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된 후에는 베일에 쌓여 있던 젊은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 역사적 성과를 남겼다. 켜켜이 쌓인 '내공'에 문 대통령을 따라갈 참모는 없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대통령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였을까. 어렵게 쌓아온 이번 정부의 공적이 먼지가 되어 흩어질 정도로 곤경에 처한 오늘, 누구하나 책임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모두가 제 할 일을 방기한 채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메시지가 발표된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16일 개성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는 물론 개성공단종합지원센터까지 파괴되는 모습을 공개했다. 거대한 건물이 무너져 한순간 재로 사라지는 영상에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바로 전날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직접적으로 유화 메시지를 던졌다. 한반도 평화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김 위원장을 다시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 위해 설득에 나선 것이다.
사실, 북한의 강경대응은 외교안보라인 그룹에서는 어느정도는 예상됐던 결과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1년 반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북미는 물론 남북 관계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점을 돌이켜 보면 북한이 한번 꺾어버린 조타 방향을 되돌리기는 힘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노이 노딜 굴욕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해 6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 시기에 맞춰 판문점에 내려오면서 관계 개선에 대한 진정성을 피력했다. 전세계가 떠들썩하게 남북미 세 정상이 함께 포토라인에 섰지만 협상 진도는 한발짝도 나가지 않았다.
그 사이 북한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못한 우리 정부에 먼저 청구서를 들이민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여러 시도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해온 미국을 향한 불만과 저항이 우리 정부를 향해 선제적으로 표출된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과정에 우리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을 스스로 좁혔다는데 있다.
북미간 협상의 중재자 입장에 선 문 대통령은 신년사부터 남과 북의 독자적인 사업 추진 가능성을 언급하며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려 노력했지만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대북제재를 보다 능동적으로 해석해 여러 시도를 해봐야 한다는 고언들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실천에는 옮기지 못했다.
대북 전단 살포 금지를 둘러싼 여러 논쟁을 떠나서라도 정부가 뒤늦게 조치를 취했다면 누군가는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는 것은 마땅하다.
외교안보라인의 개각 필요성이 청와대 외각에서 먼저 터져나오는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김정은 위원장을 향해 남북관계 회복을 절실하게 다시 강조하고 나선 상황에서, 북한의 무력도발까지 우려해야 하는 초긴장 상태로 악화된 데 대한 책임있는 인사상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시각은 여권 전반에 깔려 있다.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포함해 외교안보라인 전반에 대한 쇄신 인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는 어느정도 형성돼있는 것.
더불어민주당이 원구성 협상에 힘을 쓰는 와중에도 남북 정상간의 합의안에 대한 국회 비준안 통과를 언급하며 힘을 실었고, 동시에 물밑에서 우려와 충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 3년의 업적이 무로 돌아가기 전에 누군가는 분위기를 환기시킬 상황이 됐다. 문 대통령의 실력과 진정성만 믿고 가기에는 외교, 안보, 통일 정책은 너무나도 복합적이다. 상황에 맞는 책임을 지는 일은 참모들이 해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