을 지키는 이들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치열한 현장(熱戰)의 이야기를 역사에 남기고(列傳) 보도하겠습니다. [편집자 주]

대북확성기.(사진=사진공동취재단)
지난 2016년, 우리 군이 대북 심리전을 위해 약 174억원을 들여 도입한 대북 확성기 사업이 비리에 연루되는 커다란 사건이 있었습니다. 성능 평가 조건을 조작하고 부품의 단가를 부풀리는 등 여러 가지 문제가 확인돼 관련자들이 실형 선고를 받았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조금씩 잊혀져 가던 이 사건은 최근 다시금 여론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방부가 비리로 인한 국고 손실액을 제대로 환수하지 않았다며 공익신고한 제보자를 다름아닌 국방부가 '군사기밀 누설'이라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했기 때문입니다.

공익신고의 당사자는 지난 2009년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납품비리를 내부고발했다가 좌천된 뒤, 전역 후 대통령 직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조사2과장을 맡고 있는 김영수 전 해군 소령입니다.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권익위 공익신고자를 신고한 국방부…조사 과정에서 이메일 등 압수수색

대북 확성기 비리가 불거진 지 2년이 지난 2018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겠습니다. 당시 김영수 과장은 국민권익위원회에 국방부 심리전단장과 국방부 법무관리관을 상대로 부패행위 신고서를 제출합니다.

군납 업체가 군이 요구한 성능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을 납품하면서 비리로 부당이득을 챙겼기 때문에 국방부가 환수 작업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김 과장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국방부 문서 사본을 첨부했습니다.

국방부(사진=자료사진)
국방부 전력조정평가과가 대북 확성기에 대한 성능 재검증 시험을 실시했는데, 19번의 시험 중 17번이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내용의 문서입니다. 이 내용은 감사원이 감사 과정에서 확보하기도 했는데, 당시(2018년 5월) 시점에서는 언론 보도를 통해 어느 정도 알려진 내용이기도 했고요.

권익위는 이 제보를 2018년 6월 국방부로 이첩하면서 해당 문서도 함께 국방부에 넘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문서가 이번에 문제가 된 겁니다.

국방부는 성능 재검증 시험 결과가 '군사기밀'에 해당되며, 김영수 과장이 이를 누설했다는 취지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했습니다.

최근 안보지원사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김 과장은 자신의 이메일 등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집행돼, 안보지원사가 그 내용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의 업무는 군 의문사와 방산비리 등을 추적하는 일인데, 이 내용이 당사자인 국방부의 손에 들어가게 된 셈이죠.

김영수 과장은 지난달 28일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전제용 군사안보지원사령관을 사생활 비밀과 통신의 비밀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습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법적으로 군사기밀 해당은 가능, 하지만 권익위 신고 전에 다수 언론이 보도

이렇게 진행된 일련의 과정에서 지켜봐야 할 지점은 크게 2가지입니다.


첫 번째로는 김영수 전 소령이 권익위에 신고한 내용이 법적으로 '군사기밀'에 해당하느냐는 것입니다.

군사기밀보호법 2조 1항은 군사기밀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군사기밀이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아니한 것으로서 그 내용이 누설되면 국가안전보장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는 군(軍) 관련 문서, 도화(圖畵), 전자기록 등 특수매체기록 또는 물건으로서 군사기밀이라는 뜻이 표시 또는 고지되거나 보호에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진 것과 그 내용을 말한다."

즉 군사기밀이 되려면 ①세간에 알려지지 않았고 ②내용이 누설되면 국가안보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며 ③군사기밀이라는 뜻이 표시되거나 보호에 필요한 조치가 이뤄져야 합니다.

그런데 취재진이 확인한 결과, 김 전 소령이 권익위에 공익 신고를 했던 2018년 5월 이전에 이미 다수의 언론이 국방부의 '대북 확성기 성능 재검증 시험 결과'를 보도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요건은 성립하지 않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는 이 내용이 군사기밀이었을까요? 그럴 개연성 자체는 충분합니다. 군사기밀보호법 시행령의 '군사기밀의 등급 구분에 관한 세부 기준'을 보면 어떠한 내용이 어떤 등급의 군사기밀에 해당되는지를 규정하고 있는데, 3급 비밀 가운데 '종합적인 연간 심리전 작전계획'이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영수 과장 또한 자신이 권익위 신고 당시 첨부한 국방부의 시험평가 문서 가운데 2장에 3급 비밀 표시가 돼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이같은 개연성을 어느 정도 인정합니다.

