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우는 꼭 이기고 싶었다. 기왕이면 자신이 해결하고 싶었다.
최근 타격 슬럼프가 계속 됐다. 12일 오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KBO 리그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앞두고 가장 먼저 나와 특별 타격훈련을 했다.
정근우는 "연습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며 아쉬워 했다. 그래도 방법은 묵묵히 훈련을 계속 하는 것 뿐이었다. 열심히 배트를 돌렸다.
그런데 LG 최고참 박용택이 자신을 위해 배팅볼 투수를 자처하고 나섰다. 정근우에게는 뜻밖의 선물이었다. 고마웠다.
정근우는 "그래서 꼭 좋은 결과가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박)용택이 형에게 감사하다"며 웃었다.
LG 선발 타일러 윌슨은 5회까지 5안타 5볼넷을 내줬다. 직구 구속은 시속 140km대에 머물렀고 총 투구수 101개 중 스트라이크가 58개에 불과했을 정도로 제구가 흔들렸다.
크게 무너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윌슨은 5회까지 롯데 타선을 2점으로 묶었다. 끈질기게 버텼다.
2루수로서 윌슨의 분전을 지켜본 정근우는 "위기가 많았는데 윌슨이 힘들었지만 잘 막아줬다. 덕분에 내게 기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LG는 전날 SK 와이번스와의 더블헤더를 독식했다. 하지만 하루 2경기를 치른 여파가 남았다. 정근우는 "어제 2경기를 뛴 선수들이 많았다. 방망이가 무거워보였다. 이겨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마운드의 분전, 수비 집중력 등 LG의 저력은 6연승 상승세의 롯데에 맞서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그리고 정근우에게 기회가 왔다.
정근우는 연장 10회말 1사 1,3루에서 우중간 방면 안타를 때려 LG의 3대2 승리를 이끌었다. LG는 3연승을 달렸다.
앞서 선두타자 채은성이 우중간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김민성이 희생번트를 성공했다.
정근우는 "(채)은성이가 찬스를 만들었고 (김)민성이가 번트를 잘했다. 덕분에 내게 찬스가 왔고 해결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정근우가 집중한 이유는 또 있었다. 그는 "이번 타석을 계기로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최대한 침착하게 타격에 임했다"고 말했다.
정근우는 KBO 리그 역사상 끝내기 안타를 가장 많이 친 선수다. 통산 16차례나 승부를 끝냈다. LG로 이적한 후 터뜨린 두 번째 끝내기 안타다. 이 부문 역대 2위는 한화 이글스의 김태균으로 총 11개를 기록 중이다.
베테랑의 진가는 정규이닝 막판에 이미 한 차례 빛을 발했다.
정근우는 LG가 1대2로 뒤진 8회말 1사에서 볼넷을 골라 출루했다. 유강남 타석 때 2루 도루에 성공한 정근우는 롯데 댄 스트레일리의 폭투를 틈타 3루까지 진루했다. 과감한 주루였다. 이어 유강남이 적시타를 쳐 승부의 균형을 맞췄다.
정근우는 "(그때가) 승부처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뛰었다"고 말했다.
주자가 2루에 있을 때와 3루에 있을 때 투수가 느끼는 부담감은 천지 차이다. 정근우는 야구 센스로 상대 배터리를 압박했고 이는 롯데의 7연승을 저지하고 역전승을 거두는 발판이 됐다.
한편, 류중일 LG 감독은 "선발 윌슨은 컨디션이 다소 안 좋은 상태에서도 5회까지 잘 던졌다. 이어 나온 투수들도 실점없이 잘 막아줬다. 공격에서는 정근우가 베테랑답게 찬스를 놓치지 않고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만들었다"고 소감을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