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씨는 지난 25일 서울 종로경찰서 앞에서 '피해자들에게 할 말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손석희 사장님, 윤장현 시장님, 김웅 기자님을 비롯해 저에게 피해를 입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조씨의 언급 이후 수많은 언론이 손 사장의 '입'에 주목했다. 온갖 의혹이 더해지자 손 사장은 이날 JTBC를 통해 '프리랜서 기자 김웅씨로부터 손 사장과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해달라는 사주를 받았다'는 조씨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금품 요구에 응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손 사장은 "조주빈이 '손 사장과 분쟁 중인 김씨가 손사장 및 그의 가족들을 상대로 위해를 가하기 위해 행동책을 찾고 있고 이를 위해 본인에게 접근했다'고 속였다"며 경찰도 진본인 줄 알 정도로 정교하게 조작된 김 씨와의 텔레그램 대화 내용을 제시했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 성 착취 범죄 아닌 '손석희 음모론'에 초점
손 사장이 조씨의 협박에 넘어간 것을 인정하자 조선일보의 보도 방향은 손 사장에게 집중됐다. 조씨 등이 운영하고 수만명 이상의 관전자가 가담한 성 착취 사건이란 본질에 집중하기보단 '손석희 음모론' 부각에 초점을 맞췄다.
조씨가 포토라인에 선 다음날인 26일 조선일보 1면은 조씨의 사진과 함께 '손석희, 조주빈 협박에 돈 건넸다'란 제목의 기사가 차지했다. 조씨를 비롯한 가담자들의 뒤틀린 성 관념, 반성 없는 조씨의 태도 등에 집중한 다른 언론과는 확연히 달랐다.
4면에서도 '손석희, 조주빈과 무슨일 있었길래…왜 신고 않고 돈 입금했나'라는 기사가 주요하게 다뤄졌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그렇게 위급한 상황임에도 손 사장은 검경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 사장은 조씨가 금품을 요구하자 이에 응했고, 조씨는 그대로 연락을 끊어 버렸다. 손 사장 측은 "증거 확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준 것"이라고 했지만, 법조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이란 말이 나왔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지면에서도 '협박 피해자라는 손석희, 방송국서 조주빈 대리인 만났다'란 기사에서 "지금까지의 경찰 수사 내용, 이 사건에서 등장하는 인물의 증언을 종합하면 JTBC를 통해서 발표한 손 사장의 해명에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점이 많다"며 의혹 제기를 이어갔다.
'[기자의 시각] 손 사장님, 그날 밤 무슨 일이?'라는 기자 칼럼에서는 이번 사건을 정파적으로 이용하려는 조선일보의 의도가 더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해당 칼럼을 쓴 기자는 "도대체 그날 밤 경찰에도 알리고 싶지 않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며 사기 피해자인 손 사장에게 이번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기도 했다.
그는 "이런 흉악범과 사기꾼에게 돈을 뜯기고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 사이 조주빈은 여중생을 포함한 여성 수십 명의 인생을 더 망쳤다. 2019년 8월 조주빈이 협박해왔을 때 곧장 경찰에 신고하고, 경찰이 그를 체포했더라면 피해자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의도치 않았더라도 그의 방조자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TV조선 보도도 마찬가지. '피해자'는 없고 '손석희'만 있었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에 따르면 TV조선은 조씨 등의 집단 성착취물 거래 사건의 심각성은 외면하고 그저 '손석희 음모론'을 부각하는 데 집중했다.
'이것이 정치다'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전문가 패널이 성범죄의 본질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는데도 진행자가 "느닷없이 손 사장을 거론한 이유가 참 궁금해졌다", "25살의 파렴치범한테 왜 손석희, 윤장현 이런 사람들이 이렇게 취약했는지 여전희 의문"이라며 집요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대담을 유도했다. 이런 대담은 무려 16분간 지속됐다.
저녁종합뉴스에서도 TV조선은 가해자 조씨가 아닌 손 사장에 초점을 맞췄다. TV조선은 '손석희 해명 불구 의문점'이란 기사에서 "조씨를 신고해도 또 다른 행동책을 찾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신고를 미뤘다"는 손 사장 측 입장을 전하면서도 의문이 남는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그 근거는 "법조계에서는 손 사장이 신고를 하지 않은 것은 통상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는 게 전부다. 민언련은 이에 대해 사건의 중심을 '손석희'로 바꾸겠다는 TV조선의 의지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조선 계열, '손석희 때리기'에만 관심…사건의 본질 흐려"
민언련 김언경 사무처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조선 계열이 '손석희 흠집내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상업적∙정치적 목적 모두에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상업적으로 봤을 때 JTBC는 TV조선의 가장 큰 라이벌이다. 정치적으로도 JTBC는 박근혜 정부 때부터 조선 계열의 반대편에 있는 언론이다. 상업적 목적에서나 정치적 목적에서나 JTBC를 공격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선일보와 TV조선의 보도가 나쁜 건 이번 사건의 본질인 집단 성 착취 문제에 대해선 관심이 없고 '손석희 때리기'에만 집중한다는 점"이라며 "이런 보도는 문제의식을 다른 방향으로 유도해 사건의 본질을 완전히 덮어버리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