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31일 비밀 보존기한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1577권, 24만여 쪽)에 따르면 주일 대사관은 1989년 10월 해제된 일본 외무성 비밀문서의 주요 내용을 본부에 보고했다.
일본은 이미 당시부터 1945년 8월 이후 생산된 지 30년 경과한 외교 비밀문서를 1~3년 간격으로 일반에 공개해왔다.
주일 대사관은 ‘한국관계 주요 내용’에 대한 보고에서 “한국전쟁시 장비와 물자 대량 조달로 자립경제의 발판을 만들어왔던 일본은 휴전의 성립에 대비, 중국 등 새로운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필요할 것임(53.4.2. 주영대사의 외상 앞 보고)”라고 기술했다.
또 “한편, 휴전 후 일본 경제가 받을 불안 때문에 일본은 미국에 대해 휴전 후의 배려를 요청한 바, 당시 존슨 국무차관보는 일본이 받을 경제적 타격은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일본이 획득한 외화에는 큰 영향이 없도록 배려해 가고 싶다고 언급(53.4.1. 주미대사의 본성 앞 보고)”이라고 적었다.
이에 따른 결과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실제로 미국은 한국에 대한 2억 달러 원조 계획 중 우선 3900만 달러어치의 부흥물자를 일본으로부터 구입하도록 배려했다.(53.8.31. 주미대사의 외상 앞 보고)
하지만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이 이미 폐기하고자 하는 공업 설비가 한국에 들어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한 것으로 기록됐다.(54.2.15. 주미 임시대리대사의 외상 앞 보고)
주일 대사관은 “또한 일본 외상은 휴전 후 일본 주둔 병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하여 주둔군 유지비 또는 주둔군으로 인한 소비는 증가할지 모르나, 특수경기가 후퇴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언급(53.4.10. 외상의 재외공관장 앞 통보)”이라고 보고했다.
일본은 심지어 “한국전쟁 휴전협상에 어떤 형태로든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미국에 타진토록 지시(53.6.20. 외상의 주미대사 앞 지시)”한 사실도 밝혀졌다.
일본은 또 한국의 전후 재건 계획에도 참여할 것을 건의(53.12.17. 외상의 수상 앞 보고) 했지만 이 역시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 대통령은 이후 일본의 유엔 가입 문제와 관련, 대만 정부에 거부권 행사를 몇차례 요구했고 1956년 11월 엽공초 대만 외교부장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직접 나서서 반대해줄 것을 요청했다.
우리 정부는 주한 대만대사를 통해서도 다섯 차례 정도 같은 요청을 되풀이 했지만, 대만 정부는 거절했고 이를 엽공초 부장이 주한 일본대사에게 알려줬다.(56.11.5)
비밀 해제된 일본 외교문서에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국군 통수권에 대한 내용도 담겨있었다.
휴전 직후인 1953년 8월 19일 당시 로버트슨 미 국무성 차관보는 주미 일본대사와의 간담회에서 한미 방위조약상 미군 주둔 조항은 미국의 권리 조항으로 반드시 준수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한반도에서 공산권을 포함한 모든 외국군 철수에 동의한다면 미국으로서도 환영할 일이라고 말했다.
1953년 7월 2일 주뉴욕 일본 총영사의 보고에 따르면 한국군은 언제든지 이승만 대통령을 제거할 수 있으며 한국군이 반드시 이 대통령 통솔 하에 있다고는 할 수 없다는 ‘미국의 견해’가 기록됐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이 대통령이 당시 백선엽 육군 참모총장 등 군 수뇌부가 지나치게 친미적이라는 이유로 면직 의사를 비쳤지만 결국 이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한편 올해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미국 무역통상법 Super 301조 협의 △재사할린동포 귀환 문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협의체제 수립 △동구권 국가와의 국교수립 관련 문서 등이 포함됐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공개된 문서 원문은 외교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