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면서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지만, '어용 저널리즘'은 박정희·전두환 시대의 유물로 족하다." (책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中)
진보 지식인으로 꼽히는 강준만(63) 전북대 교수가 작심한 듯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강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저서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인물과사상사)에서 유 이사장에 대해 "1984년 9월의 세상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1984년 9월은 '서울대 프락치 사건'(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조작 사건)이 발생한 때다. 서울대 학생들이 다른 학교 학생과 민간인을 정보기관 첩자로 오인해 감금, 폭행한 사건으로 유 이사장도 사건에 연루돼 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유 이사장이 썼던 '항소 이유서'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면서 사실상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만든 주범인 전두환 대통령에 대한 분노를 치솟게 만들었다.
강 교수는 "민주화가 이루어질 대로 이루어진 오늘날에도 유시민은 그 시절의 선명한 선악 이분법의 사고 틀에 갇혀 있다"며 "진보의 대의를 위해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에서 보위해야 한다는 '조직보위론'을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다시 꺼내들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자신의 한 마디로 KBS 사장마저 벌벌 떨게 만들고, JTBC마저 조국 사태 정국에서 '어용(御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문재인 지지자들의 적으로 전락시킬 정도로 막강한 '문화 권력'과 '정치 권력'을 가졌다"고 지적했다.
진보 언론 불매 위협 성공 사례의 원조로도 유 이사장을 지목했다. 2010년 해학과 풍자를 담는 '한홍구-서해성의 직설'란(欄)에 쓰인 '놈현 관 장사'라는 표현을 문제 삼아 '한겨레 절독'으로 압박하면서 한겨레신문 1면에 사과문을 싣게 하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후 2017년 "대통령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바꿀 수 없는, 더 막강한 힘을 행사하는 기득권 세력이 포진해 또 괴롭힐 것이기 때문에 범진보 정부에 대해 어용 지식인이 되려 한다"는 유 이사장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에게 하나의 절대적 좌표가 됐고 '어용 시민'이 대거 등장해 진보 언론마저 '어용'이 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대한 검증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친문 지지층에게 불매운동을 당한 '뉴스타파'를 예로 들었다. 강 교수는 "큰 희생을 무릅쓴 언론인들에게 정부 여당에 종속된 '기관 보도원' 노릇이나 하라는 요구가 도대체 어떤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라며 "어용을 철저히 실천하는 북한이나 중국 언론 모델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었을까?"라고 반문했다.
◇ "文 지지자, 한국 민주주의와 진보적 개혁의 소중한 자산"
강 교수는 "비판을 원천봉쇄하는 권력의 말로가 좋은 것을 본 적이 있는가"라며 "어용파는 자신들이 '권력'이 아니라며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할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는) 디지털 혁명 이전의 시대에나 통할 수 있는 궤변"이라며 "악플 공세로 자살하는 연예인이 속출하는 세상에서 집단적인 언어 폭력을 표현의 자유로 옹호하는 것을 어찌 궤변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문재인을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착하고 선량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이며 한국 민주주의와 진보적 개혁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지식인들이 '문파(문빠)' 논란에 가세해 옹호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는지 너무 안타깝다"고 털어놨다. 또한 "문재인 대통령은 '군림하고 통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대화하고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취임사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조국 사태'가 대표적인 증거"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문 대통령은 사과도 하지 않았으며 조국에 대한 애틋한 심정을 드러냄으로써 제2차 '국론 분열 전쟁'의 불씨를 던졌다"며 "최소한의 상도덕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언론학자답게 언론에 대한 비판도 거셌다. 열성 지지자들이 '공격 좌표'를 찍고 무차별적인 신상 털기와 악플, 문자 테러 등을 가해온 것을 예로 들며 "이런 이야기들은 보수 언론에만 실릴 뿐, 진보 언론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가 거론한 진보 언론에서는 이 책에 대한 기사를 그리 비중있게 다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인물과 사상' 편집장이 '좌표'에 찍혀 열성 지지자들에게 무차별 공격을 당했을 뿐이다.
강 교수는 유권자를 '정치적 소비자'로 규정하며, 불신과 혐오의 대상이 된 정치를 하나의 상품으로 보고 유권자가 신념에 의해 해당 상품의 소비를 거부하는 '정치적 소비자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운동은 미국과 유럽에서 발달했으며 영국의 정치적 소비자 운동가들은 아예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Shopping is more important than voting)는 슬로건까지 들고 나왔을 정도다. 우리나라에선 아직 정치적 소비자 운동이 미약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젊은 층과 여성을 중심으로 크게 늘고 있다.
진보 성향 지식인인 강준만 교수는 1998년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지식인 실명비판'을 도입해 지식인들의 이중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저서 '김대중 죽이기'(1995년)를 시작으로 '노무현 죽이기'(2003년), '전라도 죽이기'(1995년) 등을 통해 주류 정치와 언론에서 '을(乙)' 취급을 받으며 배제된 정치(인)와 지역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강남 좌파'( 2011년), '싸가지 없는 진보'(2014년) 등을 통해 진보의 '진영 정치'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