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야당은 4·15총선에서 압승한 거대 여당이 법치국가를 포기한 것은 물론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출신 윤미향 당선인의 회계부정 의혹을 덮으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민주당의 '한명숙 구하기'
여당의 '한명숙 구하기'의 단초가 된 것은 최근 뉴스타파가 공개한 '한만호 비망록'이다. 건설업자였던 한씨는 옥중에서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한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거짓 진술을 했다"는 방대한 메모를 남겼다. 해당 메모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진 지리한 법리다툼 때 이미 재판부에 현출됐고 진술 번복 증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왜 여당은 갑자기 비망록을 꺼내들며 한명숙 구하기에 나섰을까?
김태년 원내대표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만호씨 옥중 비망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국민들께서도 아마 그런 마음이 있으실 것"이라며 "내용이 너무 생생하다. 제가 많이 생각을 해 봤는데 경험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망록을 써서 한만호씨가 얻을 이익이 없다"며 "(검찰 수사에) 정치적 의도는 없었는지 주목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관철하기 위해 한 전 총리 사건을 활용했다는 '양승태 사법농단' 진상조사 결과도 민주당이 의심하는 지점이다. 1차 곽영욱 대한통운 뇌물공여, 2차 한만호 정치자금 사건에 이어 3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에서도 "검찰은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 뇌물 혐의를 씌워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하고 그것이 검찰과 사법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며 재조사 필요성을 역설했다. 같은 당 박주민 최고위원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법농단 문건을 언급하며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여당과 청와대를 설득해야 하는데 키가 될 수 있는 사건이 한명숙 사건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라고 거들었다.
◇文 정부 집권후반기 검찰·사법 개혁 신호탄
거대 여당을 이끄는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이 주는 발언의 무게는 향후 한 전 총리 사건 재조사에 대한 민주당의 접근법과 의지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와 법률가 출신 최고위원이 한 전 총리 사건을 최고위원회에서 공식 언급한 것만으로도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 재조사나 재심청구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한 전 총리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이미 지도부와 내부 공유를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 법률위원회는 한씨의 비망록이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대신 비망록이 검찰의 회유와 협박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부도덕함을 적극 지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오는 7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검찰의 반발을 누르는 동시에 과거 잘못된 검찰 수사 관행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을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주민 최고위원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법적으로 수사 범위에 들어가는 건 맞다. 지금 당장 수사할 것이다, 말 것이다 말할 수 없고 독립성을 가지므로 공수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발언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고검장 출신인 민주당 소병철 당선인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수사 관행상 문제가 있었던 것은 드러난 것 같다. 가령 (검찰이 한만호씨를) 많은 횟수 소환했는데 실제 조사가 이뤄진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든지, (비망록을 보면) 수사 과정에서 많은 회유, 협박을 받았다든지 하는 문제점들은 과거 (검찰 수사)에도 간헐적으로 나왔다. 이 부분은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 전 총리에 대한 명예회복과 향후 특별사면을 위한 다목적 포석도 깔렸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한 전 총리는 참여정부 당시 여성으로 총리를 지냈고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추모사를 낭독하는 등 친노(親盧) 대모(代母)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난 2015년 수감 전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한 전 총리와 오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野 거센 반발 "정의연·윤미향 물타기"
야당은 거대 여당의 오만함이 드러나고 있다며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미래통합당 황규환 부대변인은 21일 논평을 통해 "이제 와 전혀 새롭지 않은 비망록을 핑계로 한 전 총리를 되살리려 하는 것은, 177석 거대여당이 되었으니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또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한 전 총리를 되살릴 궁리를 할 시간에 윤 당선인에 대한 조치부터 하라"고 일갈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최고위원도 "재판에 의해 확정된 사실과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법 불신이자 재판 불복이고, 증거가 가리키는 사실관계를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 사법농단"이라고 공세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