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밀히 따지면 직업으로 볼 수 없는 '건물주'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직업'이 된 것이다.
'갓물주'('건물주'를 God(신)에 빗댄 합성어)라는 신조어처럼 어느새 건물주는 부동산을 통한 자산 증식의 절대적 성공 지표로 우뚝 섰다. 거액의 자산으로 쉽게 건물을 매입하는 '슈퍼' 건물주가 아니라도 누구나 부동산 시세차익을 불리고 불려 언젠가는 건물주가 되는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물론 아파트 '내 집 마련'도 쉽지 않은 현실이기에 최근에는 위의 사례처럼 소액 투자자들이 여럿 모여 건물을 매입하고 임대 수익을 나눠갖는 상품까지 인기를 얻고 있다.
그렇다면 왜 건물주를 향한 우리 사회의 열망은 좀처럼 식을 기미 없이 더 뜨겁게만 타오를까. 건물주 지망생과 그 꿈을 이룬 건물주에게 이야기를 들어봤다.
4년차 맞벌이 부부인 이모(31)씨는 서울 소재 아파트에 전세로 거주하다가 1년 전 경기도 안양시에 첫 집을 장만했다. 감당하기 어려운 서울 집값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차피 은행 대출이 발생했으니 이제부터는 서울 재진입을 목적으로 부동산 투자에 '올인'하려는 생각이다. 우선 국가적 경제위기나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부동산 시장은 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다. 그 중에서도 서울 부동산의 '불패 신화'는 여전히 공고하다.
이씨는 "아파트 매매를 반복해서 점점 서울로 진입할 예정"이라며 "그렇게 시세차익과 퇴직금, 저축한 목돈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의 줄임말. 부동산 투자를 위해 자산을 모두 모으는 행위)해 최종적으로 서울의 어디 작은 건물이라도 매입하고 싶다"라고 장기 투자 계획을 전했다.
회사원인 이씨의 최종 목표가 '건물주'인 것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은퇴 이후 받는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보장이 어렵고, 최근 코로나19 위기로 고용불안마저 가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씨는 창업을 꿈꾸고 있다. 안정 자산인 건물은 노후를 보장하는 동시에 창업에 따른 위험성도 경감하리라는 기대가 있다.
이씨는 "국민연금만으로는 여유로운 노후 생활을 장담할 수 없다. 점점 은퇴 시기가 빨라지는 추세고 이번 코로나19로 고용불안이 피부에 와닿더라"며 "건물은 고정 임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생의 가장 튼튼한 담보라고 본다. 특히 나중에 창업을 꿈꾸는 나로서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 정도로 안정적인 부동산 자산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서울 건물주까지는 아니지만 평생 모은 자산으로 경기도 소재 신도시에 다가구주택을 보유한 50대 부부는 이씨 생각처럼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을까.
맞벌이 부부인 안모(58)씨 역시 이씨처럼 연금만으로는 노후 자금이 부족하다는 판단에 40대 초반부터 임대 수익을 얻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다.
부동산 시세차익으로 불린 보유 자산에 은행 대출을 전부 끌어모아도 당시 서울 내 건물 매입은 불가능했다. 차선책으로 퇴직금 일부를 정산해 다가구주택 단지 분양 토지를 매입했다. 이마저도 절반은 대출이었다. 이후 은퇴 시기에 맞춰 건물을 올릴 때는 또 한 번 은행빚이 늘어났다.
10억에 육박하는 대출을 다 갚는데는 꼬박 20년이 걸렸다. 빈 땅에 건물이 완공되자 7억 가량의 시세차익이 발생했지만 어차피 노후를 대비해 당장 팔 생각은 없다.
안씨는 "은퇴를 하면 아무래도 이전 같은 생활이 힘들 것 같았다. 건물을 통해 나오는 임대 수익은 일종의 연금이다. 아마 이런 목적으로 건물을 보유한 사람들은 거의 그럴 것"이라고 설명했다.
건물 보유 전보다 마음에 훨씬 여유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각만큼 상가 수익이 크지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는 "'갓물주'라고 하는데 우리 같은 영세 건물주들은 전혀 사정이 다르다. 상가 임대가 너무 어려워서 임대료를 시세보다 절반 가격으로 낮춰도 가게가 안 들어온다. 가끔 우리도 이 동네 불법 건축한 건물들처럼 방을 원룸으로 쪼개 수익을 높일 걸 그랬나 후회가 될 때도 있다. 코로나19로 사정이 어려워져 정 안되면 상가 수익이 더 괜찮은 건물로 갈아타야 하나 고민이 깊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결국 중산층·서민들에게 '건물주'의 꿈이란 물질적 욕망과 편안한 노후에 대한 갈망이 뒤섞인 것이라 볼 수 있다.
세대는 달라도 건물주가 되는 방법은 비슷하다. 근로소득을 모은 저축액과 은행 대출을 더해 일단 내 집을 마련하면 이후에는 시세차익을 위한 투자형 부동산 매매가 반복된다. 대표적 주거 형태인 아파트가 그런 투자 대상이다.
그 동안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이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감당해야 하는 비용으로 여겨진다. 만약 퇴직금 정산, 상속 등으로 목돈이 생긴다면 도달 시점은 더 앞당겨진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11일 발표한 생애금융보고서에 따르면 은퇴 후에도 생활이 여유로운 50대 이상 '금(金)퇴족' 10명 중 7명은 거주 주택 외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취업 등 경제활동으로 얻는 소득(97.6%)과 금융상품(81.7%)으로도 생활비를 마련하지만 주택·상가·토지 등의 임대소득도 50%(중복응답)나 차지한다. 근로소득이 없는 노후에도 기존 생활 수준을 유지하려면 최종 목표가 '건물주'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김은진 부동산114 리서치 팀장은 "은퇴 시기는 빨라지고 결국 노후 자금은 '현금화'돼야 하는데 재취업은 여의치 않다. 그러다보니 부동산을 통한 임대 수익에 의존도가 높아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자산가들은 부의 대물림 차원에서 이런 '건물'을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가장 왕성하게 경제활동 중인 20대~40대가 부모 세대처럼 상속 없이 '건물주'가 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본격적으로 건물주가 생겨나기 시작한 90년대와 2020년대는 부동산 시장 상황부터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연금 외에 안전망이 없고 불안하니 건물주를 꿈꾸지만 상속이나 사회적 성공으로 '시드머니'(종잣돈)를 확보하지 못하는 이상 이들이 건물주가 되기란 '로또' 맞을 확률"이라며 "부동산 시장의 팽창 규모를 중산층 근로소득 성장이 따라잡지 못했다. 90년대 생겨난 초창기 서울 건물주들은 주택의 '집주인'이었다가 상업용 건물로 재건축한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이런 흐름이 불가능하다"라고 분석했다.
모든 난관을 뛰어넘어 건물주가 된다 해도 과연 기대만큼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이 전문가는 "본래 자산이 많아서 분산 투자 개념으로 건물주가 된 사람들은 일반적인 건물주로 보기 어렵다. '돈이 많아서' 건물을 매입한 것과 '돈을 전부 모아서' 건물을 매입한 것은 엄연한 차이가 있다"며 "특히 서울 외곽의 영세 건물주들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건물 관리도 직접 하고, 상가나 원룸의 공실을 걱정하며 살아가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글 싣는 순서 |
①기·승·전·부동산'…둘만 모여도 아파트 얘기 ②"평생 소원은 갓물주"…왜 부동산에 목매나(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