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기록으로 쓰인 5·18…40년 전 광주, 진상규명될까

40년간 진상조사 수차례 있었지만…"가해자가 남긴 왜곡된 기록으로 조사"
이달부터 진상조사위 조사 개시…'발포명령자'부터 행불자·성폭력 등 시급
조사위 "이번엔 다르다…'상향식 조사'할 것"…미국 비밀문서 공개 이어져
5·18 광주 시민들 "지금이라도 진상규명돼 '광주 정신' 왜곡·폄훼 안되길"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18일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 추모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올해는 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의 불길이 피어올랐던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이다.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일부는 '의혹'으로 남아 있다.

특히 당시 계엄군에게 발포·사살을 명령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 명령이 전달된 경위가 어떻게 되는지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 사이 일부 세력들은 끊임없이 5·18을 헐뜯고 왜곡해왔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이달부터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가운데, CBS노컷뉴스가 5·18 광주 시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40년간의 진상규명 경위와 한계, 남아 있는 과제들을 짚어봤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인 18일 복합문화시설로 새로 개관한 광주 동구 전일빌딩 245에 탄흔이 보존되어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처음부터 왜곡·조작…가해자가 남긴 기록으로 조사해 진상규명 한계"

1987년 민주화 이후, 1980년 광주에서 발생한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이 비로소 시작됐다. 88년 국회 청문회부터 95~97년 검찰 조사 및 재판, 2005년 과거사진상조사위 활동, 17~18년 국방부 특조위 등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 시도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이 과정에서 5·18특별법이 제정됐고, 5월 18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기도 했다. 2011년에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세계의 민주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면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그러나 정작 5·18 기간 동안 국가에 의해 자행된 각종 인권유린과 폭력은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민간인 집단 학살과 성폭력 사건, 각종 암매장·사체유기 사건은 아직도 '의혹'으로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

특히 무엇보다 당시 계엄군에 '발포'와 '살상'을 명령한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97년 전두환·노태우씨가 5·18 유혈 진압 사태에 대해 사법부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기는 했지만, '발포 명령'에 대한 책임 때문은 아니었다.

당시 여러 정황 증거들에 의해 전씨가 실질적 발포 명령자로 지목됐지만, 이를 입증할 객관적인 문서는 부족했다. 이후 전씨는 회고록을 통해 '자위권 차원에서의 발포', '난 5·18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등의 주장을 이어가면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회 김용만 이사는 "지금껏 '피해자 측의 증언과 가해자가 남긴 기록'이라는 상충하는 자료를 갖고 진상조사가 이뤄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진상규명이) 표류해 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5·18 진상규명이 어려운 이유는 지금까지 남아 있던 기록들 대부분이 조작·왜곡됐기 때문"이라면서 "80년 5월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당시부터 군부에 의해 조작·은폐가 시작됐고, 그 자료가 지금까지 그대로 남아있다. 기존 기록을 모두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발포명령자' 이번엔 찾을 수 있을까…"가해자의 용기 있는 결단 필요"

1985년 전두환 정권이 '80위원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5·18 관련 기록을 조직적으로 조작하려 한 정황이 지난 2017년 국방부 특조위 조사 결과 드러난 바 있다. 더불어 88년 청문회를 앞두고 만들어진 '80대책위원회'나 '511위원회' 등이 5·18 관련 기록 왜곡을 주도적으로 담당했다는 의혹도 제기돼 왔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지난해 말쯤 출범했고, 이달 12일 본격적인 조사 개시를 선언했다. 조사위는 남아 있는 기록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지만, 다른 방법을 통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조사위는 무엇보다 40년간 밝혀지지 않은 '발포명령자'와 '발포 경위'에 대한 진상을 드러내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특히 지금까지의 진상규명 시도와는 다른 방식을 통해 진실에 접근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조사위 송선태 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는 전두환·노태우씨로부터 시작해 대대장급까지 내려오는 하향식 조사를 주로 했다"면서 "그러나 이번에는 '아래에서부터', 사병·하사관·위관급 등에서부터 올라가는 상향식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장교 명단은 다 확보가 된 상황이다. 당시 투입된 병사들 명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에 있는데, 현재 협조 진행 중"이라면서 "이를 통해 당시 작전을 재구성하면 작전명령 및 발포명령 하달이 일선 부대 사병까지 어떻게 전달이 됐는지 추적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진상규명을 위해 가해자의 용기 있는 증언 또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송 위원장은 "과거에 얽매이는 게 아니라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진실을 토대로 한 가해자의 고백이 중요하다"면서 "가해자가 영원히 가해자로 남는 게 아니고, 우리 사회 일원으로서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진상규명 시도와 관련해 고무적인 소식도 이어지고 있다. 객관적 자료의 한계에 대한 극복 방안을 묻는 질문에 송 위원장은 "자료와 관련해서도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최근 미국 정부가 5·18과 관련한 미국 측 비밀문서를 우리 정부에 공개하기도 했다.

