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갑룡 경찰청장이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신촌캠퍼스 '한열동산'에서 열린 고(故)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서 이 열사 어머니 배은심 여사를 만나 사죄했다.
민 청장은 "경찰의 공권력 행사로 비극이 초래된 데 대해 지난날 과오를 참회한다. 이 자리에서 늦게나마 용서를 구하게 됐다"며 "어머니께서 이렇게 마음을 풀어주시니 저희가 마음 깊이 새기고 성찰하면서 더 좋은 경찰이 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3년 전 오늘 이 자리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이한열 열사의 모습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며 "이 열사님이 늘 꿈꿔왔던 자유롭고 정의로운 민주 대한민국의 뜻을 깊이 성찰하며 경찰도 민주·인권·민생 경찰로 부단히 나아가 그 뜻을 이루는 데 동참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찰 수장이 이한열 열사의 유족을 만나 직접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은 처음이다. 앞서 이철성 전 경찰청장은 2017년 6월 경찰개혁위원회 발족식에서 이 열사와 고(故) 박종철 열사 등을 언급하며 사과한 적은 있다. 이날 민 청장의 추모식 참석은 경찰 측에서 먼저 의사를 밝히고 배 여사 측에서 수용하며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한열 열사는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87년 6월 9일,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쓰러졌다가 같은 해 7월 5일 숨졌다. 그의 죽음은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이한열기념사업회가 주최한 이날 추모식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채 열렸다.
연세대 서길수 경영대학장은 추모사에서 "이한열 열사를 떠올리며 오늘날의 청년을 생각한다. 1980년대의 청년 이한열이 그랬듯, 2020년 이 시대의 청년들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명제를 실천하고 있다"며 "역사 속 인물로 남아 있는 이한열이 아니라, 지금의 청년들 곁에서 함께 살아 숨쉬는 이한열이 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추모식에서는 '한열이를 살려내라' 동상 제막식도 함께 열렸다. 본래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최병수 작가가 1987년 이 열사가 최루탄에 맞은 직후 동료 이종창씨의 부축을 받는 모습을 본뜬 판화로, 당시 걸개그림으로 사용됐다. 이를 본따 지난 2017년 30주기 추모식 때 철제 조형물이 만들어졌는데, 이번에 공개된 동상은 이를 기반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