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화에게 반말하는 안치홍' 대본 보고 김준한이 한 생각

[노컷 인터뷰]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치홍 역 김준한 ①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씨엘엔컴퍼니 사무실에서 tvN 목요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안치홍 역 배우 김준한을 만났다.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2016년 봄, 율제병원 인턴으로 출근하던 날 잡아탄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만났다. 동그란 안경을 쓴 사람을. 환자와 보호자가 탈 때마다 어느 층인지 알고 내릴 층수를 누르며 웃는 사람. 같이 7층에 내리고 나서 혹시 신경외과에 볼일이 있냐고 물었다. 자기처럼 오늘 처음 출근한 인턴인가 해서. "제가 인턴 같나요?"라고 되물은 그는 알고 보니 신경외과 교수였다. 남들보다 조금 늦게 의사의 꿈을 이룬 안치홍(김준한 분)은, 율제병원에 온 첫날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겼다. 율제병원 안에서도 실력파로 꼽히고, 동기와 선·후배 가리지 않고 존경받는 의사 채송화(전미도 분).

선물할 장미꽃을 준비하고도 교수실 문을 두드리는 것조차 망설일 정도로 조심스러워하는 안치홍은, 남들이 보기엔 조금 느리고 답답해 보일지라도 세심하게 채송화를 챙기고 마음을 썼다. 회의 시간에 우연히 발견한 채송화의 신발을 보고 새것을 선물하는가 하면, 보고서를 작성하느라 밤샘을 앞둔 채송화에게 '이미 커피는 많이 마셨을 것 같아서' 디카페인 커피를 들고 왔다.

단, 결정적인 순간엔 직진했다. "너, 혹시 나 좋아해?"라는 채송화의 물음에 "네, 좋아해요"라고 답했다. 이익준(조정석 분)이 채송화를 좋아하냐고 했다가 동경하냐고 질문을 고쳤음에도 "좋아합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 진중한 '치홍샘'이 가장 의외의 모습을 보였던 건 생일날 받고 싶은 선물이 없냐는 채송화에게 반말을 하고 싶다고 한 순간이었다. 막상 꺼낸 말은 평범했다. "조심해서 가. 월요일에 병원에서 보자."

이 장면이 포함된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 11화가 방송된 후 반응은 꽤 떠들썩했다. 설렜다 혹은 부담스러웠다 두 가지로 갈렸으나 '안치홍답지 않다'라는 데는 의견이 모였다. 그래서 더 궁금했고, 묻고 싶었다. 이런 전개를 대본으로 확인한 배우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지난 1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 씨엘엔컴퍼니에서 김준한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김준한은 '오, 치홍이가?'라고 생각했다며 본인 역시 놀랐다고 밝혔다. 채송화를 둘러싼 삼각관계를 궁금해하는 주변인들이 많았으나, '스포 방지'를 위해 함구했다고도 덧붙였다.

다음은 일문일답.

▶ '슬의생'이 종영했다. 소감은.

너무 아쉽다. 하면서 너무 즐거웠고 찍으러 간 현장도 되게 분위기가 좋았다. 되게 가족적이고, 스태프분들도 너무 사람들이 좋으시고. 방송 나오는 거 보면서도 결과물이 너무 좋으니까 뿌듯하기도 하고. 시청자로서 방송 끝나는 게 너무 아쉽고 그렇다.

▶ '슬의생'은 오디션을 본 건가.

미팅을 하러 가긴 했는데 사실 이미 감독님이 마음에 두시고… (웃음) '감빵생활' (출연)했으니까 인사 차원으로 간 건데, 감독님이 대사 주시는 거 한 번 읽어봤다. 그러니 "그거 하면 돼"라고 하셔서 "그렇구나" 했다. (일동 웃음)

▶ 그때 읽었던 대사가 혹시 무엇이었는지 기억하나.

치홍 대사였던 거 같다. (웃음) 오래돼가지고… (웃음) 촬영을 7개월 동안 해서… 치홍 대사였던 것 같다.

김준한은 '슬의생'에서 신경외과 레지던트 3년차 안치홍 역을 연기했다. (사진='슬의생' 캡처)
▶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는 해롱이(이규형 분)의 애인으로 출연했고, 이번이 신원호 PD-이우정 작가와 두 번째 호흡이었다. 어땠나.

사실 음… 부담보다는 기뻤다. (웃음) 감독님이랑 한다는 거 자체가! (웃음) 또 찾아서 불러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설렜다. 이번엔 (작품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하시려나 기대됐다.

▶ 자신을 왜 안치홍 역으로 캐스팅했는지 제작진이 이야기해 준 적이 있나.

