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선이 본 '결백' 속 정인, 그리고 결말 이후

[노컷 인터뷰]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이 일어난 그곳, 대천에 모인 사람들 ②
영화 '결백'(감독 박상현) 안정인 역 배우 신혜선 - 1편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 스포일러 주의 - 영화를 본 후 읽어보길 추천합니다

돈이 아니라 죄를 좇아야 한다는 게 변호사 정인(신혜선)의 신념이다. 그런 정인의 눈에 우연히 TV 뉴스가 들어온다. 엄마다. 엄마 화자(배종옥)가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돼 경찰에 연행되는 모습이 뉴스에 나온다. 오래전 집을 떠나온 정인은 '엄마'의 모습을, 살인사건이라는 '죄'를 좇아 떠난 후 한 번도 들른 적 없었던 고향 대천으로 향한다.

엄마는 기억을 잃었다. 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살인사건의 용의자일 리가 없다. 모든 사람과 정황이 화자를 범인이라 하지만, 정인이 보기에는 무언가 이상하다. 엄마의 변호를 맡기로 했다. 간단한 일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수상한 정황들이 발견되고, 수상함은 추인회 시장(허준호)이라는 한 점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정인은 추악한 진실을 목격한다.

진실을 목격한 후 정인은 혼란과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결국 정인은 자신만의 선택을 하고, 그 길을 간다. 많은 책임과 감정을 떠안아야 하는 선택에 놓인, 그리고 그 선택을 받아들인 후의 정인을 표현한 신혜선의 연기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신혜선을 만났다. 영화 안팎으로 정인을 고민한 흔적이 그의 말에서 묻어났다. 신혜선과 함께 정인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봤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 신혜선이 본 '안정인'이라는 사람

"시나리오를 보고 일단 재밌다는 느낌은 들었는데, 정인이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생각했죠. 집에서 뛰쳐나와서 고군분투해서 성공한 것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그 이후 갑자기 다시 집으로 내려가서 엄마의 사건을 맡는다든가, 마지막에 내린 결정이 텍스트로만 보기에는 크게 와 닿지 않았어요. 특히 마지막 장면은 제일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촬영장에서 이해가 가더라고요. 제 나름대로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신혜선의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시나리오를 읽은 후 신혜선이 정인 역을 하는 걸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작품을 해보라고 권유한 건 처음이었다. 표현이 많지 않은 분이다. 그런 아버지가 영화를 본 후 신혜선에게 "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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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혜선은 현장에서 배종옥, 허준호 등 선배 배우, 감독과 함께하며 정인을 이해하게 됐다. 고민하고 현장에서 호흡하며 정인을 하나씩 받아들였다. 관객들에게 정인은 어떠한 당위성을 제공한다. 그렇게 정인을 구축한 신혜선의 연기를 보면 "잘했다"는 말이 나온다.

명문대를 나와 대형 로펌 에이스 변호사가 된 정인은 직업만 놓고 보면 남부러울 게 없는 인물이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시간 정인과 함께한 신혜선은 정인이 불쌍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혜선으로서 바라본 정인은 불쌍했다. 우스갯소리로 친구 하기 싫은 캐릭터라고 했는데, 마음이 여유롭지 않은 친구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안타깝고 불쌍하다"며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이후 정인이도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 누구에게도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정인에게 있어서는 정말 해피엔딩이 아닌 결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인은 자기 신념을 꺾고, 자기 마음속으로 어둠을 끌고 들어왔다"며 "어릴 때도 불행했는데 결국에는 또 행복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쌍했다. 참 멋있는 친구인데, 상황만 잘 받쳐줬다면 큰일을 할 수 있을 법한 친구"라고 덧붙였다.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 마음속으로 어둠을 끌고 온 정인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

영화 제목인 '결백'은 행동이나 마음씨가 깨끗해 아무 허물이 없다는 뜻을 지닌다. 그러나 결백이란 단어가 법과 마주하는 순간, 우리가 알고 있던 뜻과 다른 단어가 되기도 한다. 법적 결백이 지닌 비인간성을 볼 때, 아니면 도덕적 혹은 인간적 결백의 유죄 판결을 볼 때 그러하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무죄가 가진 아이러니를 건들기도 한다.

신혜선이 정인을 연기하며 어려웠던 장면으로 화자의 재판이 끝난 후 부장검사(정인겸)가 자신을 향해 "어머니가 정말로 결백하다고 생각하나"라고 묻는 장면을 꼽았다. '결백'이 가진 의미에 관해 여러 가지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정인이가 어머니는 이미 충분히 죗값을 치르셨다고 하는데 그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어쨌든 엄마는 법적인, 제도적인 장치 안에서는 벌을 받지 않아요. 그런데 또 화자는 자기만의 감옥에서 나오지 못하던 사람이고, 엄마는 정인을 위해 빛으로 나가지 않고 어둠 속에 있었던 거죠. 정인이는 그런 엄마를 위해 결국 자신의 양심을 팔아요. 자신의 양심이 비워진 자리에 어둠이 들어올지언정, 엄마에게 한 줄기 빛이라도 선사하고 싶은 생각 아니었나 싶어요."

(사진=㈜키다리이엔티 제공)
정당한 선택은 아니었지만, 결국 정인은 엄마를 위해 무죄 판결을 받아낸다. 죄를 좇아야지 돈을 좇아서 되겠냐고 일갈하던 정인이 결국 자신의 신념을 던지고 평생 어둠 속에 머물러야 했던 엄마 대신 자신의 마음속으로 어둠을 끌고 온 것이다.

신혜선은 "우리 영화는 계속 죄책감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다. 결말에 정인이가 얻어간 건 행복이나 용서, 화해가 아니고 죄책감이다. 그래서 더 안타깝다"며 "물론 열린 결말은 아니니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선은 '결백'이 가진 대비되는 이미지들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본다면 작품을 조금 더 풍부하게 즐길 수 있을 거라고 전했다.

"오프닝에서 막걸리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시골집의 한 장면과 정인이가 변호하고 있는 법정의 모습이 교차돼요. 또 도시에서 살아가는 딸 정인과 시골 촌부 모습의 화자가 대비되는데, 그랬던 화자와 정인이가 접견실 유리창을 통해 하나로 겹쳐 보이는 장면이 있어요. 대비됐던 것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미장센은 영화의 감정선과 연결해 볼 수 있어요. 그런 걸 신경 써서 본다면 화자와 정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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