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손수호(변호사)
탐정의 눈으로 사건을 들여다봅니다. 탐정 손수호. 우리 사회에 관심을 모으고 있는 사건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손수호 변호사 어서 오십시오.
◆ 손수호> 네, 안녕하세요.
◇ 김현정> 북한 관련 사건들을 쭉 살펴보다가 이 사건을 고르셨다고요?
◆ 손수호> 최근 남북관계가 좋지 않잖아요. 지난 2년 동안 분위기가 그래도 좋았기 때문에 잊고 있었지만, 분단 이후 그동안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97년 이한영 피살 사건인데요.
◇ 김현정> 이한영 씨 피살 사건. 이한영 씨는 북한 로열패밀리 출신의 탈북자잖아요.
◆ 손수호> 네,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 동거했던 성혜림의 언니 성혜랑의 아들입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김정일 위원장의 조카인 셈이에요.
◆ 손수호> 그렇죠. 북한에서 쓰던 원래 이름은 ‘이일남’이었는데요. 한국에 오면서, ‘한’국에서 ‘영’원히 살겠다는 의미로 이한영으로 이름을 바꾸죠.
◇ 김현정> 한국에서 영원히 살겠다 해서 이한영인 거예요?
◆ 손수호> 그리고 우리나라 와서 주민등록 할 때, 한국에 들어온 날짜를 생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 김현정> 그러면 북한에 있을 때는 어느 정도 대접을 받던 사람입니까?
◆ 손수호> 어릴 때는 평양 시민 평균보다 조금 높은 정도였는데요. 김정일과 성혜림이 69년 동거를 시작하면서 확 달라졌습니다. 고급아파트로 이사 가고 김씨 일가 전용 의료기관인 봉화진료소를 이용하기도 하고요. 또 최고 엘리트 코스인 만경대 혁명 학원에 입학했습니다. 그리고 김정일을 비롯한 가족 외에는 모두 다 존댓말을 썼대요. 심지어 그 장성택도.
◇ 김현정> 김정은의 고모부.
◆ 손수호> ‘일남아’라고 하지 못하고, ‘일남 동무’라고 불렀을 정도였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삶이 확 달라진 거네요?
◆ 손수호> 회고록에 이런 내용도 있어요. 만경대 혁명 학원 시절에 이한영의 잘못을 지적한 소대장과 중대장이 숙청당했고, 전화를 늦게 받았다는 이유로 사단장의 정강이를 차고 욕을 했는데 오히려 그 사단장이 반성문을 써야 했다. 하지만 이모 성혜림과 김정일의 사이가 멀어지면서 모스크바와 스위스 등을 오가며 살게 됐거든요. 이한영도 모친과 함께 성혜림을 따라 옮겨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다 82년 스위스 제네바로 유학을 갔고, 이때 한국으로 들어오게 됐죠.
◇ 김현정> 그래서 정착해서 살다가, 꽤 오래 살다가 피살이 된 거죠?
◆ 손수호> 15년 동안 한국에 있었어요. 그러다 97년에 살해당한 거죠.
◇ 김현정> 어린 시절 이야기는 간단히 정리를 해 주셨고. 그럼 한국으로 넘어오게 된 계기는 뭐예요?
◆ 손수호> 스위스에 간 지 한 2주쯤 지나서, 이한영이 학원 가려고 집에서 나와서 제네바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어요. “나는 북한 외교관이다. 내가 북한 외교관 여권도 있고 공무원 여권도 있고 여권이 총 3개 있는데, 혹시 미국 여행을 할 방법이 없겠느냐.”
◇ 김현정> 그렇게 한국대사관에 물어봤어요?
◆ 손수호> 네, 우리 대사관이 발칵 뒤집혔죠. 그래서 일단 만나자고 해서 만나는데 성공합니다. 그리고 이후에 정보기관의 작전 하에 프랑스, 벨기에, 독일, 필리핀, 대만 거쳐서 김포공항으로 들어옵니다.
◇ 김현정> 미국 여행 가고 싶다고 했는데 어떻게 한국으로 오게 됐어요?
◆ 손수호> “일단 한국에 가면 그 다음에는 언제든 미국 갈 수 있다. 그러니까 일단 서울로 가자.” 이런 설득이 통한 거죠.
◇ 김현정> 우리 정보기관이 설득한 거군요. 망명을.
◆ 손수호> 그렇습니다. 사실 이한영은 처음에는 “나는 지도자를 보좌하기 위해 수업 받고 있는 청년이다.”라고 소개했어요. 그런데 당시 정보기관이 그 정도 인물도 당연히 크게 환영하죠.
◇ 김현정> 그렇죠.
