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 원내대표라는 건 없었습니다. 대신 '원내총무'가 있었죠.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같은 이른바 '총재'님이 "너 이번에 원내총무 해라"라고 하면 맡게 되는 자리였어요.
그러다 김근태 전 의원이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서 처음 원내대표를 지낸 게 지난 2003년. 그 뒤 여러 정당에서 하나둘 따라하다 결국 이렇게 정착됐습니다. 정당의 활동무대를 국회 밖에서 안으로 옮겨 '일하는 국회'를 만들자는 취지였습니다.
원내대표 권한과 책임은 국회 내에 국한돼 있습니다. 하지만 막강합니다. 다른 당(의석수 20석 이상 규모의 정당) 원내대표와 협의해서 누가 의장, 부의장을 맡을지, 누구를 어떤 상임위원회에 배치할지 결정합니다. 아울러 회의 일정을 잡는 건 물론이고 본회의에서 의원들의 발언 시간까지 이들이 제한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법안이나 예산 처리와 관련한 협상 전략을 세우고 당의 기본 방침을 짠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습니다. 때문에 임기 1년 동안 거의 매일 있는 아침 회의에서 카메라 세례를 받습니다. 여기서 높인 인지도는 다음 선거나 정치인으로서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되겠죠.
지난해 미래통합당에선 나경원 전 원내대표가 패스트트랙 관련 혐의로 수사를 받는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이 부여될 수 있다고 말한 뒤 황교안 전 대표가 번복한 일이 있었습니다. 임기 연장을 원하는 나 전 원내대표의 뜻을 꺾은 것도 황 전 대표였죠.
당원과 일반인 참여로 선출되는 당 대표와 달리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당선자) 투표로 결정됩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7일, 미래통합당은 8일에 선거를 치른다네요.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대한민국 모든 선거 가운데 가장 예측이 어려운 선거"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민주당은 3파전입니다. 친문(친 문재인)계에선 2명이 후보로 등록했습니다. 친문 중 이해찬계로 꼽히는 김태년 의원(4선)과 이른바 '부엉이모임' 핵심인 전해철 의원(3선)이 나섰습니다. 계파 없는 비주류 정성호 의원(4선)도 주자로 뛰어들었습니다. 당내에선 이중 2명이 강하다며 '2강 1중'으로 판세를 예측합니다.
김 의원과 전 의원은 코로나19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청와대와의 소통능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김 의원은 당 정책위의장 출신, 전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인 3철(전해철·이호철·양정철) 가운데 한 명으로 분류됩니다. 정 의원은 "갈등조장의 정치를 끝내야 한다"며 야당과의 협력을 강조합니다. CBS노컷뉴스에서는 각 후보 인터뷰 기사를 오는 6일 공개할 예정입니다.
이들의 향배는 초선 당선인이 가를 것으로 보입니다. 투표권이 없는 연합 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를 제외해도 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은 무려 68명이나 됩니다. 재선 이상급에선 이미 친분이나 계파에 따라 표심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초선에서 당락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번 총선을 이끌며 명실상부 유력 대권주자로 발돋움한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의 관계도 변수입니다. 이 전 총리가 공식적으로는 선거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히고 있지만 그가 특정 후보를 직·간접적으로 도울 경우 상황은 급반전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세 후보 모두 그에게 이미 '러브콜'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만약 선거에서 특정 후보가 과반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당규에 따라 1, 2위 후보만 놓고 다시 투표를 합니다. 소위 '결선 투표'라고 하죠. 그럴 경우 탈락한 후보자 쪽으로 갔던 표심이 어디로 쏠릴지 꼭 지켜봐야겠습니다.
관심은 전임 심재철 대표 권한대행 지도부가 추진했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에 대한 입장입니다. 총선 참패 뒤 수습방안을 두고 첨예하게 엇갈린 당내 이견은 이제 신임 원내대표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겨졌습니다.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5월 4일 CBS노컷뉴스 기사 <통합당 원내대표 후보들, ‘김종인 비대위’서 한 발 뺀 이유는?>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하간 이번에 뽑힐 21대 첫 원내대표들은 꽉 막혔던 여야 갈등을 풀고 감염병이 촉발한 국가적 위기를 헤쳐나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무를 부여받게 됩니다. '동물국회'라는 오명을 썼던 전임 20대 국회보단 좀 달라지기를 기대합니다. 아 참, 야당엔 하나가 더 있네요. 보수재건의 사명 말입니다. 누가 되든 이런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우리 모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겠습니다. 의견 있으시면 댓글 달아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