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장식품'이 아니야…'미스비헤이비어'

[노컷 리뷰] 외화 '미스비헤이비어'(감독 필립파 로소프)

(사진=판씨네마㈜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책 '82년생 김지영'을 읽거나 '걸스 캔 두 애니씽'(Girls Can Do Anything)이 새겨진 티셔츠를 입은 여성 연예인은 비난의 표적이 된다. 여성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순간, 여성이 여성을 옹호하거나 여성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는 목소리를 내는 순간 비난의 대상이 된다. 지금보다 더 엄혹하던 1970년대, 이러한 차별과 편견에 맞선 이들이 있다. 영화 '미스비헤이비어' 속 여성들이다.

'미스비헤이비어'(감독 필립파 로소프)는 성적 대상화를 국민 스포츠로 만든 세계적인 축제 미스월드에 맞서 진정한 자유를 외친 여성들의 유쾌한 반란을 담은 페미니즘 드라마다.

영화의 제목인 '미스비헤이비어'는 두 가지 뜻이 있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행동'(MISBEHAVIOUR) 혹은 '미스-월드를 반대하는 미스-비헤이비어'(MIS-BEHAVIOUR)다. 후자는 접두사 미스(MIS-)가 '미스월드'의 미스(MISS)와 발음이 같아서 생기는 언어유희다.

1970년, 달 착륙과 월드컵 결승전 때보다 더 많은 숫자인 1억 명의 인구가 '미스월드' 중계를 지켜봤다고 한다. 외모와 몸매 등 외적인 기준, 그것도 남성이 바라보는 이른바 '이상적인' 미모를 지닌 여성에게 등급을 매기는 성적 대상화 축제가 '국민 스포츠'처럼 여겨졌다.

피부색에 따라 인간을 나누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자 편견이라는 의식과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반(反)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라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제법 큰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교육받는 것조차 차별받고, 여성은 외모와 몸매로만 보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때다. 여성이라 차별이 가능했고, 여성이기에 배제하는 게 당연시됐다.

이처럼 여성을 향한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에 맞선 여성들의 실제 투쟁을 그린 게 '미스비헤이비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계에서 무시당하지만 실력으로 이기겠다는 여성 운동가이자 역사가 샐리 알렉산더(키이라 나이틀리), 성적 대상화의 주범 미스월드에 한 방 먹일 작전을 짠 페미니스트 예술가 조 로빈슨(제시 버클리)은 "우리는 예쁘지도 추하지도 않다! 우리는 화가 났을 뿐!"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미스월드에 반기를 든다.

(사진=판씨네마㈜ 제공)
이들이 외치는 구호와 노선은 다르지만 인간을 향한 또 다른 차별인 인종 문제에 목소리 낸 여성도 있다. 역사상 최초의 미스 그레나다로서 흑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은 제니퍼 호스텐(구구 바샤-로)이다. 백인이 중심인 세상, 백인이 독점하던 미스월드의 관행처럼 여겨지던 편견을 깨고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것이다. 흑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속 여성들의 투쟁에서 고민과 물음을 던지는 인물 중 하나는 바로 제니퍼다. 비록 성적 대상화 대회에 나갔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인종차별을 이겨내고자 한 인물이다.

이는 쟁취하고자 하는 것과 다른 길을 걸으며 또 다른 방법으로 차별에 맞서는 이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과제와 연결된다. 우리가 외치는 것과 사뭇 다른 결을 가진 목소리로 세상을 향해 싸우는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과연 비난할 수 있을지 되묻게 한다.

샐리, 조, 제니퍼의 투쟁과 외침은 50년의 세월이 흐른 2020년 현재에도 전혀 새로운 구호가 아니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그리고 미디어에서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고 여성을 상품화한다.

여성의 외모와 몸매 등 외적 요소에 관해 당사자인 여성을 배제시키는 기준을 제시하고, 여성에게 상냥한 말투와 미소를 요구한다. 미디어는 이를 재생산해 퍼트리고, 대중은 이를 당연시한다. 이 악순환의 고리는 여전하다. 그러나 악순환만큼 샐리, 조, 제니퍼처럼 여성을 향한 세상의 차별과 편견에 맞서 목소리 내는 사람들 역시 여전히, 아니 그 이상으로 커지고 있다.

샐리, 조, 제니퍼의 세상을 향한 투쟁은 매우 멋지고 용감한 한 걸음이었지만, 영화는 이를 조금은 평범한 듯 무난하게 그려낸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영국 역사가이자 페미니스트 샐리 알렉산더의 말을 다시금 되새기고 생각하고 고민해보게 된다.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말이니 말이다.

"여성은 물건이 아닙니다. 장식품도 아니고요. 누굴 기쁘게 하려고 있지도 않죠."

5월 27일 개봉, 106분 상영, 15세 관람가.
(사진=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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