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나 마음씨가 깨끗하여 아무 허물이 없다는 뜻의 '결백'. 비슷한 말로 '무죄'가 있다.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범죄에 대하여 법이 결정한 무죄 판결, 법적 결백이 가진 비인간성을 목도할 때가 있다. 무엇을, 누구를 위한 결백인가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그런 결백의 아이러니를 추적하는 영화가 바로 '결백'이다.
'결백'(감독 박상현)은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벌어진 막걸리 농약 살인사건, 기억을 잃은 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엄마 화자(배종옥)의 결백을 밝히려는 변호사 정인(신혜선)이 추시장(허준호)과 마을 사람들이 숨기려 한 추악한 진실을 파헤쳐가는 무죄 입증 추적극이다.
평범한 시골 농가의 장례식장, 농약을 탄 막걸리를 마신 마을 주민 1명이 사망하고 4명이 중태에 빠진다.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급성 치매에 걸려 조문객 맞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남편의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던 화자다. 그러나 아무도 이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모든 정황이 화자를 '유죄'로 몰고 간다.
여기에 유일하게 반기를 들며 화자의 무죄를 입증하려는 인물이 있다. 집을 나간 후 고향과 발길을 끊고 지냈던 대형 로펌 에이스 변호사이자 화자의 딸 정인이다. 그는 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사라진 기억과 사건 현장을 홀로 더듬어 나가며, 추시장을 중심으로 한 마을 권력의 견제를 막아내며 이 기묘한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해나간다.
현대 사회에서 '무죄' 여부는 법정에서 어떻게 싸움을 가져가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에서 '무죄 입증 추적극'이라는 수식과 '결백'이란 제목은 흥미롭다. 화자는 법적으로는 사실 명백한 '유죄'다. 그러나 화자의 서사를 모두 목격하고 그의 감정선을 뒤쫓은 관객은 법적 판단을 뒤로한 채 감정적으로 그에게 무죄를 주고자 한다.
실제 사회에서도 법의 판단과 인간으로서의 판단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법에 저촉되는 행위이지만, 그 행위가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격렬하지만 불법적인 저항의 행위가 될 때 그 간극은 더욱 벌어진다. 예를 들어 인간성을 파괴하려는 폭력에 저항하다 유죄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 더욱 그러하다.
진실을 모른 채 현 남편과 살아 온 시간이 끔찍한 충격이 되어 밀려오며 화자의 모든 세계가 무너져 버린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다는,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다는 화자의 절망감과 슬픔과 분노가 임춘우를 죽인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게 된다.
관객들의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또 한 명의 인물은 추인회 시장이다. 추시장은 직접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배후에 서서 타인의 손을 통해 죄를 저지르는 인물이다. 임춘우의 죽음도 마찬가지다. 살인교사 혐의가 적용될 수는 있어도 살인 혐의가 직접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다. 법의 사각지대에 서서 법적인 모호함을 지닌 인물이다. 그러나 관객은 추시장은 명백한 살인범이며, 30여 년에 이르는 죄과의 중심에 있음을 잘 안다.
이런 화자와 추시장을 보며 관객은 법적 판단과 도덕적 내지 인간적 판단 사이에서 갈등한다. 과연 유죄란 무엇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결백이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과 마주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결백'은 우리가 사회에서 겪게 되는 결백에 관한 아이러니 같다.
이 무죄 입증 추적극의 중심에 서서 극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정인이다. 아들이, 장남이 아니라는 이유로 가부장 사회인 가족 안에서 핍박받고 배제된 인물이었다. 그녀에게 집은 포근하고 안락한 공간이 아닌 지옥 그 자체였다. 자신의 미래마저 가로막으려는 아버지의 독단에 맞서 극단적 시도를 택하기도 하고, 결국 집을 떠나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일어선 인물이다.
그랬던 정인이 단절된 가족 안으로 돌아와 권력의 중심에 있던 아버지 대신 가족을 지키고, 남성 중심 권력을 바탕으로 범죄를 저지른 추시장 일행을 단죄한다. 달라진 우리 사회 여성의 위치와 여성의 미래에 대한 입증극인 셈이다. 그렇기에 남성 중심 가부장 사회를 향한 이른바 'K-장녀'(Korea의 K와 맏딸을 뜻하는 장녀의 합성어), 'K-딸내미'의 외침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정인을 응원하게 된다.
'결백'이 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보이는 화자의 과거사와 화자의 급성 치매 상황, 모녀 사이의 화해가 다소 통속적인 모습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모두가 자신을 옥죄어 오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법정에서 화자의 결백을 입증해내는 결말이 주는 통쾌함도 상당하다. 이 모든 상황과 과정, 감정에 당위성을 불어넣은 신혜선, 배종옥, 허준호 등의 연기 역시 '결백'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감독이 공들인 듯한 오프닝 신과 접견실 신 등은 주목할 만하다.
6월 10일 개봉, 110분 상영,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