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세계' 김영민 "이만큼 운 좋은 사람 있을까요?"

[노컷 인터뷰] JTBC '부부의 세계' 손제혁 역 김영민 ②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JTBC 금토드라마 '부부의 세계' 손제혁 역을 연기한 배우 김영민을 만났다. (사진=JTBC 제공)
아직 일 년의 절반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김영민은 벌써 세 작품으로 시청자와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 12월 시작해 최고 시청률 21.683%(닐슨코리아 종합편성 기준)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끝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는 극중 이름보다 '귀때기'라는 별명으로 더 자주 불린 북한 도감청실 소속 군인 정만복으로,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는 알쏭달쏭하고 신비해 보이는 존재 장국영으로,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상습적으로 외도하는 유부남 손제혁으로.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내달 4일 개봉하는 영화 '프랑스여자'에서는 주인공 미라(김호정 분)와 20년 전 공연예술아카데미에서 함께 수업을 들은 절친한 후배 성우 역을 맡았다. 하반기 방송 예정인 JTBC 새 드라마 '사생활'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이제까지 선보인 세 작품은 흥행이나 작품성 면으로 호평을 받았기에 김영민에게 의미가 더 남다르다.

'부부의 세계' 종영 나흘 후인 지난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손제혁 역을 연기한 배우 김영민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인기를 실감하냐는 질문에 김영민은 "마스크 껴도 알아보셔서 참 기분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라며 웃었다.


◇ 극중 베드씬이 가장 다양했던 캐릭터, 손제혁

김영민은 '부부의 세계'에서 아내 고예림(박선영 분)을 두고도 외도를 즐기는 회계사 손제혁 역을 맡았다. 고등학교 동창인 이태오(박해준 분)의 아내 지선우(김희애 분)까지 욕망하는 역할이었기에, 어쩌다 보니(?) 베드씬이 가장 잦았다.

이에 김영민은 "노출 자체가 일단 부담됐다. (손제혁이) '몸짱'인 것도 이상하고, 해준이하고 둘이 운동은 시작하자고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헬스장에 갈 수 없었다. 당연히 (노출씬이) 부담은 됐다"라고 밝혔다.

김영민은 "화제가 많이 되고 논란도 됐지만 (저희가) 불필요하게 노출 장면을 찍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수위 조절을 잘하셨다. 19금(청소년 관람불가)에 맞추되 작품의 질감이랄까 그런 걸 고려해서 잘 편집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초반부 지선우와의 베드씬을 두고 '오뚝이 씬'이라고 표현해 취재진을 폭소케 한 김영민은 대본에서부터 '여성이 주도한다', '서로 이겨 먹으려고 한다'고 나타나 있었다고 전했다.

김영민이 맡은 손제혁은 친구 이태오(박해준 분)의 아내인 지선우(김희애 분)에게도 수작을 부리는 인물로 그려졌다. 김영민은 '부부의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지선우의 바닷가 씬을 꼽았다. (사진=JTBC 제공)
그는 "지선우가 (이태오의) 회계 정보를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복수심과 원초적인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서 어려운 씬이라고 생각했다. 저도, 김희애 선배님도, 감독님도, 촬영감독님도 어려운 씬이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한 번에 쫙 잘 풀린 느낌이다. 리허설부터 촬영까지 군더더기 없이 딱 끝냈다"라고 설명했다.

연기로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김희애와 호흡을 맞추는 건, 김영민에게도 뜻깊은 경험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도 김희애가 연기한 바닷가 장면이었다. 김영민은 "너무 좋더라. 연출이나 연기나 너무 합이 잘 맞은 것 같다. 그동안 쌓인 지선우의 고뇌와 고통이 대사 없이도 소름 끼치게… (나왔다)"라며 "'로마'라는 영화에도 파도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못지않게 잘 담아냈다고 생각한다. 아름답고 애절한 장면이었다"라고 말했다.

"한 회 한 회가 다 마지막회 같았는데 그걸(감정 상태를) 계속, 반년 이상을 유지하셨어요. 더 깊어지셨고요. 밀도도 더 생기고. 제가 후배로서 평가할 순 없고, '진짜 완벽하시다!' 했어요. 근데 갈수록 (이전을) 뛰어넘는 모습을 연기로 보여주시는 거예요. 그런 걸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을지 생각하게 되었고요. 시청자분들과 어떤 소통을 하고 있는지 연결해 보면, 김희애 선배님은 정말 위대한 배우가 아닌가 해요. 감히 얘기하자면, 좋은 연기와 좋은 소통을 할 수 있는 그런 경지에 다다른 배우가 아닐까 생각해요."

부부로 호흡을 맞춘 박선영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극중 예림과 하는 마지막 대화가 "되게 좋았다"라는 김영민은 "배우가 슬퍼지려고 노력해서 슬픈 게 아니라, (감정에) 푹 빠져서 하게 되더라. 박선영이라는 배우와 해서 더 좋았다"라고 밝혔다.

