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사위만 가면 '함흥차사', 이유있었나

국회 상임위, 이견 여전한 법안들 가결해 법사위로 넘기기 일쑤
민감한 현안 조정은 물론 법안 완성까지 떠넘기기도
민주, 법사위서 체계자구심사 권한 뺀 '일하는 국회법' 곧 발의
"상임위가 법률적 판단까지 책임지게 하면 떠넘길일 없다"
통합당, 성급한 법사위 권한 조정에 대해 우려
"총리실도 조정 못하는 부처간 이견을 상임위끼리 모인다고 되겠나"

20대 국회 법사위원회 회의장 자료사진 (사진=윤창원 기자)
'법사위만 가면 함흥차사'라는 말로 대변되는 법안 발목잡기 비판이 적지 않았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월권 논란의 이면에는 '법안 떠넘기기' 관행도 한몫했다.

소관 부처의 이해와 이익단체의 입김에 휘둘릴 수 있는 법안을 상임위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법사위 조율에 맡겨왔던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슈퍼 여당이 법사위 체계·자구심사 권한 폐지에 나서면서, 쟁점 법안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해당 상임위를 뛰어넘어 복수의 부처나 단체에 걸쳐있을 경우 이견을 누가, 어디서,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대안을 찾는 것이 고민 거리로 떠올랐다.


◇ "그것은 법사위에서…"

#장면1 : 2020년 5월 11일 행정안전소위,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토론 도중

소방시설공사를 발주할 때 부실 저가 하도급을 막기 위한 목적이지만, 하자 책임을 둘러싼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았던 만큼 합의처리를 못하던 상황에서 법사위 조율 단계로 넘기자는 제안이 나왔다.

2020년 5월 11일 행정안전소위,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 회의록 일부
김병관 의원 : "이게 16대부터 계속 법안이 올라왔는데 논의의 진척이 안 됐는데 어쨌거나 지금 행정안전부, 소방청하고 어느 정도 협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 행안위에서는 어느 정도 합의해서 올려 보내고 %7B"text":"아마 최종적으로는 법사위에서 다시 다른 부처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하거든요.","bold":true%7D"

#장면2 : 2019년 12월 11일 환경노동위원회 환경소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 논의 중

2019년 12월 11일 환경노동위원회 환경소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개정안 회의록
김동철 의원 : "분야만 환경 분야라는 것뿐이지 처음부터 끝까지 전문적인 분야여서 %7B"text":"우리가 여기에서 갑론을박을 해 가지고 법안을 만들어 봐야 그것 자체를 법사위에서 처음부터 다시 또 논의를 해야 될 그런 성질의 것이라서…","bold":true%7D법안을 완성만 좀 시켜가지고요. 각 조항별 또는 전체 체계적으로 '고민점이 어디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것을 법무부, 기재부 이렇게 해 가지고 법사위에서 논의를 해 줘야지 여기서 우리가 하는 데에는 인적 역량이나 모든 측면에서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요"(후략)
임이자 의원 : "그런 경우가 있나요?"
김동철 의원 : "그런 게 없지요. 없는데…지금 이렇게 갑자기…이것 안 돼요."

상임위가 법안에 의견만 달아 법사위에서 조율하도록 하자고 하자, 반대의견이 나온 셈이다.

#장면3 : 2016년 5월 1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로 형이나 치료감호를 선고받은 사람이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교육부가 법률적 판단을 마치지 못했다며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2016년 5월 11일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 회의록
박혜자 의원 : "학운위원들은 아동들을 상대하게 되고 학교의 모든 결정을 하는 데…아동·청소년에 대한 성범죄자가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잖아요."
(도종환·이종훈·박인숙 의원 맞장구)
이영 교육부 차관 : "저희도 취지는 동의드리는데, 이게 헌법재판소 (위헌 취지의) 판결이 있기 때문에"
(신성범 소위원장도 신중론)
이종훈 의원 : "%7B"text":"법사위에서 판단하라고 그래요","bold":true%7D"
박혜자 의원 : "%7B"text":"예, 법률적인 그것은 법사위에서 할 일이고","bold":true%7D"
(중략)
도종환 의원 : "어쨌든 우리가 결정하면 된다"
신성범 소위원장 : "법률적인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 교통정리 빨간펜…조율사는 누가?

이런 식으로 법사위는 각 상임위에서 '교통정리'가 안 된 법안들을 떠안는 일이 빈번했다. 특히 재정당국의 반대에 부딪힌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에 따라 체계·자구심사권한을 내세워 타 상임위 소관 기관들을 법사위로 불러모은 뒤 '빨간펜'을 들었던 것. 물밑에선 여야 원내지도부가 분주히 움직였다.

법사위도 법안의 체계·자구 등 형식에 문제가 없었지만 소속 정당의 당리당략이나 개인의 소신 등을 내세워 '1인 몽니'만으로도 법안에 제동을 건 사례가 적지 않았다. 사실상 여야의 합의가 법사위 문턱을 넘기 위한 필요조건이었던 것.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민주당,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 기능 분리 추진

민주당은 체계·자구심사의 단순 기술적 기능은 국회의장 산하에 기구를 둬서 검토하게 하자는 일명 '일하는 국회법'을 발의할 예정이다. 거꾸로 보면 통합당이 견제권을 내세워 이에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다양한 이해를 조정해온 순기능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국회법 63조에 규정된 '연석회의'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목소리가 있다. 위원회끼리 연석회의를 열어 의견을 교환하는 방식이다.

다만, 상임위 간 이견을 좁히긴 쉽지 않아 보인다. 지난 20대 국회 때는 대우조선해양 경영 부실화를 두고 청문회를 위해 기획재정·정무위원회 연석회의가 한번 열린 적이 있었을 뿐이다. 쟁점 법안 논의를 위한 연석회의가 지난 19대에서 두 차례 있었지만 법사위 소위 차원에서다.

20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을 지낸 한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에서 어차피 발목을 잡을 것을 알고 있다 보니 타 상임위에서 그렇게 법안을 쉽게 떠넘긴 것이지 법률적 검토까지 상임위에서 다 하게 되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며 "원내대표 간 합의된 법안은 부실해도 처리하고, 합의가 되지 않은 법안은 멀쩡해도 통과를 시키지 않았었는데, 잘못된 관행을 지속하자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고 말했다.

반면 역시 법사위원 출신인 한 통합당 의원은 "부처 간 이견이 심해 국무총리실에서 조차 조율이 되지 않는 법안들도 있는데, 이런 갈등을 권한의 수준이 같은 각각의 상임위가 만난다고 해서 해결이 되겠느냐"면서 "법사위에서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다른 곳으로 이관하게 되면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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