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일상 사진이 포르노로 둔갑…'딥페이크' 범죄 기승

온라인 성착취물 공유방서 '능욕방' 활개…여성 얼굴·나체 합성해 유포, 능욕
지인·SNS에 얼굴 사진 올린 여성들 표적으로 삼아
시민단체 "청소년들도 가담…놀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적
수사기관 대응 미흡 지적…명예훼손 등 혐의 적용, 대부분 벌금형·집행유예
'딥페이크 처벌' 성폭력처벌법 개정…전문가들 "소지자 처벌, 입증책임 조항 필요"

(사진=연합뉴스)
"여성들이 자신의 평범한 일상생활을 올린 사진마저 성범죄의 표적이 되는 거죠"

오랜 기간 디지털 성범죄를 추적해온 한 활동가가 온라인 채팅 방에 판치고 있는 '지인 능욕방' 등 딥페이크 성범죄를 두고 한 말이다. '딥페이크'(Deep Fake)란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특정 영상이나 사진에 합성한 편집물을 말한다.

조주빈이 운영한 '박사방' 등 온라인 성착취물 공유방에는 '지인 능욕방'이란 이름의 딥페이크 채팅 방이 판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여성의 사진을 포르노 사이트 등에서 보이는 나체와 합성해 집단 성희롱을 벌였다. 텔레그램뿐 아니라 트위터 등에도 '#지인능욕', '#지인얼싸'와 같은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들이 만연해 있다. 여성 사진 합성을 전문으로 하는 트위터 계정도 다수다.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누구나 쉽게 사진을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딥페이크 범죄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지만 이를 단속·처벌하는 법망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놀이처럼 자리 잡은 '능욕방'…"그냥 재밌으니까", "짜증 나게 해서"

1년 전, 여고생 A씨의 같은 반 친구들과 담임 선생님이 함께 있는 메신저 단체 대화방. A씨의 얼굴이 뚜렷하게 보이는 나체 사진 한 장이 도박 사이트 링크와 함께 올라왔다. A씨는 촬영한 적 없는 사진이었다.

사건의 전모는 이랬다. 누군가 A씨의 계정을 해킹했고, A씨의 얼굴과 포르노 사이트에 올라온 나체를 합성한 사진을 만들어 유포했다. 충격을 받은 A씨는 부모와 함께 사설업체를 찾아 사진 삭제를 요청했다. 하지만 어디에 유포됐는지 알 길이 없어 '완전 삭제'는 어려웠다고 한다.


이처럼 피해 여성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합성 사진이나 영상이 다수의 채팅 방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한참 뒤에 범행을 알게 된다. 포르노 사이트나 성매매 광고에까지 사진이 퍼져 이를 본 지인이 제보하는 경우가 많다.

딥페이크(그래픽=연합뉴스)
성착취 공유 온라인 채팅 방을 모니터링해온 전문가들은 '딥 페이크 성범죄'가 하나의 놀이 문화처럼 번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의 활동가 B씨는 "이제는 불법촬영뿐 아니라 지인이나 온라인에 떠도는 여성의 사진도 조작돼 '집단 성희롱'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벌어지는 공간은 텔레그램, 트위터, 라인, 카카오톡 등 국내외 메신저를 아우른다. 모든 여성이 표적이 된다. 단체 대화방 속 남성들은 지인, 인스타그램 등에 자신의 사진을 올린 여성뿐 아니라 여동생 등 가족의 사진을 건네기도 한다.

가해 남성들은 여성의 사진, 이름, 나이, 소속 학교나 회사 등을 공개한다. 상상에 기반한 설명도 덧붙여 성희롱하고 "많은 제보 바랍니다. 같이 괴롭혀주자. 한 번 단합하자"와 같이 부추기는 글을 적어 올린다. 합성한 사진, 영상 등을 이미지화해 텔레그램 방에서 이모티콘, 스티커로 이용하는 악랄함도 보인다.