◆ 손수호> 중요한 정보원이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조사하는 과정에서 김정일의 조카라는 게 밝혀진 겁니다. 지금도 아니고 그 시절에.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습니까? 그야말로 난리가 났는데요. 당시 김일성의 후계자 김정일의 조카이고 한동안 실제로 가깝게 지내기도 했기 때문인데요. 결국 김씨 일가 생활상, 권력구조, 비밀에 싸여 있던 주석궁 구조까지 이런 특급 정보가 쏟아져 나온 거예요.
◇ 김현정> 당시 안기부에서 상당히 좋아했겠는데요?
◆ 손수호> 당연하죠. 그래서 당시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약 50만원 정도였는데, 특별 정착금으로 1억 원을 지급합니다. 하지만 금방 탕진하고 말았죠.
◇ 김현정> 어린 나이에 혼자 낯선 곳에서 살게 됐으니까 절제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네요.
◆ 손수호> 네. 과거에 북한에서 한동안 로열 패밀리로 생활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죠. 또 그 외에도 여러 문제로 괴로워하다 자살 시도까지 했어요. 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정보원이었기 때문에 안기부가 계속해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85년에는 성형수술도 시켜줬고요.
◇ 김현정> 편하게 살라는 의미였겠네요.
◆ 손수호> 네. 그리고 87년에는 핀란드에서 활동하다 순직한 정보 요원의 아들이라는 가짜 신분을 만들어주기도 하는데요. 이를 통해서 KBS 국제방송 러시아어 담당 PD로 특채되도록 해줍니다.
◇ 김현정> 맞아요, KBS PD였어요.
◆ 손수호> 그리고 업무 중 만난 사람과 결혼도 했는데요. 그러다 89년에 해외여행이 자유화 됐거든요. 이때 드디어 아내와 함께 그동안 그렇게 바라던 미국 여행을 가려고 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처음 한국에 와서 주민등록증 받을 때부터 계속 출국정지 상태였습니다.
◇ 김현정> 미국 여행 가겠다는 그 꿈에서부터 시작된 망명이었는데 출국정지? 굉장히 아이러니하네요.
◆ 손수호> 그 후의 삶도 순탄치 않았어요. KBS에서 직장주택조합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가, 이게 돈 되겠다고 생각해서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했거든요.
◇ 김현정> 주택건설업을?
◆ 손수호> 네. 처음에는 상당히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횡령 시비가 벌어졌고, 1심 유죄판결 받은 후 2심과 대법원 거치면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그 과정에서 10개월 동안 옥살이도 했어요. 이후에도 한동안 안기부가 준 생활비로 살다가, 여러 사업을 시도했습니다. 중국 농산물 수입 중개, 러시아 상인을 상대로 한 장사, 수입 옷 판매, 북한 그림 수입까지. 하지만 실패하고요. 안기부 지원마저 끊기자, 96년부터는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 김현정> 아니,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는데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거는 왜요?
◆ 손수호> 본인의 북한 경험을 돈과 바꾸는 거죠.
◇ 김현정> 경험담을 파는 셈이 되는군요.
◆ 손수호> 그런 거죠. 실제로 한 언론사를 찾아가서 북한에서 겪은 일을 담은 수기를 써서 제공하겠다고 제안했어요. 하지만 신분 등을 정확히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면서 거절당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언론사 찾아가서는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설명하게 돼요. 그러다가 중요한 정보를 말하게 됩니다.
◇ 김현정> 어떤 중요한 정보요?
◆ 손수호> 그때 몇 년 전에 성혜림이 모스크바에 살고 있다는 내용이 알려져서 큰 화제가 됐거든요. 이한영이 그곳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안다고 말한 거예요.
◇ 김현정> 김정일 위원장의 동거녀였던 성혜림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안다?
◆ 손수호> 네. 그러면서 이 씨가 기자에게 내가 지금 어려운데 500만 원만 빌려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기자가 이렇게 말했어요. 돈 안 갚아도 되니까 일단 성혜림 전화번호를 알려주시오. 아니 그냥 얘기 나온 김에 여기서 한번 직접 전화를 걸어봅시다.
◇ 김현정> 걸었어요?
◆ 손수호> 전화 걸었습니다.
◇ 김현정> 받았어요?
◆ 손수호> 받았습니다. 성혜랑이 전화를 받았습니다. 이한영의 어머니죠. 13년 만에 통화한 거예요. 40분간 통화가 이어졌고요. 이후 통화가 계속됐는데, 더욱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성혜랑과 성혜림이 우리도 한국으로 가고 싶다. 서울에 살고 싶다.
◇ 김현정> 우리도 서울 살고 싶다?
◆ 손수호> 언론사 입장에서는 대 특종이죠.
◇ 김현정> 성혜림이면 김정남의 어머니인 거잖아요.
