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응어리…" 제주 4·3 생존 수형인 침묵 깨고 재심

지난해 1월 누명 벗은 18명에 이어
'일반재판' 수형인 등 7명 재심 절차 돌입

재심을 청구한 4·3 생존 수형인 모습. (사진=고상현 기자)
최근 제주 4‧3 행방불명 수형인에 대한 재심 절차가 시작된 가운데 생존 수형인 7명도 억울한 누명 벗기에 나섰다.

15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4‧3 생존 수형인 김정추(89) 할머니 등 7명이 청구한 재심사건 첫 심리 절차를 진행했다.

지난해 또 다른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재심을 통해 공소기각,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이들도 추가로 재심을 청구했다.

다만 김 할머니 등 7명과 함께 재심을 청구했던 송석진(94) 할아버지가 올해 초 숨지면서 송 할아버지 사건은 아들이 대리해 별도의 심리로 진행된다.

특히 이날 재판에서는 '군사재판'이 아닌 '일반재판' 피해자인 김두황(92) 할아버지에 대한 재심 절차도 시작됐다.

그동안 재심을 청구한 수형인 대부분이 억울하게 빨갱이로 몰려 1948년과 1949년 2차례 '군사재판'을 통해 징역 1년~20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피해자였다.

군사재판 피해사건 재심 절차의 경우 70여 년 전 '재판이 존재했는지'가 주요 쟁점이었다. 재판 관련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재판은 다행히 판결문이 남아 있어 재판이 있었던 사실은 확인됐다. 다만 재판에 이르기까지 군‧경의 불법 구금이나 고문이 있었는지 여부가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는 크게 '당시 재판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불법 구금 또는 고문 등 재판의 위법 사유'가 있는지 여부다.

이 모든 요건이 충족될 때 법원이 재심 개시 결정을 한다. 이후 정식 재판이 열리게 된다.

이날 재판에 앞서 4‧3 '일반재판' 피해자 김두황 할아버지는 "아무런 죄 없이 형무소 생활하고 모진 고생 끝에 살아남았다. 지금도 가슴에 응어리가 남아 있다"라고 토로했다.

김 할아버지는 1948년 11월 서귀포시 성산면 난산리 자택에서 경찰에 끌려간 뒤 구타 등의 모진 고문을 받다 일반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목포형무소에서 수형 생활했다.

김 할아버지는 "연좌제로 72년 동안 고통 받았다. 법관에게 시원하게 (억울한 사정을) 얘기하고 싶어서 재심을 청구했다"고 울분을 토해냈다.

김두황(92) 할아버지. (사진=고상현 기자)

재판부는 재심 청구인 7명 중 김 할아버지만 법정에서 진술을 들을 예정이다.

나머지 군사재판 생존 수형인 6명은 앞서 지난해 1월 죄를 벗은 생존 수형인 18명의 사례와 비슷해 따로 법정에서 심리하지 않을 계획이다.

재심 청구인 대부분이 90대 이상의 고령인 점이 고려됐다.

변호인이 진술 녹화한 부분을 재판부와 검찰 측이 검토한 뒤 질문 사항이 있을 경우에만 법정에서 심문할 방침이다.

한편 이날 재판에서는 4‧3 생존 수형인 7명과 고(故) 송석진 할아버지 유가족 외에도 행방불명 수형인 등 2명의 유가족이 청구한 재심사건 심리도 이뤄졌다.

지난 8일에는 4‧3 행방불명 수형인 14명에 대한 재심 절차가 시작됐다. 14명을 포함해 앞으로 340여 명의 행불 수형인 재심 절차도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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