뭔가 감독님이, 저를 여러 가지로 보시는 거 같다. 약간 웃긴 애나 수다쟁이로도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제가 그전 드라마에서는 좀 악역을 많이 했는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하시더라. 다른 모습도 있다,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거를 보여주고 싶다 하는 말씀을 저한테 해 주셨다.

▶ 언급한 것처럼 '시간', '봄밤' 등 전작에서 주로 악역 이미지를 많이 맡았다. 이번엔 '착한' 역할이었는데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어떤 역할을 하든지 다 재밌다. 그 역할 나름의 피드백을 보면서 되게 혼자 키득키득하는 게 있다. 왜냐하면 그 역할에 맞게끔 연기했다는 거니까 재미있기도 하고. 참 재미있는 게, 저를 어떤 작품으로 (처음) 봤느냐에 따라 이미지를 다르게 갖고 있더라. '허스토리'로 보신 분들은 순하게 보시고, '봄밤'으로 보신 분들은 저를 지질하고 짜증 나게 보고, '시간' 보신 분은 쓰레기로 생각하고. (일동 폭소) 아, 그리고 저희 어머니는 (제 역할을) 캐릭터로서 못 보시더라. 아들이다 보니까. (전작을 보시고) '이번엔 착한 역할을 해'라고 하셨다. ('슬의생' 보고) 좋아하시더라.

▶ 안치홍은 자기 서사가 탄탄한 캐릭터라고 봤다. 안치홍을 그리기 위해 어떻게 접근했는지.

어, 사실은 뭐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대본을 충실히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대본이란 건, 어떻게 보면 사실 내지는 결과를 제시해주는 건데 그 사실과 결과 사이에 있는 어떤 이유를, 인간적으로 그리고 납득이 가도록 채워나가는 거다. 너무 뻔한 대답일 수 있는데, 정말 기본에 충실히 하려고 했다. 막 어떤 인물로 보이려고 의도한 건 없었다. 대본이 그렇게 쓰여 있으니 저는 (그에 맞춰) 그런 식으로 연기했다고 생각한다. 말씀하신 대로 작가님이 너무 서사를 탄탄하게 써 주셔서 사실 좀 감사했다.

▶ 안치홍을 연기하면서 마음이 가거나 본받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음… 치홍이의 어떤, 과묵한 모습? (웃음) 때로는 말이라는 게 약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될 때도 있지 않나. 근데 저는 말을 좀 즐기는 편이어서! (웃음) 물론 말을 좋아하는 저 자신을 좋아하는데 때로는 (치홍의) 그런 과묵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막판에 좀 이성을 잃긴 하지만. (일동 웃음) 되게 배려심 넘치는 사람이다. 되게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낸다는 건, 쉽게 가질 수 없는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 때문에 많이들 좋아해 주신 게 아닐까.

▶ 의사 역할은 처음이지 않았나. 의사 역할을 위해 어떤 것을 준비했는지 궁금하다.

어… 법의학자를 한 적이 있었는데, 법의학자가 맞나? 덕환이는 확실한데… (일동 폭소) 내가 해 놓고도… (일동 폭소) 아, 사실 제가 의사로서 준비하…려고 시도를 했다가 바로 내려놨다. 아, 이거는 말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완전히, 무슨 메소드처럼 진짜 의사분들처럼 공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정말 존경스러웠다. 정말 공부량이 어마어마해서. 저희는 그냥 보기에 거북스럽지 않을 정도로 했다. (웃음)


안치홍은 율제병원 인턴 첫 출근날 엘리베이터에서 채송화 교수를 만나고 인턴으로 오인한다. (사진='슬의생' 캡처)
대신 그런 건 있다. 저희 장면에서 나온 용어 뜻이나 이게 지금 뭘 얘기하는지에 대해서는 적어도 충분히 이해하고서 연기하려고 했다. 그것도 모르고, 모르는 언어를 떠들면 안 되니까. 그건 정말 사기이지 않나. (웃음) 그렇게는 안 하려고 했고, 최소한 주어진 것만큼은 이해하고 하려고 노력했다. 수술 신 같은 경우도 자문 선생님들이 계속 상주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다 봐주셨다. 어쨌든 최선을 다했다. 물론 진짜 의사분들이 보시기엔 부족한 부분이 있을지 몰라도 나름 완성도 있다고 얘기를 보내주셔서… (일동 웃음) 그러시더라. 감사하다.

▶ 안치홍이 어떤 의사가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바란 점이 있나.

글쎄, 뭐 치홍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으면 좋겠다. (웃음) 저는 치홍이 편이니까. 12부에서 뭔가 의사로서 하나의 전환점을 맞게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치홍이의 관점으로 보자면 하나의 성장이기도 했고, 그래서 좀 더 의사로서 성숙해가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안치홍은 채송화를 둘러싸고 이익준과 삼각관계를 이뤘다.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주변에서 엄청 물었을 것 같다.