◇ 출연작 연이어 성공… "마음 비우려고 하는 편"

고등학교 때부터 연극에 빠져 지내던 김영민은 군 전역 후에 다시 대학에 들어가 연극을 전공했다. 20대 때는 불안한 마음이 컸다. 실력 부족에 대한 한계도 느꼈고, 일단 '앞이 안 보였다'. 일 년 동안 작품을 함께하자는 연락을 단 한 번도 못 받은 때도 있었다. 배우로서 확실한 색을 찾고 싶어서 끊임없이 자기를 탐구하고, 답을 찾으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벌이가 없어서 더 고단했다. "라면 없었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싶단다.

김영민은 올해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부부의 세계'뿐만 아니라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장국영 역을 맡아 활약했다. (사진=찬란 제공)
"저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많이 고통스러웠어요. 한 3년 주기로 내가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했는데 30대 초반 되면서 생각도 정립되고 연극을 활발하게 하면서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저희 때는 연극영화과가 있어서 (연극을 한다고 해서) 영화, 드라마에 대한 선입견은 없었고요. 같이 잘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저는) 연극 쪽으로 발이 담가졌고 대학로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연기도 그렇지만 살아가는 것, 작품을 바라보는 태도, 이런 걸 많이 배웠죠. 그걸 배우는 과정이 되게 길었던 것 같아요.

연극 하시는 분들은 (제게) '연극 또 안 하냐?' 하세요. (서)이숙이 누나가 만나서 첫 마디가 '연극 안 해?'였어요. (웃음) 일부러 안 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드라마, 영화 할 때는 하고 연극을 할 수 있을 땐 열어놓고 하는 편이에요. 아무튼 그때는 나름 힘들어서 (슬럼프가) 3년 주기로 왔는데 결국 지금까지 (연기를) 하니 되게 긴 세월인 거죠. 이제서야 빛을 보는 거고,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이 커요. 사실 두렵기도 하고요. (드라마) 두 개가 다 잘 되니까 그만큼 두려워요. 떨어질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다면 그 두려움은 어떻게 떨쳐내는 걸까. 김영민은 "내가 노력한 만큼 쭉 (인생) 그래프가 그려지지 않더라. 누구나 다 열심히 하면 될까? 어느 순간에 (실력이) 계단처럼 올라가기도 하고, 세상이 주는 경험, 나이가 주는 경험이 있었다. 희로애락을 겪으며 작품에 대한 생각도 깊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드라마, 영화,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하고 소통하고 싶은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우리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실시간으로 호응이 오니까 같이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부부의 세계'는 마치 연극처럼 관객분들이 하나의 스태프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해서 너무 감사했다. 동시대를 같이 생각하고 있는 느낌이었다"라고 부연했다.

김영민은 내달 열리는 제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영화 부문 모두 남자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사진=백상예술대상 홈페이지 캡처)
김영민은 50대로 보이지 않는 '동안 외모'로도 널리 알려진 배우다. 어릴 땐 나름대로 큰 콤플렉스였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감사하다. 김영민은 "좀 더 나이 들어 보였으면 좋겠고, (외모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다"라며 "스스로를 사랑해야 한다고 본다. 모자란 게 있으면 채워가면 되고"라고 담담히 말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캐릭터나 장르가 있냐고 묻자, 그는 "어렸을 때부터 특별히 그런 건 없었고 지금도 비슷하다. 그게 사실 계획한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라며 "작품을 꾸려갈 때 한 걸음 한 걸음 잘해야 한다는 생각만 한다. 두 작품이 다 잘 된 게 오히려 자만심이나 제 어깨에 힘 들어가는 걸 막아주는 것 같다. 하나하나 최선을 다하는 게 제 일이자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차기작은 JTBC에서 하반기에 방송되는 드라마 '사생활'이다. 영화 '프랑스여자'도 내달 개봉 예정이다. 올해 정말 '소처럼' 일하게 됐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와 드라마 '부부의 세계'로 제56회 백상예술대상 영화/TV 부문 후보에 모두 이름을 올린 것 역시 경사다. 김영민은 "상에 대한 욕심 없다. 마음을 비우려고 한다. 진짜 욕심 없다. 드라마, 영화 한 편씩 올라간 것만으로 진짜 영광이다. 후보들도 쟁쟁해서 정말 감지덕지다"라고 밝혔다.

올해의 목표를 물으니 "한 번 더 잘 되는 것?"이라고 너스레를 떤 김영민은 "예전에는 '과정이 중요하지!' 그랬는데 결과도 참 중요한 것 같다. 일한 보람을 줄 수 있으니까. 목표가 있다면 꾸준히 작품을 해나가는 거다"라고 답했다.

"한국에서 이만큼 운 좋은 사람이 어딨을까요. 코미디도, 사실적이고 진중한 작품 둘 다 잘 됐잖아요. 운이 정말 좋았죠. 운으로밖에 생각이 안 돼요. 운이 계속 좋았으면 좋겠지만, 한발 한발이 제일 중요한 거고, 내가 좀 안 됐을 때도 너무 낙담하지 말고, 잘됐다고 자만하지 말아야겠죠.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제 몫인 것 같아요." <끝>

배우 김영민 (사진=매니지먼트 플레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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