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지방분권 혁신론자' 염태영 수원시장의 좌절

"지방자치법 개정안 무산…못 먹는 술이라도 마셔야"
인구 100만도시 시민, 단지 '기초지자체'라는 이유로 '역차별'
앞서가는 '지방정부'와 느려 터진 '국회'
"자치와 분권은 후순위 과제가 아냐…혁신의 마중물"

염태영 수원시장이 지난 2019년 11월 12일 지방분권 8개 법률안의 국회통과를 요구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늘은 못 먹는 술이라도 한 잔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주량이 '소주 3잔'인 염태영 수원시장이 갑자기 술을 찾았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그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좌절된 지난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안타깝고 속상한 심경을 이렇게 드러냈다.

◇ "지방자치법 개정안 무산…못 먹는 술이라도 마셔야"

문재인 대통령은 나흘 전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미래통합당 주호영 신임 원내대표에게 당선 축하난을 전했다. 그러면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5월 국회에서 처리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한 만큼 염 시장의 기대도 컸다.

지방자치 강화와 100만 도시 특례시 지정은 문 대통령의 주요 국정과제이자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을 맡고 있는 염태영 수원시장은 지방자치법 개정을 위해 지난 2013년부터 최선두에서 싸워왔다.

'자치분권모델'의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정책간담회와 전문가 좌담회, 입법토론회, 포럼도 수도 없이 가졌다. '자치분권'과 관련된 강연을 요청 받으면 강원도와 울산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달려갔다.

국회도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정세균 전 국회의장과는 500인 원탁토론을 진행했다. 이재준 고양시장, 백군기 용인시장, 허성무 창원시장과 함께 국회 문턱도 닳도록 뛰어다녔다.

그가 이처럼 동분서주한 것은 현행 지방자치법이 수원시(123만), 창원시(105만), 고양시(106만), 용인시(108만) 등 인구 100만 이상의 대도시에게는 '더 이상 맞지 않는 옷'이기 때문이다.

수원시 재난안전대책본부 상황실에 들어온 어린이들의 감사 그림 편지와 후원품(사진=염태영시장 페이스북)
◇ 인구 100만도시 시민, 단지 '기초지자체'라는 이유로 '역차별'

수원시는 한일월드컵 준비로 한창이던 지난 2002년 4월 이미 기초지자체 가운데에서는 처음으로 인구 100만명을 돌파했다. 당연히 행정수요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인구 50만 기초지자체 조직규모'를 획일적으로 적용받아 공무원 수를 늘릴 수 없었다.

광역단체인 울산광역시와 비교해보자. 물론 울산시민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울산광역시 공무원들의 노력을 폄훼할 뜻은 전혀 없다.

2019년 12월 기준으로 수원시 인구는 123만명으로 울산광역시 116만명보다 많다. 하지만 공무원 수는 수원시가 3,406명에 그쳐 울산광역시 6,661명(소방 1,166명 포함)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2019년 재정규모 역시 수원시는 2조9,120억원으로 울산광역시(6조4,918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원시민은 복지혜택에 있어서도 큰 불이익을 감수하고 있다. 현행 법체계는 복지서비스 선정 기준을 획일적으로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도시 등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물가가 높은 수원시는 누가 봐도 '대도시'인데도 기초지자체라는 이유만으로 혜택이 적은 '중소도시'에 포함됐다.

어느 곳에 사는냐에 따라 큰 불이익과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수원시가 받는 역차별은 인구 100만명이 넘는 창원시와 고양시, 용인시도 똑같이 겪는 아픔이다.

염태영 수원시장 등 기초지자체장들이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좌절된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수원시 제공)
◇ 앞서가는 '지방정부'와 느려 터진 '국회'

지방정부는 이런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코로나19 대응을 통해 그 역량을 충분히 입증해냈다.

고양시의 '안심카 (드라이브 스루) 선별진료소', 전주시의 '착한 임대료 운동'과 '전국 최초의 재난기본소득', 그리고 '해고없는 도시 만들기', 그리고 수원시의 '자가격리자 임시생활시설'과 '해외 입국자 안심귀가 서비스, '기초지자체의 역학조사관 도입 법제화' 등 그 구체적인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들 지방정부에게 국회가 법 개정을 통해 조금만 더 행정과 재정권한을 늘려준다면 국민을 위한 혁신의 불꽃은 더 화려하게 타오를 수 있을 것이다.

염태염 수원시장이 앞장서 주장한 '특례시 법제화'는 이런 이유로 강한 설득력이 있다. 인구 100만 기초자치단체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특례시' 도입으로 도시 규모와 역량에 부합하는 법적 지위와 행·재정권한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이번에 국회 통과가 무산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제194조 2항(대도시에 대한 특례 인정)은 '서울특별시·광역시 및 특별자치시를 제외한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특례시)의 행정, 재정 운영 및 국가 지도·감독에 대해서는 그 특성을 고려하여 관계 법률로 정하느 바에 따라 추가로 특례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지방 분권'을 염원하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행정안전부는 제6회 자방지치의 날인 지난 2018년 10월 30일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발표했다. 이어 이듬해 3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은 국무회의를 통과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1년 넘게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 중이던 이 안건은 지난 19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가 심의 안건으로 올리지도 않아 결국 자동 폐기됐다.

염 시장은 이날 오후 제 20대 국회의 마지막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다뤄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을 다 취소했다. 그리고 창원시장·용인시장·고양시장과 함께 또다시 국회로 달려갔다.

이들은 오후 1시반부터 4시까지 2시간 반동안이나 국회 복도에서 서서 기다리며 법안심사 소위 위원들에게 간곡히 '법안 통과'를 호소했지만, 허사였다.

영태영 수원시장이 2019년 11월 29일 '자치분권은 내 삶의 조건을 내가 바꿔나가는 것'이라는 주제로 공주 시민과 공직자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수원시 제공)
◇ "자치와 분권은 후순위 과제가 아냐…혁신의 마중물"

염태영 수원시장은 "심의안건으로 상정조차 하지 않은 이채익 법안소위원장과 미래통합당의 태도에 너무나 실망했다. 지금까지 관망만 해 온 행안부와 정부 여당 역시 지금의 참담한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방정부와 시민사회의 지방분권 염원을 끝내 외면한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지방자치사의 오점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치권에서는 새로 개원하는 21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이 법안을 다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또 어떤 변수가 나타나 국회통과를 가로막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술을 찾던 염태영 수원시장은 하루 만에 마음을 가다듬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고사를 들고 나왔다.

우공이 산을 옮긴다. 남들이 아무리 자신을 어리석게 여기더라도 진정한 지방분권을 위해 쉼없이 나가겠다는 말이다.

우공은 결국 산을 옮길 것이다. 인구 100만 대도시와 인구 5만 이하의 군을 동일한 기초자치단체로 분류해 발생하는 비효율은 시급히 제거돼야 하기 때문이다. 어느곳에 사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차별과 불이익도 더는 용인해서는 안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국가혁신을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나누는 것도 더 이상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자치와 분권은 마냥 미루어도 되는 후순위 과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새로운 발전으로 이끌 혁신의 마중물이다"

염 시장의 이 신념은 결국 머지않아 빛을 발할 것이다. 그것이 '시대정신'이자 '순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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