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손에는 '나는 아머드와 함께 달린다',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 등의 손팻말이 들려있었다.
백주 대낮에 백인 부자(父子)에 의해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한 흑인 청년 아머드 아버리 사건의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을 촉구하기 위한 시위였다.
이 사건은 최근 미국 전역에서 코로나19에 버금가는 핫이슈로 떠오른 권력형 부패사건이자 인종차별 사건이기도 하다.
올해 25세인 아머드는 지난 2월 23일 일요일 자신의 집에서 멀지 않은 브런스윅 교외의 한 주택가에서 평소처럼 조깅을 하다 난데없이 픽업트럭의 추격을 당한다.
픽업트럭에 타고 있던 사람은 그레고리 맥마이클(64)과 그의 아들 트레비스 맥마이클(34).
이들은 도로위를 뛰던 아머드를 침입자라고 보고 곧바로 픽업트럭에 올라 그를 쫓기 시작한 것.
이들은 추격 과정에서 911에 신고까지 했다.
달리는 아머드를 픽업트럭이 가로막으면 다시 아머드가 달아나는 일이 몇 차례 반복된 이후 양측간 몸싸움이 시작됐고, 그 과정에서 총성이 3번이나 울렸다.
고꾸라진 건 아머드였다.
맥마이클 부자가 쏜 권총에 쓰러진 것. 두 부자는 아머드를 추격할 때 이미 무장 상태였다.
아머드는 현장에서 사망했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지 2개월이 다 되도록 누구 한명 처벌받지 않았다.
아머드를 강도라고 의심해 추격했고, 아머드가 폭력을 행사함에 따라 자기방어 차원에서 총을 쐈다는 맥마이클 부자의 항변이 수사기관에서 채택된 때문이다.
검찰 역시 맥마이클 부자의 행위를 '시민의 범인 체포권'(citizen's arrest)을 규정한 조지아주 법률에 부합한다고 봤다.
'시민의 범인 체포권'은 범죄를 저질렀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 경찰이 아닌 일반인에게도 용의자 체포 권리를 부여한 것이다.
아머드가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조사 조차 이뤄지지 않은 채 사건은 코로나19의 광풍 속에 묻히고 있었다.
잊혀지고 있던 사건이 수면위로 다시 떠오른 것은 사건 현장을 담은 영상 때문. 사건 현장을 지나던 차량에 타고 있던 누군가의 카메라에 우연히 녹화된 영상이 현지 라디오 방송국을 통해 최근 공개된 것이다.
특히 총기로 무장한 백인 남성들이 비무장 상태의 흑인 남성을 무고하게 살해한 과정을 지켜본 흑인들의 반발이 거셌다.
결국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까지 6일 사건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다음날에야 조지아 수사국이 맥마이클 부자를 체포하기에 이른다. 사건 발생 74일 만이다.
하지만 이들이 체포된 뒤 믿기 힘든 뉴스가 꼬리를 물었다.
우선 피의자 그레고리 맥마이클이 브런즈윅에서 오랜 기간 경찰관으로 근무한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해 5월 은퇴하기 직전까지는 브런즈윅 지방검찰청 수사관으로 근무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사건을 맡았던 두 명의 검사 역시 가해자들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 때문에 이들 검사들은 사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의 검사인 조지 반힐 검사는 이 사건을 새로 맡게 된 수사기관에 "맥마이클 부자가 기소될 이유가 없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낸 사실도 확인됐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 권력형 부패 및 백인에 의한 흑인 차별의 또 다른 사례로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8일 오전 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집회가 열린 것이다.
집회에 참여하지 못한 다른 지역 시민들은 아머드를 추모하는 의미로 2.23마일을 달리는 캠페인(2.23 mile)을 벌이며 연대하고 있다.
'2.23마일 달리기 캠패인'은 사건이 벌어진 2월 23일 조깅하던 아머드를 추모하며 함께 달리자는 의미다.
8일 금요일은 아머드의 26번째 생일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