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까지도 스위스 제네바 WTO사무국 내부나 회원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아 충격을 더한다. WTO사무국도 외신보도가 흘러나오고 나서야 부랴부랴 임시 화상 대표단회의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글로벌 경제가 전방위적인 타격을 받는 상황에서 세계무역질서를 관장하는 국제기구의 수장이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사임 의사를 밝힌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브라질 출신의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14일(현지시간) 비공식 대표단회의에서 "올해 8월 31일자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 9월 취임한 뒤 4년의 임기를 마치고 2017년부터 2번째 임기를 수행해 왔던 아제베두 사무총장의 임기는 내년 8월말까지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은 "코로나19 봉쇄조치와 무릎 수술로 평소보다 생각할 시간을 많이 갖게 됐다"면서 "가족과 상의한 끝에 개인적인 사유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아제베두 사무총장이 사임 시기를 8월말로 못박은 것은 차기 사무총장 선거 일정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WTO각료회의(MC21)가 내년 6월이나 내년 연말에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각료회의와 겹치지 않게 선거 일정이 차질없이 마무리되려면 8월말에 미리 사임하는게 좋을 것으로 본 것이다.
차기 사무총장 선거는 올해 연말 후보접수를 시작으로 내년 1~3월 선거운동, 4~5월 선호도 조사 등의 단계를 거쳐 5월 말 내정자를 결정한다. 현 사무총장의 잔여 임기는 4명의 사무차장 가운데 한 명이 대행할 것으로 보인다.
◇중차대한 시기에 왜?
중도 사임 배경과 관련해 그는 건강과는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또 개인적인 정치야망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임발표 직후 블룸버그 통신과 가진 전화인터뷰에서 "고국인 브라질에서 정치 경력을 쌓기 위해 물러나는 것도 아니다"라고 강력 부인했다.
부인인 제네바 주재 브라질 대표부 대사 등 가족과의 오랜 논의 끝에 내린 결정이라며 애써 억측을 경계했다.
하지만 여러가지 정황상 미국의 압박이 중도 사임 결심에 중요한 요인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이 고조되는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견제로 WTO의 분쟁해결 절차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경제성장을 이룬 국가들이 WTO에서 개도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라고 미 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하면서 대표적 불공정 사례로 중국 등을 거론한 바 있다.
이후 미국은 WTO에서 대법원 역할을 하는 '상소 기구'에 자국 상소 위원 선임을 반대해 지난해 12월 이후 WTO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분쟁해결 기능은 마비된 상태에 놓여 있다.
특히 아제베두 사무총장의 사임 발표 직후 나온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반응만 봐도 이같은 정황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아제베두 총장의 중도 사임 소식에 대해 "나는 괜찮다"며 "WTO는 끔찍하다. 우리는 아주 나쁜 대우를 받았다"고 세계무역기구(WTO)를 비난했다.
이어 "WTO는 중국을 개발도상국으로 대한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이 얻지 못하는 이익을 많이 누린다"고 말해 현 아제베두 WTO사무총장 체제에 대한 못마땅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중국과의 모든 관계를 끊을 수도 있다"는 강경발언도 내놓았는데,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의 전방위적인 압박에 국제기구까지 새우등 신세 마냥 흔들리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