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주요 임원들을 상대로 막바지 조사에 속도를 올렸던 검찰은 이 부회장을 불러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가 그의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는지 집중 추궁할 계획이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이복현 부장검사)는 이달 말까지 삼성바이오 사건을 매듭 짓고, 연루된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길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검찰은 최근까지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과 이영호 삼성물산 사장,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 임직원을 잇따라 불러 조사하며 막판 혐의 다지기에 집중했다.
주요 임직원들의 조사를 마무리한 검찰의 칼끝은 이 부사장에게로 향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르면 다음주쯤, 늦어도 그 다음주까지는 이 부사장의 소환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검찰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그리고 삼성바이오의 회계 처리가 이 부회장의 삼성그룹 지배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진행된 조직적인 불법 행위라고 보고 있다.
삼성이 이 부회장에게 유리한 합병을 성사시키려는 목적에서 삼성물산의 기업 가치는 고의로 낮추고, 제일모직의 가치는 반대로 부풀렸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2015년 합병 때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은 '1 대 0.35'로, 제일모직 1주가 삼성물산 주식의 3배에 달했다.
제일모직 주식은 23.2%를 보유했지만 삼성물산의 주식은 하나도 없었던 이 부회장은 두 회사의 합병으로 '통합 삼성물산'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여기에 당시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 4.06%를 갖고 있었지만 제일모직은 삼성전자의 주식이 없었다.
제일모직의 가치가 높게 평가되고 삼성물산의 가치는 낮게 평가된 상태로 두 회사가 합병하면서 이 부회장은 자연스레 삼성전자의 지배력을 강화하게 된 셈이다.
제일모직의 가치가 고평가된 배경은 삼성바이오의 당시 회계 처리와 맞닿아 있다. 제일모직은 삼성바이오의 지분 40%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삼성바이오는 2011년 설립된 이후 꾸준히 적자를 기록하다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있던 2015년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성바이오가 그해 12월 자회사였던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 기준을 바꾸면서다.
종속회사일 때 장부가액으로 평가했던 자산 가치는 관계회사로 바뀌면서 시장가액으로 계산됐다. 그덕에 바이오에피스는 장부가액 2900억원에서 시장가액 4조8000억원으로 기업 가치가 16배 뛰었다.
바이오에피스의 지분 90% 이상을 보유한 모회사 삼성바이오도 4년 연속 적자에서 1조90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초우량기업으로 덩달아 탈바꿈했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이같은 회계 기준 변경을 고의적인 분식 회계로 보고 지난 2018년 11월 검찰에 고발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 6일 대국민 사과에서 "승계 문제와 관련해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합병의 최대 수혜자를 겨냥한 검찰 수사는 그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을 정조준할 조짐이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합병 추진 문건과 회계법인이 삼성물산과 회계 방식을 논의한 문건, 삼성바이오 재경팀이 제일모직의 주가 적정성을 판단한 내부 문건 등 검찰이 확보한 증거들도 모두 이 부회장의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을 가리키고 있다.
다만 검찰이 김태한 삼성바이오 대표 등 분식회계 의혹에 연루된 삼성 사장단의 혐의를 제대로 확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 부회장의 혐의를 입증하기는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삼성은 합병이 진행된 이후에 분식회계를 하는 것은 모순이라며 검찰의 수사를 반박하고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은 2015년 9월에 진행됐는데 삼성바이오 회계 처리는 같은해 12월에 이뤄져 합병 비율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또 검찰이 확보한 내부 문건에 대해서도 그 진위는 인정하지만 "검토하던 내용에 불과하다"고 해명하고 있다.
특히 구체적인 회계 조작은 이 부회장과 연관 없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어, 향후 법정에서 회계 기준의 해석 차이를 두고 쟁점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