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이 지난 1월 CBS 라디오에 출연해 '배민'의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김봉진 대표를 만나고 난 뒤 전한 말이다. 배민이 '요기요'를 운영하는 독일계 기업에게 매각된 뒤 독과점에 따른 수수료 인상 우려가 한창 나오던 때였다.
3개월이 지난 현재 배민이 수수료 체계를 변경하면서 김봉진 대표의 약속도, 그 약속을 전한 박 장관의 말도 무게감을 잃어 버렸다. 반면 수수료 인상 우려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 반발에 고개 숙인 배민, 개선책 마련한다지만
사태의 발단은 지난 1일부터 배민이 새로운 수수료 체계를 도입하면서부터. 배민은 자영업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정액광고제(울트라콜)를 주문 건당 수수료 부과 방식의 정률광고제(오픈서비스)로 변경했다.
배민은 수수료 체계를 바꾼 이유로 '일부 업소의 광고 독점'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정액광고제의 경우 개수 제한이 없다보니 광고 개수를 많이 사들인 업소만 광고에 노출돼 불합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들과 일부 소비자들의 반발이 쏟아지자 시행 6일만에 사과문을 내고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물러섰다.
그러나 개선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수수료 체계를 완전히 뒤엎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플랫폼 기업의 특성상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배민은 세계에서 가장 싼 수수료를 유지해왔다"며 "요기요의 절반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합병으로 한 식구가 된 '요기요'와의 수수료 격차를 줄여 나가야 한다. 이같은 움직임은 요기요에서도 감지된다. 요기요는 최근 평균 수수료율을 기존 18.5%에서 15% 정도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 자영업자들의 반발 "수수료 기존보다 4배나 인상돼 헛장사할 판"
서울 양천구에서 치킨집을 하는 A씨. 배민의 기존 정액 광고상품인 '울트라콜'을 주로 이용해왔다. 광고 비용은 월 50만원 정도.
하지만 배민의 새 수수료 체계인 '오픈서비스'를 이용하게 되면 월 200~300만원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A씨는 "배민의 새 수수료 체계에서는 헛장사하는 것"이라며 "새 수수료율이 5.8%라고 하지만 부가세에 결제 수수료까지 합치면 9.8%나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1만 7천원짜리 치킨 한 마리 팔면 1700~2500원이 남는데 기존에는 배민이 수수료로 300~600원 정도를 떼갔다면 새 수수료 체계에서는 1700원을 가져간다"며 "남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새 수수료 체계에서는 하루 매출이 5만원에 불과한 자영업자들만 기존보다 적은 수수료를 낼 뿐,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기존보다 높은 수수료 부담을 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새 수수료 체계를 '배민의 일방적인 요금 인상'으로 규정해 '유감'을 표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상세하게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 '배민이 결국 배신' 소비자 냉담…"전화주문해도 배달요금 똑같아" 불만도
소비자들도 배민의 새 수수료 체계에 불만이다. 수수료가 오르면 결국 소비자에게 전가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일부 소비자들은 높은 수수료가 발생하는 배달앱 대신 과거처럼 음식점에 직접 전화로 주문하자며 '배민 불매운동'을 제안하기도 한다.
배민에 대해 대립적 자세를 취해온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공공앱이 개발되기 전까지 전화주문을 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전화주문을 해도 소비자 입장에서는 수수료가 발생하기는 마찬가지라며 부정적인 의견을 내는 이들도 있다.
소비자 B씨는 "음식점에 직접 전화 주문을 했는데도 배달료는 그대로 다 받더라"며 "배달앱도 문제지만 음식점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도 배달앱 대신 전화주문이 늘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고 있다. 한 자영업자는 "배민 수수료가 오른다고 해도 소비자들은 좀 더 편리하고, 할인 이벤트도 많이 하는 배달앱을 여전히 선호할 것"이라며 "전화 주문이 배달앱을 대체하지는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소비자시민모임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소비자의 86.4%가 배민과 요기요의 합병을 반대했는데, 가장 큰 이유로 '가격인상 우려'를 꼽았고 '쿠폰이나 이벤트 등 소비자 혜택 감소'를 세 번째로 꼽았다. 혜택이 돌아간다면 소비자들은 합병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배민이 수수료는 올리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던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배민의 새 수수료 체계가 반발을 사고 대국민 사과 국면까지 갔지만 판단은 유보하고 있다. 배민의 수수료가 실제 오른 것인지 아닌지 '팩트체크'를 해보겠다는 입장이다. 한 손으로는 배민과 같은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자영업자를 보호해야 하는 정부의 딜레마가 느껴진다.
이는 '타다' 때의 딜레마와 다르지 않다. 신산업과 전통산업 간의 충돌, 소비자 편익 등을 두루 고려해야 하는만큼 풀기 쉽지 않은 숙제가 될 전망이다.
지자체를 중심으로 공공영역이 배달앱을 직접 만들어 수수료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다. 전북 군산시가 개발한 공공 배달앱 '배달의명수'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다. 배달앱을 만들기는 기술적으로 어렵지는 않지만, 이 앱을 많은 소비자들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할인 이벤트'나 '할인 쿠폰' 등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한다. 플랫폼 기업들이 막대한 규모의 적자를 감수하고도 플랫폼에 돈을 쏟아 붓는 이유이다. 또한 공공이 만드는 배달앱이 성공을 자신하기 쉽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