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3라운드…與 '검찰개혁 방아쇠' VS 野 "물타기"

김태년 "한만호 비망록에 큰 충격, 경험하지 않으면 쓸 수 없어"
민주당 연일 재조사 촉구 필요성 강조
고검장 출신 소병철 "회유, 협박 등 검찰 문제점 반드시 개선돼야"
공수처 출범 앞두고 檢 누르기, 검찰개혁 동력 확보
한명숙 명예회복과 특별사면 사전 포석 분석도
野 "거대 여당의 오만함, 윤미향 물타기" 역공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던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017년 8월 경기도 의정부 교도소에서 2년 동안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만기 출소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재조사를 공식 촉구하고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관행에 대한 '철퇴론'부터 향후 검찰개혁 동력 확보, 진보진영의 아이콘이었던 한 전 총리의 명예회복 등 여러 포석이 깔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야당은 4·15총선에서 압승한 거대 여당이 법치국가를 포기한 것은 물론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출신 윤미향 당선인의 회계부정 의혹을 덮으려는 시도라고 반발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민주당의 '한명숙 구하기'

여당의 '한명숙 구하기'의 단초가 된 것은 최근 뉴스타파가 공개한 '한만호 비망록'이다. 건설업자였던 한씨는 옥중에서 "추가 기소에 대한 두려움과 사업 재기를 도와주겠다는 검찰의 약속 때문에 한 총리에게 돈을 줬다는 거짓 진술을 했다"는 방대한 메모를 남겼다. 해당 메모는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이어진 지리한 법리다툼 때 이미 재판부에 현출됐고 진술 번복 증거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하지만 왜 여당은 갑자기 비망록을 꺼내들며 한명숙 구하기에 나섰을까?

김태년 원내대표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만호씨 옥중 비망록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많은 국민들께서도 아마 그런 마음이 있으실 것"이라며 "내용이 너무 생생하다. 제가 많이 생각을 해 봤는데 경험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망록을 써서 한만호씨가 얻을 이익이 없다"며 "(검찰 수사에) 정치적 의도는 없었는지 주목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검찰이 '한명숙 1차 사건'으로 불리는 곽영욱 대안통운 사장의 5만 달러 공여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하자, 한씨가 경영하던 한신건영을 표적 수사해 거짓 진술을 강요했다는 취지다. 특히 2010년 지방선거에서 한 전 총리가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던 만큼 정치적 의도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설치를 관철하기 위해 한 전 총리 사건을 활용했다는 '양승태 사법농단' 진상조사 결과도 민주당이 의심하는 지점이다. 1차 곽영욱 대한통운 뇌물공여, 2차 한만호 정치자금 사건에 이어 3라운드가 시작된 셈이다.

김 원내대표는 전날 최고위원회에서도 "검찰은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없는 뇌물 혐의를 씌워 한 사람의 인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진실을 낱낱이 밝혀내야 하고 그것이 검찰과 사법부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길"이라며 재조사 필요성을 역설했다. 같은 당 박주민 최고위원도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사법농단 문건을 언급하며 "상고법원을 도입하기 위해 여당과 청와대를 설득해야 하는데 키가 될 수 있는 사건이 한명숙 사건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라고 거들었다.

◇文 정부 집권후반기 검찰·사법 개혁 신호탄

거대 여당을 이끄는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이 주는 발언의 무게는 향후 한 전 총리 사건 재조사에 대한 민주당의 접근법과 의지를 가늠해볼 수도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와 법률가 출신 최고위원이 한 전 총리 사건을 최고위원회에서 공식 언급한 것만으로도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라 실제 재조사나 재심청구까지 가보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한 전 총리의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재심청구 인용 가능성이 매우 낮은 것으로 보고 이미 지도부와 내부 공유를 끝낸 것으로 전해졌다. 당 법률위원회는 한씨의 비망록이 형사소송법상 재심 사유에 해당하는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당 지도부에 전달했다. 대신 비망록이 검찰의 회유와 협박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의 부도덕함을 적극 지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진=연합뉴스)
이에 따라 여당 지도부의 '검찰 때리기'는 문재인 정부 집권 후반기에 완성할 검찰·사법개혁 속도전의 '신호탄'이란 말도 나온다.

오는 7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앞두고 검찰의 반발을 누르는 동시에 과거 잘못된 검찰 수사 관행을 이번 기회에 바로잡을 소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주민 최고위원이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법적으로 수사 범위에 들어가는 건 맞다. 지금 당장 수사할 것이다, 말 것이다 말할 수 없고 독립성을 가지므로 공수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발언한 것도 이런 전망에 힘을 싣는다.

고검장 출신인 민주당 소병철 당선인은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검찰수사 관행상 문제가 있었던 것은 드러난 것 같다. 가령 (검찰이 한만호씨를) 많은 횟수 소환했는데 실제 조사가 이뤄진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든지, (비망록을 보면) 수사 과정에서 많은 회유, 협박을 받았다든지 하는 문제점들은 과거 (검찰 수사)에도 간헐적으로 나왔다. 이 부분은 앞으로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한 전 총리에 대한 명예회복과 향후 특별사면을 위한 다목적 포석도 깔렸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한 전 총리는 참여정부 당시 여성으로 총리를 지냈고 노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추모사를 낭독하는 등 친노(親盧) 대모(代母)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지난 2015년 수감 전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한 전 총리와 오찬을 함께하기도 했다.

◇野 거센 반발 "정의연·윤미향 물타기"

야당은 거대 여당의 오만함이 드러나고 있다며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미래통합당 황규환 부대변인은 21일 논평을 통해 "이제 와 전혀 새롭지 않은 비망록을 핑계로 한 전 총리를 되살리려 하는 것은, 177석 거대여당이 되었으니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오만함의 발로"라고 지적했다. 또 "윤미향 당선자와 정의기억연대에 대한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국민들의 시선을 돌리려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며 "한 전 총리를 되살릴 궁리를 할 시간에 윤 당선인에 대한 조치부터 하라"고 일갈했다.

국민의당 권은희 최고위원도 "재판에 의해 확정된 사실과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사법 불신이자 재판 불복이고, 증거가 가리키는 사실관계를 외면하고자 하는 것이 사법농단"이라고 공세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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