(사진=연합뉴스)
◇권익위 공익 신고가 군사기밀 누설?…신뢰받는 군 되려면 태도 바꿔야

다만 여기에서 두 번째 문제가 발생합니다. 권익위에 공익 신고를 한 것이 왜 '군사기밀 누설'에 해당하느냐는 것입니다.

권익위는 활동 목적상 공무원이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다루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공직자의 비위 행위를 신고했다고 해서 그 신고자를 공무상 비밀누설 등으로 처벌한다면 당연히 아무도 공익 신고를 하지 않겠죠.

때문에 부패방지법 66조 3항은 "신고 등의 내용에 직무상 비밀이 포함된 경우에도 다른 법령, 단체협약 또는 취업규칙 등의 관련 규정에 불구하고 직무상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공익 신고 내용에 비밀이 포함돼 있더라도 그건 누설 등의 위법이 아니라는 뜻이죠.

국방부 문홍식 부대변인은 지난달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취재진의 관련 질문에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별도로 말씀드릴 사항이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조치한(안보지원사에 신고한) 그 사안에 대해서 어떤 법적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는데,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국방부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이는 쉽게 말해 형법의 '위법성 조각사유'와 엇비슷하다고 합니다. 행동이나 행위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만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되는 사유가 있어서 처벌하지 않는 경우를 뜻하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흔히 아시는 '정당방위'가 있습니다.

이걸 부패방지법 66조 3항에 대입해 보면 "신고 내용에 '직무상 비밀'은 포함돼 있지만, '공익 신고'이기 때문에 비밀 준수 의무를 위반하지 아니한 것으로 본다"가 됩니다. 문 부대변인이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 것이 바로 이런 부분, 즉 직무상 비밀인지를 따져 봐야 하기 때문에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했다는 얘기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방부의 처사가 적절한 것은 아닙니다. 일단 권익위는 장관급의 정무직 공무원(권익위원장)이 통제하는 정부 기관입니다. 국방부의 의혹을 권익위라는 또다른 정부 기관에 신고하는데 이를 과연 '누설'이라 볼 수 있을까요.

대북확성기.(사진=사진공동취재단)
대북 확성기 비리는 당시 언론을 통해 처음 문제가 제기됐고, 이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대규모 비리가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관련자들이 처벌을 받은 사건입니다. 국민이 낸 세금이 이런 비리로 낭비된 만큼, 국방부는 이를 회수할 의무가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국방부가 자신들의 행정상 미비한 점을 권익위에 신고한 공익신고자를 산하 부대인 군사안보지원사령부에 신고한다면, 이것 또한 또다른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합니다. 이러한 일이 앞으로 계속된다면, 그렇지 않아도 제보자 색출이 흔히 거론되는 국방 분야에서 과연 누가 공익을 위한 내부 제보를 하려고 할까요.

권익위 또한 이런 상황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권익위는 2018년 5월 김 과장의 신고서를 접수한 뒤 여기에 첨부된 자료를 함께 국방부로 이첩했는데, 문제는 공익신고자의 신원이 드러날 여지가 있거나 신고자가 원하지 않는 경우 해당 자료를 이첩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권익위는 김영수 과장의 동의가 없었는데도 국방부로 해당 자료를 이첩했고, 현재는 담당자가 이미 퇴직했다는 이유로 당시 왜 그랬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익위가 국방부에 정식으로 문제 제기를 해서 국방부의 판단을 재검토하게 하는 등 신고자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김 과장은 이야기합니다.

국방 분야의 비리가 드러날 때마다 국방부가 내놓는 공식 입장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일벌백계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공익신고자를 '군사기밀 누설'로 문제삼은 것을 보면, 국방부의 그러한 '다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는 큰 의문이 듭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