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억압의 상징이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오는 2022년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다시 문을 연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엄혹한 시절을 이겨내고 끝내 어둠의 공간을 희망과 미래의 공간으로 바꿔낸 우리 국민과 민주 인사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그 전날 고 이한열 열사의 33주기 추모식에서 이 열사의 어머니를 만났다. 민 청장은 "죄스러움을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며 "지난날 과오를 참회한다. 늦게나마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경찰 수장이 뒤늦게나마 공식 석상에서 국가권력의 참상에 대해 고백하고 사죄의 뜻을 밝힌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말뿐인 사과'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그 시절 '독재와 폭력'의 결과들은 오늘날에도 도처에 흩어져 숨쉬고 있다. 수많은 '조작' 간첩 피해자들은 여전히 누명을 벗지 못한 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억울함을 풀지도 못하고 이미 숨을 거둔 이들도 적지 않다.
반대로 당시 '애국'과 '충성'이란 이름으로 불법 구금과 고문을 자행했던 이들은 특진(특별승진)과 훈장 수상을 거듭하며 승승장구했다.
◇공안 경찰 받던 청룡봉사상, 수상자 명단조차 없는 현실
이근안 외에 다른 많은 공안 경찰이 간첩 검거 공로로 특진한 것으로 파악된다. 대표적인 공안 경찰들의 '특진 코스'가 청룡봉사상이다.
청룡봉사상은 지난 1967년부터 조선일보와 경찰청(옛 치안본부)이 공동 주최해 왔다. 고 김근태 의원을 고문한 이근안(1979년), 박종철 고문치사 관련자 유정방(1972년), 부림사건 가담자 송성부(1983년)를 비롯해 민주화운동가와 학생, 시민을 때려잡은 경찰들이 이 상 '충상(忠賞)'을 받아 특진했다.
◇정부, 이제라도 무죄 사건 수사관들 파악해 특진 취소해야
북한에 납북됐다가 1년 만에 돌아온 어부는 보안수사대에 체포돼 수십년간 옥살이를 했고, 평생을 '간첩 자식'으로 산 그의 아들은 한강에 몸을 던졌다. 서울 구로구에서 공장에 다니던 노동자는 남산분실로 끌려가 21일 동안 알몸으로 구타, 고문을 당했다. 출소 후 일용직, 노점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고문 후유증과 암을 앓다가 50대 중반에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그는 자신을 고문했던 수사관들의 얼굴을 자세히 그릴 정도로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그 고통 앞에 정부가 일말의 책임감을 느낀다면, 최소한 재심 끝에 무죄로 밝혀진 사건만이라도 수사 기록을 뒤져야 한다. 이제라도 수사 관련자들이 받은 특진과 훈장을 찾아 취소하고 피해자들에게 알려야 한다. 공권력에 처참하게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정부가 진정성을 다해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