◆ 손수호> 네, 맞습니다. 이후 다른 언론사들도 이 씨와 접촉해서 수백만원씩 사례비 주면서 인터뷰 진행했고 여러 특종 보도가 나왔어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아직도 기억하실 거예요. TV 토크쇼에도 출연했습니다.
◇ 김현정> ‘이주일 쇼’ 나오지 않았어요?
◆ 손수호> 네. 김씨 일가의 사생활도 폭로했어요. 그리고 96년에는 조금 전 말씀드린 맨 처음에 언론사에 제안했던 수기가 출간됩니다. 책 제목은 ‘대동강 로열패밀리의 서울 잠행 14년’.
◇ 김현정> 이렇게 언론에 특종 보도 소재를 쏟아내면서 경제적으로는 이득이 있었겠지만 북한에는 상당한 눈엣가시가 됐겠는데요?
◆ 손수호> 본인도 상당히 불안해했어요. 안기부도 여러 차례 경고했고요. 안전 가옥 제공하면서 여기 머무르라고 했는데, 수기 내용 중 일부에 대한 안기부의 삭제 요청을 거부하면서 안가에서 나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후 거주하던 분당 아파트도 채권자 손에 넘어가면서 가족들을 처가에 보내고 자신은 일정한 주거지 없이 친구 집 전전하기 시작하거든요. 그러다 대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던 선배 집 한 칸을 임시 거처로 정하고 가끔 들르며 지내던 중 피살됐습니다.
◇ 김현정> 계속 불안불안했는데 결국 사건이 벌어진 거네요. 그 피살 사건을 들여다보죠.
◆ 손수호> 돈 때문에 신분 노출하고 책도 펴냈지만 이한영도 북한을 자극한 걸 후회했어요. 그래서 다시 성형수술을 하고 가족과 함께 완전히 잠적하고 싶다고 했지만, 그럴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96년에 강릉 무장공비 침투 사건이 있었죠. 그리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까지 한국으로 왔고요. 그러자 이한영은 “북한의 첫 보복 대상은 내가 될지 모른다.”면서 더욱 불안해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북한 특수공작원이 이한영의 행방을 쫓기 시작한 게 그 무렵이었던 것으로 보여요.
◇ 김현정> 황장엽 씨가 넘어온 다음? 그런데 당시 북한이 자기를 찾고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요?
◆ 손수호> 피살 후 발표된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96년 11월 40대 남자로 추정되는 사람이 가명으로 이한영의 이전 주민등록지 동사무소에서 이한영의 주민등록 초본 두 통을 발급받아 갔어요.
◇ 김현정> 그 당시에는 그게 가능했죠.
◆ 손수호> 내가 이한영으로부터 받을 돈이 있는데 그 절차 진행에 필요하다면서 발급받은 거죠. 그런데 그때 그 사람이 말한 자신의 종로 사무실. 알고 보니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 김현정> 그럼 그때 거주지가 노출된 건가요?
◆ 손수호>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이한영이 안기부 안가에서 나온 이후 주민등록이 말소된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그 11월에는 실제 거주지가 노출되지는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해가 바뀌고 97년 1월에 그 대학 선배 집으로 전입신고를 해요. 그로부터 열흘 뒤 서울의 한 심부름센터에 어떤 남성이 전화해서 이한영의 주소지를 찾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두 차례에 걸쳐 45만원 송금합니다. 그런데 그때는 마침 주민등록이 살아난 다음이었기 때문에 결국 정보가 확인됐죠.
◇ 김현정> 누군가 계속 찾다가 주민등록이 살아나자마자 정보를 확보한 거네요.
◆ 손수호> 그리고 며칠 후에는 또 다른 심부름센터에 더 자세한 정보를 알려달라는 전화가 오고요. 이곳에서 전화번호와 기타 정보가 불법적으로 확인돼서 전달되죠.
◇ 김현정> 그렇게 정보가 유출된 거네요.
◆ 손수호> 네. 공작원들이 이때부터 그 아파트 단지를 차량으로 배회하면서 답사했어요. 이걸 목격한 주민과 경비원도 많았습니다.
◇ 김현정> 그래요?
◆ 손수호> 또 2월 1일부터 15일까지는 매일 저녁 7시 정각마다 전화가 왔어요.
◇ 김현정> 얹혀사는 그 대학 선배 집으로?
◆ 손수호> 누구냐고 물어봐도 아무 말 없이 5분 동안 숨소리만 들렸는데요. 그러다 사건 당일이 된 거죠.
◇ 김현정> 이런 이야기 들으면 참 불안했을 텐데. 사건 당일 상황은요?
