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과 관련된 뉴스도 아시아와 북미, 유럽 등 대륙을 옮겨가며 계속 쏟아져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미국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뿐만 아니라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나서서 보편적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이들은 코로나19가 촉발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최소한의 기본권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모든 국민에게 차별없이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지금 세계가 처한 경제상황을 '1929년 대공황'에 비유하는 경제전문가들도 있다. 이런 이유로 '기본소득은 어차피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는 말도 나온다.
◇ 기본소득, 안정적인 재원 마련 가능한가…국토보유세가 대안
물론 '기본소득'에 대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은 주로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무책임한 인기영합주의'로 몰고 간다.
그 밑바닥에는 '도대체 재원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마련할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깔려있다.
맞는 말이다. 기본소득제도가 제대로 구동되기 위해서는 재원의 안정적 조달 방안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오며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 도입이 그것이다.
먼저 '국토 이용의 공공성'을 분명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토지의 경작과 이용은 토지소유자의 공동체에 대한 의무다. 노동과 자본 투하 없이 이루어지는 토지 가격 상승은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이용돼야 한다"
- 1919년 제정된 독일 바이마르 헌법 中
우리나라에서도 1989년 토지공개념에 대한 기초가 만들어졌다.
"국가는 국민 모두의 생산 및 생활의 기반이 되는 국토의 효율적이고 균형 있는 이용·개발과 보전을 위하여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에 관한 필요한 제한과 의무를 부과할 수 있다"
- 대한민국 헌법 제122조
'토지는 모든 국민의 공유자산 성격이 있다'는 토지공개념을 이해했다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 보자. 어떤 광경이 펼쳐지는가. 그것은 막대한 규모의 '부동산 불로소득'이다.
남기업 토지+자유연구소장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지난 2007년부터 2016년까지 10년 동안 해마다 264조원~374조원의 부동산 불로소득이 발생했다. 이는 우리나라 GDP의 22%를 넘는 엄청난 규모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이 막대한 불로소득은 과연 누가 차지했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부동산을 과다 소유한 개인이나 법인이다.
2014년 현재 가액 기준으로 개인 토지 소유자 중 상위 10%가 전체 개인 소유지의 64.7%를, 또 법인 소유자 중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지의 75.2%를 각각 소유하고 있다. 반면 40.1% 세대(2012년 기준)는 토지를 한 평도 가지고 있지 않다.
소수가 부동산 불로소득을 누리며 파티를 벌일 때 대다수 서민들은 천정부지로 치솟는 부동산 가격에 망연자실하고 있다.
또 한 발 더 들어가 보자. 그렇다면 부동산 불로소득에 대해 정부가 매기는 세금 규모는 적정한가.
토지보유세 강화는 정의와 효율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 하지만 한국은 불로소득을 사전에 차단하는 보유세가 0.16%로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가볍다.
2015년 현재 OECD 주요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보면, 호주 0.31%, 캐나다 0.87%, 일본 0.57%, 영국 0.78%, 이탈리아 0.62%, 미국 0.71% 등으로 한국을 제외한 15개국의 평균은 0.39%이다. 우리는 주요국의 1/2~1/5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하면 이렇다.
"국민 모두의 공유자산 성격을 가지고 있는 토지가 소수의 개인과 법인에 집중됐다. 여기서 막대한 불로소득이 발생한다. 하지만, 세금부담은 매우 가볍다. 이는 부동산 투기의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며 한국경제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재명 지사는 그 해결책으로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는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목적세인 국토보유세로 환수해 이를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돌려주는 것을 골자로 한 제도이다.
일부 변경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세부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기존 국세 보유세인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하는 대신 국토보유세를 도입하고 지방세인 재산세는 현행 유지 ▶ 용도별 차등과세 폐지 ▶토지분 재산세 환급 ▶ 비과세·감면을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모든 토지에 과세 ▶공정시장가액비율(과표현실화율) 폐지 ▶세수 전액 기본소득 지급
토지+자유연구소에 따르면, 2012년 과세표준을 토대로 추정한 2018년도의 국토보유세 수입은 약 17조5,460억원이었다. 여기서 종합부동산세 폐지로 인한 세수 감소 2조원을 빼고도 약 15조5천억원의 세수증가가 발생한다.
약 15조원이라는 돈은 전 국민에게 한 사람당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할 수 있는 액수이다.
국토보유세 도입으로 15조원 가량의 세수증가가 발생해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이 0.3%대로 오르더라도 앞에서 살펴봤듯이 미국이나 영국, 이탈리아 등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이재명 지사는 이와 관련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토보유세 비중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만 해도 연간 50만원 이상의 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지급할 수 있다"며 "이것이 자산불평등을 완화하는 역할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증세에 따른 '조세저항'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보수화된 탓도 있지만, 보유세 실효세율 강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과감한 개혁조치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종부세와 재산세만으로 보유세를 강화할 경우, 심한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납세자 입장에선 세금 부담은 늘어났지만, 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직접적으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지사는 "국토보유세는 국민의 95%는 세금을 아예 내지 않거나 납부하는 세금보다 받는 기본소득이 더 많게 설계돼 있어 국민이 증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한다.
다시말하면, 국토보유세는 전체 가구의 95%에게 온전히 수혜를 누리게 하므로 과세 대상자 절대 다수의 공고한 지지는 소수 부담자의 조세저항을 막는 강력한 방파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4.15총선에서 국민은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에게 압도적인 의석을 몰아줬다. 깨어있는 국민이 대통령을 새로 세우고 지방권력을 교체한데 이어 의회권력까지 손에 쥐어준 것이다. 이는 '촛불혁명을 완수하라'는 준엄한 명령이자 경고이다.
촛불혁명의 정신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공평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도 지방정부와 지혜를 모아 대한민국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인 불로소득과의 전쟁을 벌여야 한다.
어린 미래세대들이 말한다. '내 꿈은 건물주가 되는 것'이라고. 대한민국 사회에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는 웃픈 이야기가 떠돌아다닌지 오래니 그럴만도 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이 몰고 온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과 경고를 무시하는 것이다.
※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