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 위장한 '학대'의 굴레…친권자 징계권 필요할까

학대 당한 아이들, 집으로 돌아가 '재학대' 노출
아동학대자들 "훈육이었다"…전문가들 "체벌은 폭력일 뿐"

천안에서 9살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에 가두는 등 학대행위를 한 계모(왼쪽)와 인천시 미추홀구에서 5살 의붓아들을 숨지게 한 계부 (사진=연합뉴스)
대한민국은 지금 훈육과 학대를 구분 못하는 어른들로 시끄럽다. 아이들의 보금자리가 돼야 할 가정은 잔인한 폭력으로 얼룩졌고, 아이를 학대한 부모들은 '훈육했다'는 핑계를 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이들이 학대를 당했어도 의지할 곳이 없어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가 또다시 학대의 굴레에 갇혀버린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학대 가정에 대한 회복 가능성과 아이의 정서 상태 등을 살펴 원래 가정으로 돌려보낼지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0명 중 1명 '재학대'…"돌아갈 수 있는지 면밀한 검토 필요"

올해 1월 계모 B(31)씨는 언어장애 2급 장애를 갖고 있던 A군(9)이 시끄럽게 돌아다니며 저녁 식사 준비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속옷만 입힌 채 찬물이 담긴 욕조에 1시간동안 앉아있게 하는 등 학대를 해 숨지게 했다.

과거 아동보호전문기관은 2016년 2월과 5월 학대 피해를 본 A군을 21개월가량 부모와 격리 조처했지만, A군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2018년 2월 "학교에 보낼 나이가 됐으니 잘 키워보겠다"는 부모에게 인계됐고 집으로 돌아온 A군은 결국 싸늘한 주검이 됐다.

지난해 국민적 공분을 산 인천시 미추홀구 계부의 의붓아들 살해사건도 마찬가지다. 계부 C씨(27)는 의붓아들인 D군(5)의 손과 발을 케이블 줄과 뜨개질용 털실로 묶고 20시간 넘게 얼굴과 팔다리 등 온몸을 1m 길이 목검으로 심하게 때려 숨지게 했다. 과거 자신의 학대로 인해 2년 넘게 보육원에서 생활하던 B군을 집으로 데리고 온 지 한 달 만에 살해한 것이다.


학대 피해 아동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현행법(아동복지법 제4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인지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A군의 경우 사망 사건 발생 1주일 전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이 집을 방문했지만 아이의 죽음을 막지 못했고, 5살 의붓아들을 살해한 C씨도 사건이 발생하기 전 학대 예방을 위한 대면 상담과 부모 교육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소용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도권 대학 상담학과 한 교수는 "아이들은 학대를 당했더라도 아직 나이가 어려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은 '양가감정'을 갖게 마련이며, 아이의 의사를 반영한다는 건 쉽지 않은 문제"라며 "피해 아동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전문가들의 의견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학교 선생님, 사례를 관리하는 사회복지사 등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는 "학대 피해 가정이 일반적인 가정으로 회복될 수 있는지 더욱 세심하게 살펴봐야 한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에만 그 판단을 맡기는 것보다 정신과 또는 상담 전문의 등 여러 방면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담당하는 아동 학대 사례가 워낙 방대하고 기관 내 아동학대 사례전문위원회 비상근직 위원도 많아 가정의 회복 가능성을 자체적으로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것 같다"며 "아동보호전문기관 수를 더 늘리는 등의 대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동학대에 대한 특성을 분석한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학대 주요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 중 재학대 사례는 총 2543건, 재학대 아동 명수는 2195명이다.

2018년 전체 아동학대사례 24604건 대비 재학대 사례는 10.3%로 아동 10명 중 1명이 재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픽=안나경 기자)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변명…"훈육일 뿐"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은 자신의 폭력·학대 행위를 '아이들을 위한 훈육'이었다고 변명한다. 훈육 방식에는 진정성 있는 대화와 적절한 보상 등 다양한 방법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훈육 방식으로 '부모의 자녀 체벌이 필요하다'는 인식도 여전히 강하다.

9살 의붓아들을 여행용 가방 안에 한동안 가둬놓고 끝내 숨지게 한 지난주 천안 계모 사건, 9살 여자아이가 상습학대를 참지 못하고 어른 슬리퍼를 신고 잠옷 차림으로 뛰쳐나온 경남 창녕군 사건 가해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천안 계모(43)는 "거짓말에 대한 훈육 차원"이라고 주장했으며, 경남 창녕군에서 9살 여자아이를 상습학대한 계부(35)와 친모(27)는 경찰조사에서 "말을 듣지 않아 그랬다"고 진술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특성을 분석한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가해자들의 눈에 띄는 특성은 그들이 양육 방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으며 양육 태도도 정상가정의 부모에 비해 상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이들 중엔 "어린 시절 나도 이렇게 컸다", "학대가 아닌 아이를 위한 훈육이었다"고 답변한 사람도 많았는데 이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아동학대범들이 하는 이야기와 상당부분 일치한다.

특히 사망사례 학대행위자 10명 중 8명이 아동의 부모인 점을 보면 친부모들이 훈육을 한다는 이유로 아동학대를 저지르는 상황. 현행 민법에서는 친권자의 징계권을 인정하고 있지만 최근 한 조사에선 60년 전 제정된 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이 조항을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53%가 넘었다. 일부 부모가 자녀를 학대한 뒤 방어용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보건복지부의 '2018년 아동 종합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 부모 10명 중 6명이 '자녀를 키울 때 체벌은 필요없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실제 전문가들은 체벌이 아이 훈육에 전혀 효과가 없다고 지적하며, 지속적인 체벌은 '아동학대'의 일종이며 훈육이 아닌 폭력행위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소아청소년과 한 교수는 "아이들 중 일부는 체벌을 당했을 때 내가 잘못해서 벌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 일부는 '왜 맞는지 모르겠지만 어른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나에게 고통을 주는구나'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면서 "이는 자신보다 약한 사람을 대할 때 힘을 사용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심어줄 수 있으며, '체벌'이라는 명목으로 학대가 대물림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지역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신체적으로 고통을 줌으로써 아이들의 문제행동을 고칠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없다. 체벌은 폭력일 뿐이다"며 "아동들은 체벌을 통해 오히려 폭력성을 학습해 미래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으로 악순환의 고리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체벌 근절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는 이미 형성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보건복지부는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발표하면서, 체벌에 관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고 가정 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친권자의 징계권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등 한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민법 915조는 '친권자는 그 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조항은 아동 체벌을 정당화하는 사유로 인용됐고 아동복지법상 체벌 금지 조항과 상충하는 면이 있었다.

친권자 징계권 조항은 1960년에 만들어진 이후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고, 친권자 징계권을 명문화한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정도로, 스웨덴 등 54개국은 이미 아동 체벌을 법으로 금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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