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년간 이라크를 철권통치 했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은 과연 전범재판에서 사형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다시 재기할 가능성은 있는가?
사담 후세인이 초췌한 모습으로 미군에 의해 체포되던 2003년 12월 당시만 하더라도 이러한 질문들은 상상할 수 없었지만 전쟁 2년이 지난 지금은 엄연한 가능성으로 이라크 인들에게 다가오고 있다.
사담 후세인의 사형 가능성 점점 희박(?)
총선과 새로 구성된 제헌의회를 통해 선출된 잘랄 탈라바니 이라크 대통령은 사견임을 전제로 "사담후세인의 사형집행 영장에 자신은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 18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가 있다.
비록 인터뷰에서는 그동안 사형 제도를 반대해 온 자신의 개인적 소신과 원칙에 이유를 두고 있음을 강조했지만 쿠르드 지도자로서 후세인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통해 美 군정과의 정치적 협상력을 키워왔던 전례에 비춰보면 사담의 생사여부를 두고 또 한번 정치적 협상카드로 이용할 가능성도 함께 내비쳤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외신에서도 끈질기게 계속되는 이라크 내 저항세력 문제의 해결책으로 새 정부의 정국 운영에서 주도권을 상실한 수니파 세력을 끌어안기 위해 새 정부 지도층이 현재 사담의 감형문제를 가지고 이들과 비밀협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바가 있다.
시아파측,"후세인 사형집행하라" 강력한 주장 계속돼
반면 새롭게 정국을 주도하게 된 시아파의 통일 이라크연합(UIP) 측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전범재판을 통한 사담 후세인의 사형집행을 강하게 주장해오고 있다.
한편 대부분 이라크 국민들의 주된 관심은 모든 권력을 잃고 힘없이 수감되어 있는 사담 후세인의 사형집행 문제 보다는 아직까지 치안과 민생안정에 더 많은 기대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변화 가운데서 진행될 전범재판에서 과연 사담은 사형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사담은 그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서로 직면하여 부딪히다)처럼 평생을 투쟁과 권력다툼으로 살아 온 인물이다.
1937년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 없이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으나 스무 살의 나이에 일찌감치 바트당 정치활동 무대에 뛰어들어 투옥, 암살시도, 사형선고, 망명생활과 옥중 국회의원당선 등 다양한 정치역정을 거친 후 1979년 실제적인 이라크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사담 후세인의 인팽은 투쟁과 권력다툼의 연속선
이후 이란-이라크 전, 걸프전을 치루고 국내 시아파와 쿠르드 민족의 봉기를 진압하며 장기집권을 계속해 오다 2003년 전쟁과 함께 권좌를 잃고 그 해 12월에 체포되어 현재 미군시설에 갇혀 전범재판을 기다리는 수감자 신세가 되어 있다.
이라크 땅을 24년간 철권통치하면서 아랍민족주의를 기치로 이 지역의 패권을 잡으려 했던 사담 후세인은 권좌에 있을 동안 자신을 고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황제의 현현으로 간주, 바벨론 제국과 같은 원대한 아랍제국 통일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내비쳤다.
실제로 그는 쿠웨이트 침공을 비롯해 주변 아랍국들을 위협했으며 이라크 내 바벨론 왕궁 터의 복원작업에도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다.
놀라운 것은 권좌를 잃은 지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체포당시 금방이라도 미군에 손에 의해 그의 두 아들처럼 사살되거나 처형될 운명으로만 보였던 그가 미군의 보호(?) 아래 현재까지 이라크 땅에 엄연히 살아 있다는 것이다.
4월 28일은 사담 후세인의 68회 생일이었다. 그는 전쟁이후 첫 생일을 도망자 신세로, 올해에는 작년처럼 미군 수감시설에서 외롭게 생일을 보냈다.
권좌에 있을 당시 사담 후세인의 생일은 북한의 김일성 생일처럼 국가공휴일로 선포되었고 대대적인 파티와 축하행사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자신의 초상화가 새겨진 건축물과 동상이 이날에 맞추어 전국적으로 동시에 완공되었으며 TV방송도 이 날 만은 방송국 이름을 ''''TV 밀라드(생일이란 뜻)''''로 바꾸고 온 종일 생방송으로 그의 생일축하와 찬양 메시지를 내보냈다.

사담은 자신의 통치 기간 중 북한의 김일성을 존경했고 그의 통치방식을 많이 답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라크 사람들은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잘 몰라도 북한의 김일성 이름은 곧 잘 기억한다.
그리고 전쟁 전 이라크 인들은 자신들의 독재자를 욕하고 싶을 때면 주변의 감시를 의식해 항상 북한의 김일성 이름을 대신 들먹이며 욕하곤 했었다.
