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세월호 잊자' 동영상 제작 후 일베 이용해 확산"

세월호 참사 다음날부터 유가족 사찰
'가족 중 강경성향 6명' 등 구체적 적시
'유민아빠' 회사·가족관계 보고되기도
정보 활용해 세월호 관련 여론 조작
예산 들여 '세월호 잊자' 영상 제작해
극우사이트 '일베' 통한 확산 계획도…
"일베·보수 유튜버는 유력 '건전 세력'"

2014년 8월 20일, 국정원 현장직원(오른쪽 검은옷)이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주치의가 근무하는 서울동부시립병원을 방문해 병원장(왼쪽 흰옷)으로부터 안내를 받고 있다. (사진=사참위 제공/병원 CCTV영상 캡처)
세월호 참사 다음 날부터 국가정보원(국정원)이 유가족들을 불법 사찰하고, 이를 이용해 참사에 대한 여론을 조작해 온 정황이 뒤늦게 드러났다. 심지어 국정원은 여론 조작용 동영상을 자체 예산을 들여 제작한 뒤, 극우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를 통해 확산시키기도 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원 직원들이 세월호 참사 다음 날인 2014년 4월 17일부터 유가족들을 불법 사찰하고 이를 통한 여론 조작에 나선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사참위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4년 4월 17일부터 2014년 11월 5일까지 약 8개월 간에 걸쳐 총 215건의 '일일동향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중 48건의 보고서가 유가족 사찰과 관련돼 있었다.

이날 공개된 당시 보고서 내용에는 "여성들이 속옷을 빨아 입을 수가 없어 며칠째 입고 있다고 불편을 호소", "다소 지친 모습으로 특이 논쟁없이 누워서 휴식중", "이제는 생존자 구조에 가망이 없는 것 아니냐며 체념하는 분위기 시현" 등 유가족들의 당시 행동과 분위기가 구체적으로 서술돼 있었다.

박병우 진상규명국장은 "참사 다음 날 하루에만 11건의 보고서가 작성됐다. 이후 보고서에는 '실종자 가족 중 일부 강경성향 여성이 6명으로 추측이 된다'는 내용도 있었다"면서 "이를 작성한 직원은 현장에 위치한 7~8개(명)의 '협조자 또는 채널'을 통해 정보를 입수했다고 진술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구체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유가족 사찰 보고서'는 당시 박근혜 청와대까지 보고됐다. 사참위는 "2014년 5월 이후 '여객선 사고 유가족들의 투쟁 강도 높이기에 우려 여론'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청와대 비서실장, 국정기획·정무·홍보수석 등에 보고된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수사요청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유가족 및 참석자들이 참사 희생자들을 위해 묵념하고 있다. (사진=서민선 기자)
특히 사참위는 국정원이 당시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을 요구하며 장기 단식을 했던 '유민아빠' 김영오씨에 대해 집중적으로 정보를 수집해 보고한 것으로 파악했다. 사참위는 최소 2명 이상의 국정원 직원이 김씨와 관련한 보고서를 작성해 국정원 내부망에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보고서에는 김씨의 단식 농성과 관련한 '여론의 반응', '김씨 주치의 정보' 등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 중에는 국정원 현장 직원이 김씨가 단식 도중 입원한 병원의 병원장과 담당 주치의 등을 만나 대화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아울러 당시 전북 정읍시 이평면의 부면장(6급 동향담당 공무원) A씨가 김씨가 단식 중이던 2014년 8월 21일 김씨 모친이 사는 곳을 방문해 김씨와 관련한 동향보고서를 작성한 사실도 밝혀졌다. 해당 보고서에는 김씨를 '막내아들'이라고 표현하면서 김씨가 근무하는 회사와 가족 사항 등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사참위는 해당 활동에서도 국정원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박 진상규명국장은 "이 같은 내용이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에도 적시돼 있었다"면서서 "정보 기관의 사찰 내용이 올라간 날짜 등을 종합했을 때, 그런 상황이 그대로 보고서에 담기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후 김씨의 개인 정보가 알려지면서 부정적인 여론이 퍼진 것으로 사참위는 판단했다. 사참위는 "김씨 단식 40여일 이후부터 '금속노조', '이혼 뒤 외면', '아빠의 자격' 등 개인신상 내용들이 SNS와 언론에 다뤄지기 시작했고, 보수단체들의 폭식 투쟁과 반대 집회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이어 "김씨는 방한한 교황을 만나는 등 전 세계의 관심을 끄는 등 주목 받는 인물이었다"면서 "세월호 이슈가 장기화되고 정권에 비판적인 여론이 형성되자 국정원이 반대 여론을 형성하고, 이슈 전환의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정보수집을 진행하고 청와대 등에 보고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27일 오전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에 대한 수사요청 기자회견'에서 사참위 황필규 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민선 기자)
심지어 사참위는 국정원이 세월호 관련 여론을 조작하기 위해 극우성향 커뮤니티인 '일베'까지 활용했다고 폭로했다.

당시 국정원은 자체 예산을 들여 '이제는 (참사 희생자들을) 쉬게 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편안하게 정리하고 가야 할 때다'는 취지의 동영상을 제작한 후 한 성명 불상의 유튜브 계정을 통해 게시했다.

박 진상규명국장은 "국정원에서 자신들 예산을 들여 해당 영상을 제작한 것이 맞다는 진술이 있었다. 다만 해당 계정이 국정원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면서 "적법하다면 굳이 불상의 유튜브 아이디를 빌려서 영상을 띄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해당 동영상은 '일베' 등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를 통해 퍼졌는데, 이를 두고 국정원에서는 '일주일 만에 조회수가 1만이 넘는 등 긍정적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고 자평하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국정원은 '일베', '독립신문' 등 보수 성향의 커뮤니티와 인터넷 언론 등을 '건전세력'으로 부르면서, 이를 이용해 조작 여론을 확산시킬 계획을 세웠다. 사참위 관계자는 "국정원이 내부에서 작성한 '여론 확산 계획' 문서에는 '앞으로 유력 건전사이트인 일베나 독립신문 등에 전파하겠다'는 내용이 언급돼 있었다"고 밝혔다.

이와 같은 '여론 조작' 행위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사참위가 국정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세월호 참사 관련 보고서를 조사한 결과, 9건의 보고서가 여론 조작·정국 제언 등과 관련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정원은 '보수(건전) 세력(언론)을 통한 맞대응', '침체된 사회 분위기 쇄신을 위한 일상복귀 분위기 조성' 등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여기에는 '보수 언론·논객을 통해 국민적 참사를 정권퇴진 투쟁에 악용하는 비판세력의 정략성을 지속 폭로·국민 동조 방지', '추모 분위기 장기화에 따른 부작용 최소화를 위해 일상 복귀 분위기 절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날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방청한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장훈 운영위원장은 "당시는 우리 가족들이 팽목항 진도 체육관에서 살아 있는 아이들을 기다린 게 아니고, 주검으로 돌아올 우리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던 때"라면서 "그때 국가는 정보기관을 이용해 우리를 사찰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를 탄압하고 폄훼하고, 우리 아이들을 모욕했다"고 분개했다.

그러면서 "국정원이 우리를 사찰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이냐. 참사의 원인과 국정원이 무슨 상관이 있길래 4월 17일부터 사찰했단 말이냐"면서 "우리 세월호 유가족들은 이번 사건을 꼭 직접 고소·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참위는 이 같은 조사 내용을 종합해 국정원 전·현직 직원 5명과 다수의 성명불상 직원을 직권남용죄로 검찰에 수사요청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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