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관의 이름은 '산업유산정보센터'로 도쿄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설치됐다. 군함도 등 조선인 강제노역 시설 7곳을 포함한 메이지 시대 산업유산 23곳을 소개하면서 강제징용과 노역에 대해서는 "학대나 괴롭힘은 없었다"고 부정했다. 국제사회에 공언한 약속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역사 왜곡'까지 감행한 셈이다.
물론 이 약속을 어겼다고 해서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뒤집히지는 않는다. 등재 시스템 특성 상 '강제징용 역사 알리기'가 조건부의 강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17일 CBS노컷뉴스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가 되려면 회원국의 '컨센서스(consensus·전원 합의)'가 필요하다. 영상 기록을 보면 당시 한국 역시 일본과의 상호 신뢰 관계에 따른 약속을 바탕으로 합의에 동참한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회원국 간에 딱 떨어지는 거래 관계가 있는 게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 국제적인 약속을 훨씬 무거운 책임감 아래 이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일본이 국제사회 약속의 이런 특성을 빈번히 '악용'해 역사 왜곡을 일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군함도 논란을 대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가 바로 그 방증이다.
일본 역사 왜곡을 전 세계에 알려 온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강제성이 없는 상황을 일본이 악용한다. 결국 강제징용 전시관 약속은 등재를 위한 '꼼수'였고, 그런 전략으로 역사 왜곡을 해왔다. 강제징용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된 탓도 있겠지만 이번에도 입맛에 맞는 역사만을 전시했다"고 짚었다.
또 △ 산업유산이 있는 나가사키 등이 아닌 도쿄에 전시관을 설치한 점 △ 한국 매체 특파원들의 전시관 사진 및 영상 취재를 막은 점 △ 관광이 부진한 코로나19 시기에 일반에 이를 공개한 점 등이 오히려 떳떳하지 못한 일본 정부의 태도를 보여준다고 반박했다.
다른 회원국인 한국 정부의 항의에도 유네스코는 중재에 나서기는 커녕 '요지부동'이다. 전문가들은 유네스코가 현재 가장 많은 분담금을 내는 회원국 일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공통적인 의견을 내놨다.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의 박기태 단장은 "중국 자본의 영향을 받는 WHO(세계보건기구)처럼 유네스코 역시 일본 자본이 가장 많이 투입되니 그 눈치를 보게 된다. 일본은 결국 입장을 바꾸지 않을텐데, 그렇다고 등재 결정을 바꿀 수도 없다. 유네스코 안에서 힘의 논리로는 이기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서 교수 역시 "이미 일본이 전시관 설치 전에 유네스코에 보고서를 두 번 냈는데 그 안에도 강제징용 역사를 어떻게 알릴 것인지에 대한 계획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
유네스코의 마음을 돌리기 보다는 국제사회를 통한 압박 전략이 더 효과적이다. '반크' 측은 SNS를 통해 관련 사실을 적극 알리고 있으며, 서 교수 역시 국제 여론 형성에 주력하고 있다.
박 단장은 "유네스코의 무책임과 방관을 전 세계에 알려 압박해야 한다. 공신력을 가져야 하는 국제기구의 신뢰도 자체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유네스코 회원국들 사이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도록 변화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에 관련 사실을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유네스코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여론을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움직일 수 있다. 정부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여러군데 노출을 시켜 일본 정부를 압박해 나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