지금도 이라크 사람들은 시아-수니 종파간의 미묘한 감정대립과 사담을 추종하는 무장저항세력의 보복을 의식해서인지 아무데에서나 사담 후세인을 대놓고 욕하지는 못하고 있다. 마음대로 그를 욕하던 전쟁 직 후와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이라크 내부에서 강한 민족주의 지도자 출현 기대"
총선 이후 지금까지 복잡하게만 얽혀 돌아가는 이라크 정국과 핵문제로 미국과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이웃 이란과 정치적 연결고리를 가진 집권 시아파 세력에 대한 미국 정부의 미묘한 입장 그리고 소외된 수니파 세력과 저항세력 문제 등이 그에 대한 재판과정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며 사형판결을 받기까지에는 여러 정치적 변수도 아직 남아 있다.
거기에다 전쟁 이후 곧 바로 회복되고 새로워지리라 기대했던 이라크의 모든 상황과 재건작업은 계속해서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고 오히려 장기화 될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복잡하게 돌아가는 이라크 정국과 여기에서 발을 빼지도 더 들여 놓기도 힘들게 된 미국의 입장, 그리고 이라크 정세에 주목하고 있는 세계여론의 향배 등이 향후 진행되는 그의 재판과정에서 사형판결과 집행여부에 대해 어느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게 만들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성경에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제국을 교만으로 다스리다가 하루아침에 왕권을 잃고 일곱 때(계절을 의미하며 3년 6개월에 해당하는 시간)를 짐승처럼 쫓겨나 지내다가 다시 왕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만약 이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처럼 이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난 후 사담 후세인이 소위 개과천선(改過遷善)한 모습으로 그 옛날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등장했던 것처럼 또 다시 이라크 국민들 앞에 나타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하기에는 미국의 주도로 진행되어 온 지난 이라크 전쟁과 2년간의 전후복구 과정들이 이라크 사람들로 하여금 미국식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새로운 차원의 반미감정을 갖도록 했고 다시 한번 자신들을 힘 있게 이끌어 줄 강한 민족지도자를 갈망하도록 부추겨 가고 있다.
지난 이라크 전쟁은 너무도 잘못된 부정확한 정보에서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또한 이라크 인들의 예상과 기대에서 크게 빗나가고 있으며 단지 부시정부의 정치일정에 따라 결정되고 움직여 왔다는 것이 이라크 인들의 눈에 하나씩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석유 때문에 대량파괴무기(WMD)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이라크가 앞으로 이러한 무기를 가지게 되면 위험하기 때문에 미국이 보유하고 있는 대량파괴무기들을 사용하여 이라크를 대량 파괴시켜버렸다고 이라크인 들은 생각하고 있다.
''''25센트짜리 총알 하나면 해결 될 수도 있었던 사담 후세인 제거를 위해 매일 5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의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다 먹여 살리고도 남을 만한 천문학적 비용을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 사용했고 지금도 미군주둔 비용에만 매달 수십억 달러를 쏟아 붇고 있다. 파괴된 이라크의 복구비용과 시간은 이보다 훨씬 더 들어갈 것이다''''라고 한 이라크 구호전문가는 필자에게 말했다.
사담후세인 제거 전쟁명분, 미군 당국 보호하에 생존 아이러니
한편 2005년 4월 현재 미 상원의 전쟁비용 추가예산 승인 액까지 포함하면 이라크 전쟁에 투입되는 전비 총액 규모는 무려 2000억 달러를 육박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은 독재자 사담 후세인 제거를 1차 목표로 전쟁을 일으켰지만 아직까지 사담은 미군의 보호(?) 하에 잘 살아있고 그 대신 많은 이라크 인들의 생명, 치안과 의식주를 포함한 그들의 삶의 터전, 그리고 박물관을 비롯한 4500년 역사의 오랜 전통문화유산들만 계속해서 약탈되고 파괴되고 있다.
전쟁 2년이 지난 지금도 사담 후세인은 죽지 않았으며 이라크인 들의 기억 속에는 포악한 독재자와 민족적 영웅의 두 가지 모습을 가지고 살아 있다.
이처럼 사담 후세인의 사형감형과 예기치 못한 재기를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기엔 어렵고 복잡하게만 흘러가는 현재의 이라크 상황과 미국이 약속한 해방과 자유에 대한 이라크 인들의 실망과 분노, 총선이 끝난 지 80일이 넘도록 계속되는 무정부 상태와 불투명한 향후 정국전망이 제2의 사담 후세인을 받아들이게 되는 기막힌 상황으로까지 내딛게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이집트 카이로=장영재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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