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는 이 부대에서 근무하는 최모 상병이 국내 한 신용평가업체 부회장의 아들이라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었고, 후자는 여단장이 병사들에게 폭언을 했다는 의혹이죠.
공군과 육군은 각 군 본부 주관으로 감찰 조사를 진행했는데 '황제 복무 의혹'의 경우 일부 사실로 드러난 것들이 있었습니다. '여단장 갑질 의혹'은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이고요. 둘 모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내부 폭로라는 공통점도 있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국민과 언론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입니다. 사회의 여러 부조리들이 폭로돼 청와대가 직접 관심을 가지고 보면서 다시금 여론이 이를 지켜보게 된다는 점은 그 자체로도 주목할 만한 현상인데, 이것이 민간뿐만 아니라 군대로도 확대된 셈이죠.
일각에서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무슨 군대 신문고냐"는 얘기도 나오곤 합니다. 1303 국방헬프콜 등 군 내부 부조리를 신고할 방법이 많은데 왜 외부에 이를 폭로하냐는 이야기죠. 청원을 올리려면 휴대전화 등 디지털 기기가 필요하게 마련인데, 심지어는 "휴대전화까지 사용할 수 있는 등 요즘 병사들이 군기가 빠져서 그렇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도 들려옵니다.
군 내외의 일부 이런 시각과 달리 주무부처인 국방부의 판단은 다른 것 같습니다. 국방부는 26일 정경두 장관 주재로 군인복무정책심의위원회를 열어 시범적으로 실시되고 있던 '일과 후 병 휴대전화 사용'을 7월 1일부터 전면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국방부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연구 결과를 포함해 일선 장병들과 군인복무정책 심의위원회 민간위원, 병영생활전문상담관들의 의견 등을 기초로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이 복무적응과 임무수행, 자기계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지난 2월 코로나19 군내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휴가와 외출·외박을 모두 통제하던 때에도 격리된 장병들이 휴대전화를 사용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감염병 예방을 위한 정보 교환 등 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으로 몇 달씩 출타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휴대전화 사용마저 할 수 없었다면 더 많은 사고가 일어났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을 정도니까요.
물론 휴대전화를 이용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병들이 올리는 내용에 대해서는 검증과 재차 확인이 필요합니다. 공군의 감찰 결과와 수사를 보면, 의혹의 당사자 최모 상병이 병원 진료를 받는다는 이유로 외출을 나가 집에 들렀던 혐의(무단이탈)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의혹은 사실이 아니거나, 사실이지만 특별 대우라고 보기는 약간 힘든 경우도 있었습니다.
일각에선 "군 인사를 앞두고 (진급 경쟁 과정에서) 악성 투서가 빗발치는 것은 흔한 일이다"며 또다른 의미로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 2011년 유낙준 당시 해병대사령관에 대한 익명의 비리 의혹 투서가 들어온 적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급을 둘러싸고 휘하 소장 2명이 그를 무고했다는 황당한 사례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국방부를 출입하며 육군 미사일사령부 부사관들의 장교 추행 사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병사 폭행 사건 이후 2차 가해 의혹 등을 취재했던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됩니다.
전자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기 전 피해자는 1303 국방헬프콜에 신고를 했지만, '증거가 없으면 처벌이 어렵다'는 부대 내의 회유에 이를 취하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여기에 더해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해당 부대 일부 간부들이 피의자들에 대해 탄원서를 모으고 다닌다는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해당 부사관들은 구속 기소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후자의 사건은 내기 탁구 때문에 상사에게 폭행을 당한 병사가 자신을 지휘통솔하는 대대장에 의해 2차 가해가 의심되는 일들을 겪은 사건입니다.
취재 결과 해당 대대장은 피해자 병사에게 "공황 상태에 있는 장병이 후임병을 통솔할 수 있겠나, (내가)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나"며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가해자인 상사를 피해자인 병장과 같은 부서로 발령냈다가 부랴부랴 조정하는 등 군 당국이 적절히 대응했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 이 정도인데 내부 고발을 했다가 불이익을 받은 것에 대해 알려지지 않은 사례는 얼마나 많을까요. 결국 군 내부의 신고 시스템을 믿지 못한 장병들이 최후의 방법으로 청와대 청원게시판을 이용한다는 분석이 가장 적확해 보입니다.
그래도 이런 사례들을 마주하다 보면, 사람들이 점점 더 군 인권에 신경을 쓰게 되면서 높은 분들이 지위를 악용해 이른바 '갑질'을 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는 듯합니다. 오히려 "사고를 숨기기에 급급하는 것보다는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투명한 것이다"는 긍정적인 시각도 보이고요.
군을 통솔하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도 이런 현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4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와 지난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특히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언급했을 때의 답변 내용을 소개합니다.
- 정경두 국방부 장관, 2020년 4월 29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
"현재 우리 군에서는 법무, 군사경찰, 감찰, 인사 분야에 각종 신고 제도나 본인의 고충을 토로할 수 있는 시스템이 거의 20개 가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받을 수 있다는 데 대해서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내부의 그런 시스템이 정말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서 공정하게 잘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저도 강조를 하겠습니다."
- 정경두 국방부 장관, 2020년 6월 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장병들이 1303 국방헬프콜 등을 몰라서 여기에 전화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군을 믿을 수 없기 때문에 외부에 투서를 하는 것입니다. 군의 인권 의식이 나아지고, 신고자 보호 등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한 고발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물론 유사시에는 상관의 명령에 목숨도 걸어야 하는 위계질서로 작동하는 조직이지만, 이를 악용해서는 무척 곤란합니다. 군인은 '군복 입은 시민'입니다. 사회에서도 큰 문제가 되는 사항이라면, 군대에서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휴대전화'또는 '청와대 국민청원'만 탓하고 있는 것은 상황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동문서답인 듯해 안타깝습니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