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더 킹 : 영원의 군주',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 JTBC '부부의 세계'의 최신 시청률(닐슨코리아 기준)이다. 줄줄이 히트작을 배출한 김은숙 작가의 신작('더 킹 : 영원의 군주'), 주말 저녁 8시를 여전히 '황금시간대'로 불리게 할 만큼 시청층이 튼튼한 드라마('한 번 다녀왔습니다'), 요즘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화제작('부부의 세계') 등 모두 '인기 드라마'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공통점은 하나 더 있다. 이 드라마 세 편 모두 지난 주말 무신경하거나 부적절한 연출로 시청자들에게 따끔한 지적을 받았다는 것이다.
17일 방송된 '더 킹 : 영원의 군주'에서 대한제국 최연소 총리이자 최초의 여성 총리 구서령(정은채 분)은 몸선이 드러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와이어가 없는 브라는 가슴을 못 받쳐줘서요"라고 말했다. 인물 소개만 보자면 능력도 야망도 있는 총리로 묘사돼 있지만, 적어도 1~2회 방송분에서 구서령은 황제 이곤(이민호 분)의 사생활과 잘생긴 남자에 관심을 둔 '미인'으로만 그려졌다.
18일 방송된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는 주점을 운영하다가 시장에 김밥집을 차린 강초연(이정은 분), 이주리(김소라 분), 김가연(송다은 분)의 에피소드가 나왔다. 이들은 업종과 상대해야 할 손님이 바뀌었는데도 노출이 있는 의상을 그대로 입고 화려한 솜씨로 호객행위를 했고, 가게는 남성 손님들로 북적인다는 내용이다.
같은 날 방송된 '부부의 세계'는 6회(11일 방송)에 이어 수위 높은 폭행 장면이 또 다시 등장했다. 폭행 신을 마치 VR(가상현실) 게임처럼 다뤄, 괴한에게 습격당한 지선우(김희애 분)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가해자의 시선으로 연출했다. 멱살이 잡힌 채 괴로워하는 지선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해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이들 세 드라마 모두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여성 정치인의 능력과 업적을 왜곡시키는 이미지를 만드는 게 거부감 든다", "노골적인 성희롱 대사가 불쾌하다", "시대착오적"('더 킹 : 영원의 군주'), "자칫 성매매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성 상품화를 통한 접객 행위를 유머로 소비하다니",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런 연출을 하는지"('한 번 다녀왔습니다'), "폭행을 가해자 시선에서 촬영하다니 제 정신인가. 시대 역행이다", "실제 피해자에게 트라우마를 줄 수도 있다", "15세 관람가에 맞지 않다", "여성의 공포심을 이용한 자극적인 설정에 눈살이 찌푸려진다"('부부의 세계')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 "극중 자극적인 설정 영향력 고민해야"…"세 드라마 모두 '현실 여성'의 고충에 무관심"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두고는 "이정은이 연기하는 초연의 서사가 있고, 스토리 전개상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해도, 시청률이 가장 높은 주말 가족 드라마에서 섹슈얼리티를 이용한 호객 행위 장면을 재현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또 옷차림, 말투, 행위 등 소위 '업소 여성'을 향한 편견을 강화하는 인물 설정이 정당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승한 칼럼니스트는 "과거 유흥업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다른 사회경험은 해 본 적 없는 것처럼 유흥업소에서 하던 대로 김밥 장사를 할 거라는 상상 자체가 해당 직종에서 일하고 있거나 일한 적 있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며 "미성년자 학생들을 상대로 그런 영업을 하는 것을 보고 시장 사람들이 '술 파는 것도 아닌데, 뭐' 하며 웃어넘기는 식의 연출도 유사 성매매를 지나치게 관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전했다.
'부부의 세계'는 이번 폭행 장면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자극적인 설정과 상황 재현이 많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 평론가는 "드라마 자체가 워낙 자극적이다 보니 그것에 대한 감각도 흐려진 것 같다. 6회에서 남편 이태오(박해준 분)에게 폭행당하는 지선우의 모습이 등장했는데, 이때 뚜렷한 비판이 덜 나와서인지 반복된 것 같다"라며 "1인칭 폭력 시점을 보여준 것은 드라마 전개상 꼭 필요했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오 평론가는 "드라마 제작진은 극중 자극적인 설정의 영향력에 관해 고민하며 만들어야 한다. 전개상 꼭 필요한지 살펴보고, 그 장면이 가지는 효과에 관해 책임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드라마를 다큐멘터리로 보겠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설정을 지양한 '개연성 있는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칼럼니스트는 세 드라마 모두 '현실 여성'이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관심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더 킹 : 영원의 군주'에 관해 "한국에서 여성 정치인이 언제나 '정치인'이기 전에 '여성'으로 먼저 평가받고 행동을 제약받는 현 상황과, 그 상황에 얼마나 많은 여성 정치인·여성 유권자들이 분노해 왔는지 관심이 없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성의 적은 여성'이라는 프레임을 깨뜨리기 위해 싸워왔는지에도 무관심하다"라고 짚었다.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 관해서는 "성매매에서 벗어난 여성들이 사회에 적응하며 살기 위해 어떤 고통을 겪고 한편으로 어떤 노력을 하는지, 남성들이 일찍부터 성매매에 익숙해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처럼 이야기하는 풍조가 일반 여성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관심이 없다"라고 전했다. '부부의 세계'를 두고는 "여성을 공격·학대하는 게 오락처럼 자행되는 시대 분위기가 여성에게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심지어 그걸 가해자 남성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게 얼마나 유해한지 관심이 없다"라고 지적했다.
◇ 시청자 불만과 질타에 입장 낸 건 '한 번 다녀왔습니다'뿐
'한 번 다녀왔습니다' 제작진은 방송 다음 날인 19일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4월 18일(토) 방송된 일부 장면이 시청자 여러분께 불편함을 드리게 되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조금 더 신중을 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며 이후 제공되는 일체 방송분은 수정 편집본으로 대체하겠다고 알렸다.
나머지 두 드라마는 위에 언급한 장면 외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장면으로 논란이 됐다. '더 킹 : 영원의 군주'에서는 조정 경기를 하는 남성 선수들을 바라보며 "역시 남자는 적게 입고 많이 움직여야 돼"라고 한 여성 관중의 대사가, '부부의 세계'에서는 극중 유부남인 손제혁(김영민 분)에게 가방을 사 주면 애인을 해 주겠다며 접근하는 20대 여성의 대사('부부의 세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처럼 비판이 제기된 장면에 관해 제작진 입장을 문의했으나, '더 킹 : 영원의 군주' 측은 20일 오후 현재까지 답이 없었고, '부부의 세계' 측은 "아직 논의 중"이라고만 답했다.
한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는 '더 킹 : 영원의 군주'(17일 방송분), '한 번 다녀왔습니다'(18일 방송분), '부부의 세계'(18일 방송분)에 관한 민원이 다수 제기됐다. 방심위 관계자는 20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세 작품에 대한) 민원 접수가 계속되고 있다. (안건 상정 여부를) 사무처가 검토하는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