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장관은 18일 대검 감찰부에서 맡고 있던 해당 진정사건이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게 넘어간 건 ‘감찰 중단’이라며 해당 지시를 내린 윤 총장을 직격했다. 범여권 의원들의 문제제기에 대한 답변이었다. 이후엔 대검 감찰부에 직접 조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반면 윤 총장 측은 규정과 절차에 따라 사건을 이첩한 것이고, 곧바로 감찰부가 나서는 대신 진정인 주장의 신빙성 등까지 신중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추 장관의 지시를 놓고 양측이 격하게 충돌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번에 논란이 된 사건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재판 당시 검찰 측 증인으로 나왔던 죄수 최모씨의 진정으로 불거졌다. 최씨는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동료 재소자들 앞에서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말했다”며 검찰에 힘을 실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올해 4월초 돌연 입장을 바꿔 이 사건 관련 검찰의 위증 종용 등 부조리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정을 법무부에 냈다. 그는 진정 이후엔 한 언론에 ‘검찰의 위증교사가 있었으나, 나는 위증하지 않았다’는 취지의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4월17일 법무부로부터 이 진정사건을 넘겨받은 대검 감찰부는 1달 가량 총장 보고 없이 관련 기초 자료 수집을 이어갔던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말 이를 뒤늦게 보고 받은 윤 총장은 검찰공무원의 수사 관련 인권침해 진정을 주로 맡는 대검 인권부에 사건을 배당했고, 후속 절차를 거쳐 이달 1일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에게 넘어갔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이 과정에서 진정서 원본을 넘기지 않는 등 사건을 그대로 맡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것으로 파악됐다. 사건 배당 권한을 가진 총장의 지시를 불이행한 것이라는 ‘항명 논란’이 불거진 배경이다. 한 부장은 지난 13일엔 “감찰부장으로서 담당·처리 중인 채널A 사건, 한 전 총리 민원 사건과 관련한 여러 사실과 기록들이 모아지고 있다”며 이례적으로 조사 관련 내용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도 했다. 한 부장은 판사 출신의 외부인사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사퇴를 앞두고 제청한 마지막 인사로 알려진 인물이다.
이런 내홍 와중에 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이번 사건을 “감찰 사안”으로 규정하면서 “사건을 마치 인권 문제인 것처럼 변질시켜서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로 이첩한 것은 옳지 않고, 관행화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검찰총장이 지휘권을 함부로 활용하는 것 아닌가’라는 여당 의원의 문제제기에 이번 사안을 윤 총장의 ‘감찰 중단 행위’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자 대검은 사건 배당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는 취지의 반박 입장을 내놓기도 해 갈등이 표면화 됐다. 수사팀에 대한 징계시효가 지났으므로 징계 청구 담당부서인 감찰부의 소관이 아니고, 검찰공무원의 수사 관련 인권침해 의혹 사건은 현 정부 출범 이후 통상 인권부에서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감찰 관련 절차를 밟기 전에 우선 진정 배경과 신빙성 등을 폭넓게 따져보는 등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판단도 이번 배당 과정에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예컨대 사기범을 수사하는데 그 사람이 인권침해를 당했다는 진정을 낸다고 해서 바로 수사팀을 감찰조사 할 수 있겠느냐”며 “감찰을 한다는 건 객관적 혐의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됐다는 뜻이기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맥락에서 ‘한명숙 사건’ 수사팀은 한동수 감찰부장이 공개적으로 SNS에서 조사 관련 내용을 언급한 건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일각에서 이런 격앙된 기류도 감지됐지만, 추 장관은 같은날 오후 이번 진정사건을 대검 감찰부에서 직접 조사하라며 윤 총장의 지시와 정면 배치되는 초강수를 뒀다. 법무부는 "추 장관이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신속한 진행과 처리를 위해 대검 감찰부에서 중요 참고인을 직접 조사한 다음, 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로부터 조사경과를 보고받아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수사과정의 위법 등 비위 발생 여부와 그 결과를 보고하도록 지시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중요 참고인은 진정인 최씨와 마찬가지로 한 전 총리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로부터 위증을 강요·회유 당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죄수 한모씨다. 한씨는 입장문을 통해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의 조사엔 응하지 않겠다며 "법무부가 직접 감찰을 하거나 대검의 감찰부가 감찰·수사하는 경우엔 적극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한씨의 입장도 추 장관 지시의 근거로 제시됐다. 대검은 이번 지시에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현 상황을 정면충돌 직전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추 장관의 지시는 '법무부장관은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일반적으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명시된 검찰청법 제8조에 근거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엔 '구체적 사건'에 대한 지시라는 점에서 검찰총장에 대한 지휘·감독권을 행사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법무부 장관이 이 권한을 근거로 검찰총장에게 지시를 내린 사례로는 지난 2005년 당시 천정배 장관의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한 불구속 수사 지시가 거론된다. 당시 김종빈 검찰총장은 지시는 따랐지만 사퇴했다. 일각에선 여권의 문제제기에 뒤따른 추 장관의 지시가 윤 총장 압박용 아니냐는 시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