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조례에 '소년소녀가정'이나 '한부모 가정' 등을 '결손가정·결손가족'으로 표현해 마치 '비정상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거나 '유모(母)차'라는 용어가 평등 육아 개념에 반하는 차별적 인식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해 시민 인권에 미치는 부정적 요소를 예방하고 인권 친화적인 자치 입법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지적한 인권 침해적 조항은 서울시 860개 자치법규(조례 631개·규칙 229개) 가운데 96개 조항(조례 57개·규칙 5개)에 달한다.
시 인권위는 크게 △차별 및 인권침해 △기본권 보장 및 권리구제 △시민참여 보장 등 3개 분야로 나눠 인권 침해적 조항을 전수조사했다.
우선 총 55개 조항에서 '차별적 용어' 사용으로 인한 인권침해 및 '편견이나 선입견'에 근거한 대상 한정에 따른 차별을 발견, 이를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 차별적 용어로 인권침해…소외계층→취약계층, 자매결연→상호결연
시 인권위는 총 14개 조항에서 '소외계층·우범지역'이라는 차별적 용어를 발견했다. 이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상 및 해당 지역에 사회적 낙인을 야기할 수 있어, '취약계층·취약지역'으로 바꿔야 한다고 권고했다.
'자매결연'도 '성차별적 용어로 지적됐다. 시 인권위 관계자는 "'자매결연'은 앞서 2015년, 한국법제연구원에서 '차별적 용어'로 규정했는데도 5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서울시 조례 12개 조항에서 사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도 인권침해적 요소가 포함된 용어다. '저출산'은 인구감소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따라 '아기가 적게 태어난다'는 '저출생'이 올바른 표현이다.
시 인권위는 '미혼'도 결혼을 못 한 미완성의 상태라는 사회적 편견을 반영된 용어라며, '하지 않은 것'을 명확히 나타내는 '비혼'이라고 쓸 것을 권고했다.
'부모'라는 용어도 부모 외의 대상(조부모 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적 인식을 야기할 수 있어 '보호자'로, 어미 母가 들어간 '유모차'가 아닌 유아 중심의 '유아차'로 바꿔야 한다고 시 인권위는 지적했다.
이외에도 △'장애등급'은 →'장애정도'(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른 용어 개선 필요) △'행상/노점상'은 →'거리 가게'(순우리말) △'학생'은 →'청소년/시민'(학생 아닌 학교 밖 청소년 등 사회적 다양성 포함) △'주부'는 →'여성'(사회적 통념에 근거해 고용중단 여성을 주부로 특정할 우려)으로 개선 사항에 포함됐다.
아울러,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민을 '주부, 학생 등'으로 특정하는 것도 차별 인식을 강화할 우려가 있는 만큼 '고용계약이 없는 자'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시 인권위는 40개 조항에서 문화권, 반환권, 구제권, 개인정보보호권 등 기본권 보장 및 권리구제 차별조항을 찾았다.
예를 들어 시립과학관 등 (공공시설) 관리 및 운영 조례의 '이용료/관람료 감면' 조항에서, 현재는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 (이용료 감면)'이라고 돼 있다.
이를 '장애인과 동행한 보호자 1인(까지 면제)'으로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은 외출 시 보호자의 동반이 필요하므로 보호자 관람(이용)료도 면제해 장애인 문화권을 보장하도록 한 것이다.
'도시공원 조례/폐기물 관리·하수도 사용 조례' 등에서 기존 '과태료 부과·징수'만 있던 조항에, '이의신청 절차'를 마련했다. 시민의 구제권을 확보하겠다는 취지다. 시민참여 보장 분야에서도 시민의 공직 활동 참여권 보장 및 위촉해제 관련 조항에서 '정신상의 장애' 문구를 삭제해 장애로 인해 직무수행을 못 한다는 부정적 인식을 없애도록 권고했다.
시 인권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의 자치법규 인권 침해적 조항을 개정해달라고 지난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서울시는 시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해 '인권영향평가제도'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2016년부터 법적 기반을 마련해왔다. '인권영향평가'는 기관의 활동으로 인해 인권에 미칠 수 있는 실제적·잠재적인 인권리스크를 파악하고 평가하는 절차다. 지난해에는 서울시 자치법규에 대한 전수조사를 통해 인권영역별로 서울시민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조항을 점검하고 있다.
한상희 위원장(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인권영향평가로 시민 인권에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 요소를 예방하고 개선해 더욱 인권 친화적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면서 "향후에도 자치법규 제·개정 과정에서 인권영향평가를 통해 인권 기반의 자치 입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