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소득 하위 70%에 대해 4인 가구 기준 100만원을 지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지 약 열흘이 지나는 동안, 당정을 포함한 정치권 내에서 기류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 총리가 언급한 추진 방안은 여야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어, 현 정국에서 당장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자리에서 "선별적 복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상황이 급하기 때문에 고소득자는 다시 환수하는 장치가 마련된다는 전제 조건으로 보편적으로 지급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로서는 당정 협의 등을 통해 일단 하위 70%까지 지급하자고 확정했고, 현재 정부 입장도 그렇다"면서도 "신속성이나 행정 편의 차원에서는 100% 전 국민 지급이 쉽다"며 문을 닫지 않았다.
"선별하는 비용이 큰 무상급식 등과 달리 이런 경우에는 금액이 커서 선별적 복지를 견지한다"며 본인의 소신도 밝혔지만, "속도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타협을 할 수도 있다"며 "보편적으로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되 고소득자는 다시 환수하는 전제조건이 있다면, 그렇게 하지 못할 것도 없지 않나 하는 입장이다"고도 덧붙였다.
확정되지는 않았다면서도 확대 가능성은 열어 놓은 셈이다. 그런데 이같은 기류 변화는 정 총리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은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전 국민 모두로 변경하겠다고 밝혔다. 당정 협의안은 소득 하위 70%까지였지만, 이날 이해찬 대표는 "지역과 소득에 관계없이 모든 국민을 국가가 보호한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같은 방침을 밝혔다.
다음 날 이인영 원내대표도 "야당이 동의하면 대통령에게 긴급재정명령 건의도 적극 검토해 보겠다"며 논의를 가속화했다.
야당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5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긴급재정명령권을 발동해 전 국민에게 1인당 50만원씩을 신속히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내 비판에도 불구하고 황 대표는 7일 이를 재차 강조했다.
같은 날 청와대는 "정부는 3차 비상경제회의에서 결정된 긴급재난지원금이 하루속히 지급될 수 있도록 신속히 추가경정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다"며 일단 선을 그었다. 하지만 "추경 심의 과정에서 정부는 여야와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칠 것이다"며 여지 자체는 남겨 뒀다.
정 총리는 8일 "정부에서는 당정 협의 등을 통해 하위 70%까지 지급하자고 확정했고, 현재 정부 입장도 그렇다"면서 "정치권에서 다른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국회 전체가 통일된 의견이 나온 상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다 통일되었다면 정부가 경청하게 될 터인데 아직은 각 정치지도자들이 이렇게 또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등 국회 전체가 통일된 의견이 나온 상태는 아니다"고 부연했다.
바꿔 말하면 국회 전체가 통일된 의견을 내놓을 경우 정부 또한 실행 의사 자체는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관건은 여야 합의 여부가 되는 셈이다.
일단 여당은 대체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고, 미래통합당도 6일 참고자료에서 "여러 부작용 등을 해소한다는 차원에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줘야 한다는 판단이다"고 밝힘에 따라 당론으로 정해지는 모양새다.
다만 정 총리는 "현재는 하위 70%를 기준으로 추경안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는데, 신속성을 요구하는 추경안이 수정될 경우엔 그만큼 진행도 늦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이 원내대표와 황 대표 모두가 거론한 긴급재정명령권에 대해서도 정 총리는 "긴급재정명령은 (돈이 나가는) 세출은 할 수 있지만 (돈을 마련하는) 세입은 할 수 없다"며 선을 그었다. "어디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지 세심히 살펴야 하고, 확보에도 시간이 필요하기에 아무리 급해도 내일 모레 당장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이 권한은 국회의 권한을 건너뛰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상황에서만 발동할 수 있지만 여야 정치권이 이를 먼저 나서서 주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긴급재정명령권을 쓰더라도 지체 없이 국회에 보고하고 승인을 받아야 해, 국회의 논의 자체는 여전히 필요하다.
결국 긴급재정명령권 발동 여부와 관계없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려면 여야의 합의가 기본적으로 필요한 셈이지만,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원활한 의견 일치가 가능할지는 다소 의문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