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유빈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을 때 그는 본격적인 질의응답에 앞서 자신의 명함을 취재진에게 나눠줬다. 명함에는 유빈이라는 이름 옆에 아티스트/CEO라는 직함이 적혀 있었다. 여성 연예인이 회사를 세우고 대표가 되는 것은 드문 케이스다. 1인 기획사가 아니라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지향하는 것도 차별점이다. 르엔터테인먼트는 지난 3월 원더걸스 멤버인 혜림을 영입했다는 소식을 알린 바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유빈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회사를 꾸리고 싶다고 생각해 온 덕이다. 사업하시던 아버지와 JYP 수장 박진영 프로듀서를 보면서 영향을 받았다. 원더걸스 시절에도 멤버들끼리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며 아이디어 회의하던 시간이 가장 즐거웠다. '우리끼리 소소하게 같이 일할 회사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라는 말을 곧잘 주고받았다.
때마침 JYP엔터테인먼트와의 전속계약 기간이 끝났고, 유빈은 마음속으로 품어왔던 일을 실현하기에 이른다. 계속 제자리에 있는 것은 아닐까, 안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의 끝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는 데로 이어졌다. 그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하다 보니 회사를 세우는 그런 일을 저질렀다"라며 웃었다.
직접 세운 회사의 대표이자 소속 아티스트로서 첫 출발을 하는 만큼, 이번 싱글 홍보에도 직접 나섰다. "정말 무서웠다. 덜덜 떨면서 갔다"라며 긴장감과 부담감을 드러낸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을 안 거치는 부분이 없는 '대표'가 되고 나서야 '회사가 하는 일'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JYP에서 많은 걸 배웠기 때문에 이렇게 회사를 할 용기가 생긴 것도 있어요. 그때 배웠던 걸 지금 스스로 하면서 느낀 게 많은 것 같고요. 예전에 (박진영) PD님이랑 JYP 식구분들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셨는지 새삼 다시 실감하게 됐고 더 감사하게 됐어요. 이 순간을 겪으면서 '아, 내가 진짜 좋은 회사에 있었구나' 했죠."
유빈은 연차가 높아지면서 아이디어 회의나 작사·작곡 등에도 참여하게 해 준 JYP엔터테인먼트에 고마움을 표했다. 그때 쌓은 다양한 경험 덕을 지금 보고 있다면서. 유빈은 "(박진영) PD님이 걱정도 하셨지만 응원을 훨씬 더 많이 해 주셨다. '처음에 회사 할 때 이런 걸 신경 쓰는 게 좋다, 힘든 게 있으면 도와줄 테니 언제든지 얘기해라'라고 해 주셔서 너무 큰 힘이 됐다. JYP 계셨던 분들이 계속 인연이 이어져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다"라며 "그래도 제가 인복이 있는 것 같아 다행이다. 정말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는 것 같더라"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싱글만 네 장을 발표한 유빈은 "당연히 가수라면 정규 앨범에 대한 욕심이 있다. 최대한 빠르게 다음 앨범을 준비할 예정이다. 싱글이 될지, EP가 될지, 정규가 될지 그건 그때 예산을 봐야 알겠지만…"이라고 해 다시 한번 폭소를 유발했다. 그러면서도 "저는 정규를 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아티스트가 이길지, CEO가 이길지… 제 안의 아티스트가 손을 들길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현재 르엔터테인먼트 직원은 7명이다. 유빈은 "월급 절대 안 밀리는 게 올해 목표"라며 "(직원들이) 싫어하는 건 제가 하면서 열심히 메꿀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 정말 잘돼서 복지가 탄탄한 회사를 만들고 싶단다. 지금 생각하는 건 오락실과 만화방 등 '힐링'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유빈은 "만화책을 보거나 혼자 영화 볼 수 있다든지, 아이디어나 영감 얻을 수 있게 힐링하는 곳을 만들고 싶다"라며 "저는 억지로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싫어하는 걸 시키는 것도 안 좋아한다. 즐겁게 하는 게 최고인 것 같다.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혜림은 MBC 예능 '리얼연애 부러우면 지는거다'와 E채널 예능 '탑골 랩소디 : K-팝도 통역이 되나요?'에 출연 중이다. 본인이 원한다면 음악 활동도 적극 지원할 예정이다. 유빈은 "언제든 하고 싶으면 얘기하라고 했다"라며 "언니로서 되게 미안한 점이 많았다. 원더걸스가 가장 힘들 때 들어와서 끝까지 했지만, 본인 색깔을 보여주기보다는 원더걸스 안에서 녹아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제 좋은 기회가 온 것 같아서 많은 분들이 혜림이를 친근하게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라고 강조했다.
유빈은 "매력 있는 분이라면 기존에 있던 분도, 신인도 상관없고 장르를 따지지 않을 예정이다. 댄스, 발라드, 래퍼, 힙합 다 상관없고 아이돌, 배우, 아나운서, PD, 작가, 기자도 좋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다 상관없다. 정말 자기가 좋아하고 즐거운 걸 같이 하고 싶다. 그런 걸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하는, 종합 엔터테인먼트인데 약간 동아리 같은 느낌? 요즘 살롱이 유행인데 서로 시너지 주고 응원하고 위로하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넵넵'을 발표하고 약 2주 동안 음악방송에 출연하는 유빈. 14년차 경력의 선배이다 보니 혹여 후배 가수들이 부담스러워할까 봐 대기실에만 있다는 그는 요즘 오마이걸 유빈과 (여자)아이들 민니, 마마무, 비비 등에 푹 빠져있다고 고백했다. '퀸덤' 이후 여자 가수들을 좋아하게 됐다고. 예능도 가리지 않을 예정이다. "최대한 많이 나가고 싶고, 이제는 가릴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불러주시면 다 갑니다. 이젠 다 할 수 있고, 다 잘할 수 있습니다!" (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