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출발선 가르는 부동산…"커져만 가는 박탈감"

[부동산에 담보잡힌 인생③]
부모 경제력 덕분에 일찌감치 주택 매입…강남 입성하는 30대 늘어
월급에만 의존하는 젊은층은 서울서 밀려나고 내집마련도 '하세월'
사교육이 대학을 결정하듯, '부동산 음서제'가 삶의 질 좌우

(사진=연합뉴스)
#.39세 변리사 김 모씨는 최근 23억에 송파구 O아파트를 구입했다. 구입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14억 원의 강북 지역 아파트를 처분했고, 부모님의 지원 자금, 대출 등을 통해 10억원의 자금을 만들었다. 사실 강북 지역 아파트도 과거 변리사 시험합격 후 출가하며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구입한 것이다.

서울 집값이 급등하자 30대 사이에서 부동산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일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30대는 부모로부터 증여를 통해 강남권 아파트에 입성하며 벌써부터 수십억원대의 자산가가 됐고, 사정이 어려운 30대는 대출은 물론 청약까지 포기하고 서울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김 모씨와는 달리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1억원대 수준인 30대 청년들은 서울을 벗어나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정부의 규제로 대출은 어려워져 주택구매가 힘들어 졌기 때문이다. 같은 30대지만 그들의 인생 출발점은 이미 갈라졌다.

월급만 꼬박꼬박 모은다고 해도 계층이동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점점 현실화로 굳어지고 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부동산 성공담과 실패담은 어디에서나 나오는 일상적인 대화 주제가 됐고 젊은이들의 욕망과 불안감을 자극한다.

(사진=연합뉴스)
◇밀레니얼 세대도 부동산 양극화 '심각'

'30대 금수저와 흙수저'의 양극화 현상이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는 바로 '청약시장'이다. 금수저 30대는 청약시장에서 매우 유리한 반면 자금력이 부족한 30대는 서울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상황이다.

2018년 결혼한 A씨는 지난해 강남에 사는 부모와 함께 모델하우스에 방문했다. 그는 "물량의 50%를 추첨으로 뽑는 85㎡ 초과 중대형 아파트를 보러 왔다"며, "중대형이라 가격대가 높지만 여건이 되는 상황이고, 소형평수에 비해 경쟁률도 낮아 도전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A씨의 부모도 청약만 당첨되면 일정부분 자금을 지원해줄 생각이다.

A씨와 같이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아도 일부 청년층 사이에선 청약광풍 열기는 지속되고 있다. 수도권에 있은 한 업체의 부장인 B씨는 "최근 강남권에서 청약이 취소된 물량에 젊은 직원들이 신청을 했는데 모두 떨어졌다"면서 "분양가가 아주 비쌀 텐데 부모님이나 친인척의 도움으로 일단 저지르려고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자산을 축적하는 데 부동산만 한 게 없다는 생각이 이제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30대들 사이에서도 확고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동산을 보유할 경제적 배경이 뒷받침되는 30대들의 이야기다. 자금이 부족한 30대는 서울에서 근처 경기 김포한강신도시, 인천 검단신도시 등 수도권으로 밀려나가고 있다.

정부가 9억 이상 아파트에 대해 중도금 대출을 금지한 것도 이유지만 대출을 다 받아도 이자내며 생활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30대 중소기업 직장인 C씨는 "초·중·고·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서울에서 살았는데 지금은 인천지역에 청약을 넣고 있다"며 "서울에선 더 이상 살기 힘들 것 같아 비규제지역인 인천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고,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금수저' 아니면 내집 못사나...'부동산 음서제'

무리해 전셋집을 들어가 대출이자 갚기에 급급한 서민들은 '내 집 마련의 꿈'을 포기한 반면, 부자 부모들의 지원을 받는 금수저들은 강남 아파트에 당연한 듯 입성하며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중인 E씨(32)는 오는 6월 결혼을 앞두고 있다. E씨는 지난해 말 예비신부와 압구정 현대아파트 30평대를 23억에 구입했다. 대학원생이라 수입이 많지는 않지만 구입비용은 어렸을 때 증여받은 현금으로 해결 가능해 대출을 받을 필요도 없었다.

E씨는 "불법을 저지른 것은 없다. 다만 연구실에서 위화감이 조성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굳이 밝히진 않았다. 물론 물어보는 사람도 없다"며 "신혼집이 오래된 아파트지만 투자가치도 있고, 무엇보다 도심에서 살고 싶었다. 잘못은 아니지 않나"고 말했다.

30대가 고액 주택을 매입하는 사례가 급증하자 국세청은 이들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부모로부터 증여를 받고 제대로 세금을 냈는지를 살펴보려는 것이다.

국세청 등에 따르면 고액의 전셋집에 들어갔거나 비싼 아파트를 매입했다가 올해 세무조사 대상이 된 사람은 모두 812명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30대'가 절반이 넘는 440명(54.2%)에 달했다.

30대 세무조사 대상자 수는 20대~50대 이상을 모두 합한 것(372명)보다도 많다.

부동산으로 출발선이 결정되는 과정은 부모의 경제적 후광으로 출신 대학과 향후 취업 등이 결정되는 것과 흡사하다. 값비싼 주거 비용이 단번에 해결되고 잠재적 수익이 늘어나면 당연히 가처분 소득이 많아지고 이는 삶의 질과 방식을 바꿔놓는다.

맨땅에 헤딩하듯 출발한 경우는 주거 문제 해결에 허덕이면서 가계가 쪼들리는 악순환을 겪게 될 수밖에 없다.

글 싣는 순서
①기·승·전·부동산'…둘만 모여도 아파트 얘기
②"평생 소원은 갓물주"…왜 부동산에 목매나
③인생 출발선 가르는 부동산…"커져만 가는 박탈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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