◆ 손수호> 당시 이한영은 처가 쪽 사람과 함께 서울에 있는 백화점 몇 곳에서 초콜릿 판매점을 운영했거든요. 그런데 발렌타인데이 즈음이어서 매우 바빴기 때문에 여관에서 지낼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행사 끝난 다음 날인 15일이 됐는데. 오전에 잡지사 기자라면서 퇴근 시간을 물어보는 전화도 왔고, 아무 말 없는 전화도 몇 통 걸려왔습니다.
◇ 김현정> 그 대학 선배 집에.
◆ 손수호> 그날 저녁 손윗동서하고 커피점에서 만나서 앞으로 사업 잘 돼서 다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누고 함께 저녁 식사 하고 헤어진 다음 선배 집으로 왔어요.
◇ 김현정> 그런데 그 집 앞에서 피살된 거죠?
◆ 손수호> 공작원들이 미리 14층 엘리베이터 앞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한영이 내리자 잠깐 같이 가서 이야기하자면서 끌고 가려 했어요.
◇ 김현정> 처음에는 끌고 가려고 한 거네요.
◆ 손수호> 그런데 이 광경을 직접 본 목격자가 있었습니다. 맞은편 집에 살던 박 모 씨인데요. 현관 밖에서 소리 나니까 본 거에요. 당시 아파트 현관문에 렌즈가 있었잖아요.
◇ 김현정> 조그마한 거.
◆ 손수호> 이걸 통해 밖을 내다본 건데. 권총을 겨눈 남자를 보고 즉시 112와 119에 신고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밖을 봤더니, 한 남자가 권총에 소음기를 꼈고요, 이 씨가 계단 쪽으로 도망치려 하니까 벽 쪽으로 세게 밀고 내리쳤다는 거에요. 이어서 권총 든 남자가 두 발을 발사해서 그 중 한 발이 왼쪽 이마에 박혔습니다. 범인들은 즉각 도주했고요.
◇ 김현정> 그래서요?
◆ 손수호> 공작원들이 현장을 떠난 후 목격자 박 씨도 밖으로 나왔어요. 맞은편에 있던 선배 집 문을 두드렸고, 선배 아내가 나와서 이한영 씨를 보고 이게 무슨 일이냐 물어봐요.
◇ 김현정> 이한영 씨가 즉사한 게 아니에요.
◆ 손수호> 네, 이한영 씨는 당시에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면서 간첩, 간첩이라고 말했어요. 이후 의식을 잃고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뇌사 상태에 빠졌고 결국 열흘 만에 사망했죠.
◇ 김현정> 범인들은 그 길로 달아나서 결국 못 잡은 거예요?
◆ 손수호> 대기하던 차량을 타고 고속도로를 통해 남해안으로 갔고 공작용 잠수함 타고 북으로 복귀했습니다. 이후 공화국 영웅 칭호까지 받았어요. 그런데 이건 나중에 밝혀진 거고, 사건 발생 당시에는 혹시 이 일을 안기부가 한 거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성혜림의 서울행 얘기까지 나온 상황에서 안기부가 굳이 이한영을 없앨 이유를 찾기 힘들지 않을까요?
◇ 김현정> 그러면, 북한 공작원들의 소행이라는 건 나중에 어떻게 확인된 건가요?
◆ 손수호> 사건 발생 후 경찰 등 수사기관이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했는데요. 97년 10월에 체포된 또 다른 공작원 최정남과 강현정이 이한영 사건의 범인은 남파공작원 최순호라고 밝혔습니다. 또 그 전에 체포된 간첩들을 통해서 최순호와 함께 한 윤동철의 존재도 밝혀졌고요.
◇ 김현정> 실명까지 나왔군요.
◆ 손수호> 네, 그래서 안기부는 북한 대남공작부 소속 테러전문요원에 의해 이한영이 살해되었다고 공식 발표했죠.
◇ 김현정> 이한영 피살 사건을 이렇게 쭉 살펴봤는데요. 사실 이 사건에는 숨은 이야기가 너무 많습니다. 이거는 댓꿀쇼에서 더 풀어가기로 하고요. 오늘 이 사건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 손수호> 이한영은 북한 로열패밀리 출신입니다. 하지만 그 후 어찌 되었든 한국으로 왔고 또 한국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려고 여러 노력을 한 사람이기도 해요.
◇ 김현정> 영원히 한국에서 살고 싶었던 사람.
◆ 손수호> 결국 이한영의 비극적 사망 역시 분단의 아픔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인 것 같아요.
◇ 김현정> 물론이죠.
◆ 손수호> 그리고 지금 남북관계가 안 좋잖아요. 앞으로 더 악화될 가능성이 크고요. 그런데 이렇게 갈등이 커질수록 우리들의 고통도 더 커지지 않겠나. 대결과 살상으로 이어진 그동안의 아픈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양쪽 모두 냉정을 찾고 상식적으로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 김현정> 여기까지, 탐정 손수호, 수고하셨습니다.
◆ 손수호>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