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를 날려도 실책에 헛스윙으로 답하는 이들을 보자면 갑갑하기만 하다. 나도 모르는 내 미래에 다들 "안 된다"부터 외친다. 한 발짝 떼는 것조차 가로막는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반대하지만, 기저에는 '여성'이라는 이유가 있다. 그들을 향해, 그들이 가진 편견을 향해 주수인은 강력한 직구를 날린다. 영화 '야구소녀'다.
'야구소녀'(감독 최윤태)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시속 130㎞ 강속구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지닌 주수인(이주영)이, 졸업을 앞두고 프로를 향한 도전과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여성 성장 드라마다.
리틀 야구단부터 시작해 남자들의 리그인 고등학교 야구부까지 '야구선수'로 뛰어 온 주수인. 그의 이름 앞에는 천재 야구 '소녀'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소녀' '여성'.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지만 '누구' 안에 남성이 아닌 존재는 끼어들기 쉽지 않은 종목이 야구다. 남성들의 그라운드에 '여성'으로 존재한다는 건 주수인을 더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여자치고는 잘하지만 남자보다는 안 된다는 편견, 애초에 여자가 프로 야구 선수가 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그들의 공고한 세계에 주수인은 균열을 일으킨다.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도 기회도 잡지 못한 수인은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며 꿋꿋하게 나아간다. 세상이 모두 주수인을 부정해도 주수인은 자신을 긍정한다.
어렵사리 참가한 트라이아웃(tryout·연습 경기를 통해 선수의 기량을 직접 확인하고 영입하는 제도)에 참가한 주수인이 생각보다 뛰어난 실력을 선보이자 감독은 프로 타자를 불러 수인의 공을 받아보게 한다. 수인은 자신의 강점인 볼 회전력을 이용한 너클볼로 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후, 마지막 스트라이크는 직구로 잡아내며 아웃을 끌어낸다.
이런 주수인을 연기한 이주영은 반짝반짝 빛난다. 올곧은 눈으로 세상과 관객을 바라보며 공고한 편견과 주류 사회에 균열을 낸다. 스크린을 통해 정면으로 마주하는 이주영의 얼굴에는 모두가 손가락질하고, 아니라며 가로막아 온 주수영의 삶을 한 번도 빗겨 난 적 없이 묵묵히 걸어온 시간이 녹아있다. 다시 한번 이주영에 매료되는 순간이다.
영화 속 코치 진태의 말 역시 '야구소녀'가 전하고자 하는 또 다른 메시지 중 하나일 것이다. 진태는 단점을 보완하려면 장점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강속구를 고집하는 수인에게 수인의 장점인 볼 회전력을 이용한 너클볼을 훈련시킨다. 야구선수로서 수인이 지닌 장점을 극대화시키려 애쓴 것이다.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는 단점보다 보이지 않는 무수한 장점이 있다. 누군가의 단점만 바라본다는 것 역시 편견을 쌓는 일 중 하나다. 극 중 모든 이가 선수로서 수인의 장점을 보는 게 아니라 '여자'라는 이유로 벽을 세웠듯이 말이다.
영화의 결말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에서 타협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이 타협이 어설프게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구단주의 말마따나 앞으로가 주수인의 선수 인생에 있어서 더 큰 시련이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러닝타임 이후에도 영화 밖에서 주수인을 응원하게 된다. 더불어 주수인을 닮은 세상 모든 이들을 향해 말이다.
영화에서도 주수인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운 여학생이 나온다. 주수인이 온몸으로 세상의 편견에 부딪히며 한 걸음 넓혀 온 길을 따라 또 다른 누군가가 걸어오며 다시 한 걸음 넓혀갈 것이다.
많은 여성과 주류에서 소외된 소수자들은 세상의 유리천장을 향해 도전하며 조금씩 깨부숴나가고 있다. 그 다음은 우리 몫이다. 세상의 많은 주수인이 이전의 주수인에 이어 편견을 향해 더 많은 직구를 날리길 기대하고 응원해 본다.
6월 18일 개봉, 105분 상영,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