그걸 너무 많이 물어보셔가지고… 사실 스포하면 안 되지 않나. 재미도 없고. 그분들을 위해서 함구했다. (웃음)

▶ 삼각관계가 있다는 걸 전부터 알았나.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감독님이 넌지시 얘기해주셔서 조용히 알고 있었다.

▶ 러브라인이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했을 것 같은데.

(웃음) 저도 대본 한 회 한 회 나올 때마다 기다렸다.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아직까지 명확하게 결론이 난 건 아니지만, 작가님이 생각이 있으실 것 같다. 근데 항상 기대 이상의 뭔가를 주시니까 오히려 시즌 2가 기다려진다.

▶ 안치홍은 채송화를 왜 좋아하게 됐다고 생각하는가.

어… 사실 처음에는 대본을 보고 (치홍이) 나이가 있기 때문에 바로 풍덩 (사랑에) 빠지는 그런 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떤 존경의 마음, 동경의 마음으로 시작된 것이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근데 같이 출연한 신현빈 배우(장겨울 역)가 '그런 게 아닐 수도 있겠다'고 얘기하더라. 사랑에는 이유가 없는 거 아닌가. 우리는 모든 것들에서 어떤 이유를 찾으려고 하지 않나. 때로는 그런 이유가 없는 것들도 있기 마련인데, 어떤 감정이란 게. 그 말이 되게 힌트가 됐다. 내가 모든 걸 합리적으로 (이유를) 찾으려는 것 자체가 '그건 사랑이 아닌데'가 되어서.

안치홍은 자신의 생일날 뭘 받고 싶냐고 묻는 채송화에게 반말해도 되냐고 물어본다. (사진='슬의생 캡처)
▶ 안치홍의 사랑 방식에 공감했나.

어, 아… 그렇게 저는 그런 순수함을 잃은 거 같다. (일동 폭소) 뭐 치홍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한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도 참 대단한 것 같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요즘은 관계에 있어서 모든 것들이 빨라지지 않았나. 저 아주 어렸을 때를 얘기하자면 삐삐조차 없었던 시절도 있었다. 부모님 시절보다 관계(의 속도)도 훨씬 빨라졌는데, 치홍이는 참 어떤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잃지 않는 거 같아서 사실 연기하면서는 되게 좋았다. 그래서 그랬는지 벗어나는 것도 좀 힘들더라. 잘 안 벗어지더라. 힘들었다, 한동안. (웃음) 매듭이 아직 안 됐다.

▶ 한편으로는 안치홍의 사랑 표현 방식이 부담스럽게 다가온다는 반응도 있었다.

아, 근데 뭐 사실 저는 연기하는 사람이고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는 시청자들의 몫이니까 그런 모든 의견 하나하나가 다 맞는 얘기라고 본다. 제가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웃음) 단지 저는 만든 사람으로서 몰래 그걸(반응을) 보고 있다. (일동 웃음)

▶ 11회에 나온 반말 장면이 큰 화제였다. 안치홍답지 않다는 반응이 쏟아졌는데, 대본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놀랐다. 저도 좀 놀랐다. '오, 치홍이가?' 이런 생각을 좀 했다. 도대체 이 친구가 왜 이렇게 행동하게 됐을까. 자기의 리듬을 잃은 거라고 생각했다. 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에 빠지면. 사람이 항상 정신을 붙잡고 있을 수 있으면,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자기 리듬을 잃는 순간이 있지 않나. 참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치홍이가 그래서 놀라셨을 수 있는데 치홍이도 사람이라는 거…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뭐 그게 잘했다 잘못했다를 떠나서 사람이기 때문에, 뭔가 리듬을 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순간이 되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방향을) 찾아서 연기했다.

▶ '슬의생'은 주인공 5인방뿐 아니라 병원 안팎의 사람들 이야기를 고루 다루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제가 나온 것 중에는… 내 얘기만 하네? (일동 폭소) 저는 김현수 환자랑 갑상선 수술 에피소드를 연기하면서 제가 오히려 되게 위로가 많이 됐다. 그 장면이 좀 기억에 많이 남고, 다른 분들 연기하신 것 중엔 어린 엄마 아빠가 나오는 것! 신달기 씨가 엄마로 나오는데 너무 슬프더라. 그리고… 너무 많이 얘기하나? (웃음) 12부에도 정말 슬픈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어머니가 아들 배냇저고리 딱 주는 것. 생각하니까 눈물 날 것 같다. 수어 하는 장면도 생각난다. 의사 선생님들이 진짜 대단하시다. 그 많은 사건을 항상 몸에 부대끼고 살아가야 하는 직업이니까. 공부도 많이 해야 하고 기술적으로 훈련해야 하고 감정적으로도 힘들고. 진짜 존경한다. <계속>

배우 김준한 (사진=이한형 기자/노컷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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