굳이 따로 의뢰하지 않아도 이유 없이 여성들을 모욕하는 행위도 만연하다. 한 남성이 채팅 방에 여성의 사진을 올리고 "짜증 난다, 어떻게 해 보자"고 말하면 이내 합성 사진이 만들어져 유포된다. 채팅 참여 남성들은 "함께 능욕하자"는 내용의 공지를 올리고 다수의 채팅방에 사진이 동시다발적으로 퍼진다.

미성년자 사이에서도 딥페이크 성범죄가 '재미있는 거리'로 자리 잡았다는 게 활동가들의 전언이다. 중, 고등학생들이 여성 동급생의 사진을 올려 합성을 의뢰하고 이를 채팅 방, 포르노 사이트 등에 퍼뜨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사진=연합뉴스)
◇피해 여성들 "치가 떨린다", 수사는 미진하고 삭제 어려워 '이중고'

피해자들은 자신의 평범한 일상 사진이 성적, 모욕적인 방식으로 악용됐다는 데 치를 떨고 있었다. 딥페이크 피해를 본 한 여성은 "누군가 내 사진을 다운 받아 이를 남성 커뮤니티뿐 아니라 포르노 사이트나 성매매 광고 사이트 등에 올려 음란물로 소비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았다"며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너무 당황했고 화가 났다"고 전했다.

심지어 지인이 사진을 합성해 유포하는 경우도 많다. 피해 여성들은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이, 가까운 사이의 남성이 성적으로 모욕할 목적으로 사진을 이용했다는 데 공포와 분노, 절망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최근 N번방 사건이 커지기 전까지,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한 수사기관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는 "경찰서를 찾으면 대부분 신원 확인이 안 된다. 범인 잡기가 어렵다며 수사를 잘 개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고 전했다.

이미지 삭제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폭파와 생성을 반복하는 텔레그램 등 SNS에 합성 사진 등이 삽시간에 퍼지고, 이를 저장해둔 남성들이 또 다른 플랫폼에 유포하면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때문이다.

법원 앞에서 '디지털성폭력대응 강원미투행동연대' 회원들이 피켓을 들고 텔레그램 대화방을 통한 성 착취물 유포자 등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딥페이크 처벌 위해 뒤늦게 법 개정됐지만… "소지·시청한 사람도 처벌해야"

이처럼 딥페이크 범죄가 사회 문제로 커지면서 처벌을 위한 관련 법이 개정된 상태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 1호 법안'으로 딥페이크 영상물을 제작·유포하는 사람을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이 지난달 17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오는 6월 25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안에 따라 대상자의 의사에 반해 사람의 얼굴, 신체나 음성을 편집·합성·가공·복제한 촬영·영상물 등을 제작하거나 퍼뜨리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영리 목적으로 유포하면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처벌할 수 있다.

딥페이크 범죄는 현행법상 성폭력으로 인지되지 않아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 음란물 제작 등의 혐의만 적용됐는데 이를 범죄로 적시해 엄벌한다는 것이 개정안의 취지이다. 그동안 딥페이크 범죄는 벌금형, 집행유예, 선고유예 등이 95% 가까이 차지하는 등 처벌이 미미했던 만큼 개정안을 통해 처벌할 길이 열린 셈이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행법도 여전히 보완할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제작·유포자뿐 아니라 소지·구매자의 처벌이 빠져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꼽힌다.

이은의 변호사는 "딥페이크뿐 아니라 성인 여성에 대한 성착취물, 불법 촬영물을 구매, 소지, 시청하는 사람들도 처벌해야 한다"며 "수요자의 의뢰가 계속 있는 한 법망을 피해 가는 제작은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사자의 동의가 확인되지 않은 사진 등 게시물에 대한 처벌 규정, '입증 책임'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해당 사이트 운영자와 게시자에게 동의에 대한 입증 책임을 두는 조항이 필요하다"며 "앞으로 어떤 첨단 기술로 어떤 성범죄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상황에 맞게 유연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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