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에 사는 고등학교 3학년 A양은 요즘 이슈로 떠오른 'n번방' 사건을 보면서 용기를 내어 상처 입은 속내를 털어놨다.
평상시 사용했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개인 사진들이 다른 SNS에서 특정 사용자들에 의해 무단 도용되고, 성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는 대상으로 구체적으로 묘사돼 타인에게 무방비로 공개돼 온 피해를 입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A양은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가족에게도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혼자서 고통을 감내해왔다.
"텀블러 안에는 '제보자'라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제보자가 '제보 들어왔습니다' 라는 제목을 붙여서 개인SNS에 올라간 사진과 이름, 나이 정도를 기재한 후에 입에 담지 못할 내용의 글을 올려놔요"
"몸매가 어떻다는 둥 남자를 몇명 만났고 키가 크고 작고, 노래도 잘한다, 성관계 수준이 어떻다고 하는 등 내용이 담겨 있는데요. 섬뜩한 건 다른 사람이 모르는 개인 신상까지 상세히 적어 놓고 '지인 능욕'이라며 사진과 모욕의 글을 공개하고 있는 것이죠"
A양과 함께 기자를 찾은 또 다른 고등학교 3학년생 B양도 비슷한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4월 텀블러에 제가 교복입은 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글들과 제가 연락을 바라는 듯한 글들이 적힌 것을 확인했어요"
B양이 보여준 문제의 사진에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내용의 글이 적혀 공유되고 있었다.
B양은 곧바로 부모님과 담임 교사에게 알렸고 경찰서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온 경찰의 반응은 냉담했다.
"경찰분이 자기 딸도 이런 피해를 당했는데 외국 사이트라 범인을 잡기 힘들다는 답을 했어요. 대신 사진이 더 도용될 수 있으니 일상 사진을 올려 온 페이스북을 탈퇴하라는 말을 하더라구요"
두 학생의 친구 C양 역시 같은 사정을 호소하면서 자신들의 사례가 청소년들 사이에 만연돼 있다고 토로했다.
"친구들이 얘기를 안해서 그렇지 15살짜리 사진부터 미성년자 사진에 성적 혐오스러운 말들이 섞인 말들이 너무 많고요. 10명중 1~2명 정도가 이런 피해를 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주변의 편견도 피해자들을 더욱 위축시키고 오히려 가해자들이 활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는 목소리도 더했다.
"이 사실이 학교에 알려지면 바로 낙인이 찍혀요. 피해자 낙인, 노는 애? 이런식으로요. 그럴바엔 혼자나 같이 피해본 친구들과 그냥 하소연 하면서 시간이 지나가기만 바라고 있는 거죠"
"더군다나 대학을 가거나 사회생활을 하게 되고 나중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마음대로 사용당한 사진이나 허위 글로 인한 고통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을 거예요"
"신고 방법도 잘 모르고, 피해를 당한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무서워서 숨여야 하는 상황이에요. 심리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학교나 경찰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줬으면 좋겠어요. 국민청원에 텀블러에서 피해본 글이 올라가 있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청원에 동참해 줬으면 좋겠어요."
특히 지인들의 사진을 도용해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게시물을 올리는 일명 '지인 능욕'은 불특정인들이 아닌 친구 계정을 보유한 이들이 원본 사진을 보고,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수사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해자들을 검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더했다.
임소진 변호사는 "사법기관에서 사이버 범죄의 경우 오프라인에서 발생하는 사건보다 후순위로 다루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최근 n번방 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온라인상의 범죄 파급력과 이에 따른 피해자들의 고통을 감안하면 경찰의 적극적인 수사 자세와 함께 교육기관의 실태조사, 예방 교육들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