(사진=5.18 기념재단 제공)
◇"민간인 학살, 성폭력, 행불자 등 진상규명은 물론, 가해자 재산 추적까지 이뤄져야"

5·18 당시 현장에 있었던 광주 시민들은 '민간인 집단 학살'과 '성폭력', '암매장·사체유기', '행방불명자' 등에 대한 진상규명도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18세의 나이로 시위대에 참여했던 강상원(57)씨는 "가장 안타까운 것이 행방불명자들이다. 이번에 광주 교도소 인근에서 암매장 장소가 나와 발굴 작업은 하고 있지만, 얼마나 진행이 될지 모르겠다"면서 "가족들이 생사라도 알 수 있도록 이들에 대한 조사가 철저하게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18 현장에서 계엄군 총탄에 맞아 숨진 류동운(당시 20세)씨의 친동생인 동인(57)씨는 "행방불명자에 대한 문제와 더불어 '성폭력'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는 국가 권력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있어서는 안 될 일까지 벌어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조사위 송 위원장은 "계엄 상황에서 진압군으로 내려 온 군인들이 성폭력을 사용했다라는 것은 국제적으로도 중대 범죄로 취급한다"면서 "자세한 조사를 통해 피해사실을 확정하고, 가해 부대 및 가해자들을 색출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엄격하게 조사하고 처벌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전씨 등 당시 가해자들이 5·18 이후 형성한 재산도 모두 추적해서 몰수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군사 반란으로 정권을 찬탈하고, 이에 저항하는 광주 시민들을 학살해 권력과 지위를 얻었으므로 이에 대한 청산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용만 이사는 "5·18 피해자 중 다수가 아직도 어려운 상황에서 살고 있는데, 정작 가해자들은 부와 권력을 누리며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면서 "진상규명을 통한 책임자 처벌은 단지 형사처벌뿐만 아니라 그들의 부정축재까지 환수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5·18 정신 위해 진상규명 포기할 수 없어"…文 "국가폭력 진상 반드시 밝힐 것"

5·18 광주 시민들은 40년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또한 18일 광주를 방문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김 이사는 "당시 6천개 가까운 총이 시민군들 사이에 풀려나갔지만, 총기를 갖고 저질러진 살인·강도·강간·폭력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그게 광주다"라면서 "이후 광주가 해방구라고 불리던 일주일 동안 2만 6천여명의 군이 광주를 다 봉쇄하면서 쌀 한톨, 물 한병도 광주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사재기 하나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5월 26일 밤에 도청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알았다, 당신들이 죽을 거라는 것을. 그럼에도 그들은 그곳에 남았다. 도청을 비우고 나가버리면 광주의 정신은, 5·18의 정신은 누가 지키냐면서 알고서도 죽음을 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광주 사람들은 5·18에 대해 두 가지를 안고 산다. 우리가 만들어냈던 아름다운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27일 새벽 도청에 끝까지 남아 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라면서 "그렇게 지켜 온 것이 5·18의 정신과 가치다. 그래서 우리는 진상규명을 포기할 수 없고, 5·18 정신과 가치를 왜곡·폄훼·훼손하려는 자들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인씨 또한 "5·18 당시 광주 사람들은 스스로 기뻤고 즐거웠기 때문에 행했다. 그러니 더 중요하고 귀중하다"면서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사재기도 안하고 있는 것들을 나누는, 이런 현상은 설명될 수 없다. 이런 삶을 지금으로 끌고 와 지금 우리의 삶의 힘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전날 '40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도 5·18의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발포 명령자 규명과 계엄군이 자행한 민간인 학살, 헬기 사격의 진실과 은폐·조작 의혹과 같은 국가폭력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처벌이 목적이 아니다. 역사를 올바로 기록하는 일"이라면서 "이제라도 용기를 내 진실을 고백한다면 오히려 용서와 화해의 길이 열릴 것"이라면서 가해자의 협조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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