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 경위에 대해 군 당국과 유엔군사령부가 현재 분석조사를 하고 있는데, 당시의 기상이나 지형 상황 등을 볼 때 군 당국은 의도적인 도발보다는 사고라는 쪽에 무게를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정전협정 이후 67년 동안 남북 사이에 수차례 발생했었죠. 문제는 우발적 사고가 자칫 국지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입니다.
◇ DMZ 안의 '외로운 섬' GP
먼저 GP(Guard Post)라는 게 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흔히 '휴전선'이라 불리는 군사분계선(MDL)은 사실 뉴스에서 많이 보는 것처럼 철조망이 쳐져 있는 선이 아닙니다. '진짜' MDL에는 경계를 표시하는 콘크리트 말뚝만이 땅에 덩그러니 박혀 있습니다.
이 말뚝들이 표시하는 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 각각 2km까지의 완충지대로 설정된 지역을 비무장지대(DMZ)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무장 병력은 들어올 수 없게 하는 곳인데요, 이 곳으로 들어가는 지점에는 남북이 각각 철조망을 치고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합니다.
이를 지키는 부대를 GOP(General OutPost)라고 하는데, 뉴스 화면으로 많이 접하는 철조망이 바로 이 비무장지대 입구 철책과 GOP의 모습입니다.
GP란 남북한이 DMZ 안에 설치해 놓은 감시초소로, 보병사단의 수색대대가 주로 배치됩니다. 이들은 비무장지대 안 북한군의 동향을 감시하고 만에 하나 무력충돌이 발생한다면 가장 먼저 교전을 벌이게 됩니다. 당연히 하루 24시간 총기와 실탄을 휴대하며 긴장을 놓을 수가 없는 상황이죠.
1997년 7월 16일엔 북한군이 MDL을 넘어와 GP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던 아찔한 사건도 있었는데, 당시 북한군은 박격포 추정 곡사화기로 공격했고 우리 군도 57mm 무반동총까지 사용하며 교전을 벌였습니다. 다행히 우리 군의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 남북 모두 수차례 오발사고
지난 2016년과 2017년에는 우리 군이 GP에서 K6 중기관총을 점검·훈련하다가 오발사고를 내는 바람에 북한군 GP 쪽으로 총탄 여러 발이 날아가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과 가장 비슷한 사례로는 2010년 10월 29일에 있었던 일을 들 수 있겠는데요, 이날 북한군이 남쪽으로 14.5mm 고사총(KPV)탄 2발을 쐈고 이 총탄들이 우리 군 GP에 맞았습니다. 군 당국은 3발의 경고사격으로 대응에 나섰고, 북한은 이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군 당국은 이날이 30일로 예정된 이산가족 상봉 행사 바로 전날인데다 해당 GP엔 대북 확성기가 없다는 이유 등을 근거로, 우발적인 사고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습니다. 유엔군사령부 또한 현장조사 등을 통해, 사건 이후 북한군 장교가 기관총을 발사한 병사로 추정되는 군인을 구타하는 장면이 목격된 점 등을 근거로 비슷한 판단을 내렸고요.
때문에 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도 우발적인 사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닌 셈입니다. 북한이 우리가 군 통신선을 통해 보낸 대북통지문에 3일 동안 답을 하고 있지 않긴 하지만, 수십년 동안 이런 일이 워낙 많아서 세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통일부 여상기 대변인은 6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과거의 선례를 보면 북한은 정치적 논란이 있거나, 이런 논란이 많을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경우가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를 부연했습니다.
◇ 비무장지대인데 군인들에 중화기까지 들어가…실상은 '무장지대'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뭔가 이상한 점을 깨달으셨을 겁니다. DMZ는 분명 '비(非)'무장지대인데, 왜 군인들이 무장한 채 그 안에 들어가 있을까요. 그리고 GP에는 왜 우리 군의 K6나 북한군의 KPV 같은 중기관총들까지 있는 걸까요.
사실 1953년 체결된 정전협정과 그 부속 합의서 내용을 보면, DMZ는 비무장지대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론 군인들이 들어와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안에서 치안 등의 업무를 보는 '민사행정경찰'은 들어갈 수 있는데, 이 '경찰'들의 정체가 바로 남북한 GP에 배치된 군인들입니다.
이들은 팔에 'MP(Military Police, 군사경찰)'라 적힌 완장을 차고 있지만, 실제론 치안 임무를 수행하는 군사경찰이 아니라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군인들입니다. 북한도 '민경대'라는 이름으로 똑같이 하고 있으니 한 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이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정전협정과 부속 합의서에는 DMZ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보총('소총'의 북한식 표현)과 권총으로만 무장한다"고 돼 있지만, 실제로는 기관총 등의 온갖 중화기들이 안에 배치돼 있습니다. 남북 양측이 정전협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수십년 동안 GP에 반입했기 때문이죠.
원래대로라면 유엔군사령부가 남북 모두를 말렸어야 하지만, 북한은 UN 회원국이면서도 유엔군사령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어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유엔군사령부는 북한군의 중화기 밀반입에 맞대응한다며 지난 2014년 규정을 바꿔 기관총과 무반동총, 고속유탄발사기 등을 반입하도록 허가했습니다.
지금도 남북한군은 서로의 GP를 향해 실탄이 장전된 기관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비무장지대가 아니라 무장지대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입니다.
◇ 조준 거치한 기관총, '아차' 하는 순간 발사…근본 해답은 남북 긴장완화
앞서 전한 여러 사례들처럼, 상대편 쪽으로 조준 거치해 놓은 기관총을 점검하거나 훈련을 하다가 아차 하는 사이 발사되는 것은 정말 한 순간입니다. 두 기관총 모두 발사속도가 분당 600발, 즉 초당 10발 정도까지 나오니까요. 우리 군보다 장비가 노후화되고 훈련도가 낮은 북한군이 사고를 일으킬 확률도 더 높겠죠.
실제로 판문점 선언 이후 7월 31일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GP 시범철수가 원칙적으로 합의됐고, 그해 말 남북은 상호 검증하에 각각 11개씩 모두 22개의 GP를 파괴하거나 못쓰게 만들었습니다.
우리 군 GP가 60개, 북한군 GP가 160개 정도였고 양쪽 모두 11개씩 줄어들었으니 모두 200여곳이 남은 셈입니다. 우리 정부는 단계적으로 모든 GP를 철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지만, 2018년의 훈훈했던 상황과 달리 지난해 초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고 남북과 북미관계 모두가 얼어붙으면서 아직 갈 길은 멀기만 합니다.
물론 북한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이 아예 끊기지는 않아서, 군 통신선이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등의 채널은 아직 유지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상황 탓에, 방역 상황이 아주 열악한 북한이 빠른 시일 내 대화에 나서리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네요. 아직까지 명확하게 나오지 않고 있는 북한의 올해 대남정책도 변수입니다.
이를 포함해 얼마 전 동해북부선 강릉~제진 철도건설사업 본격 추진 등,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다시 시동을 걸려는 정부의 움직임과 북한의 반응을 면밀히 살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