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은 전구를 갈아주거나 따뜻한 인사로 임차인 A씨를 맞이했다. 건물 청소와 관리가 깔끔해 김사장이 임대인으로부터 위임받은 오피스텔 매물은 날개 돋듯 팔렸다. 특히 김사장이 주로 거래하는 전세계약방식은 집이없는 사회초년생들에게 비싼 월세계약방식이 아니어서 큰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김사장 홀로 수많은 사기행각을 벌이기에는 부담스러웠다. 꼼꼼하고 똑똑한 예비 임차인들이 생각보다 많아, 범행이 자칫 탄로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금관리와 문서위조 등 완벽한 범죄를 위해 자신의 범행을 도울 조력자가 필요했다. 특히 오피스텔 매물을 가진 임대인 중에는 여성들도 많았기 때문에 같은 임대인으로 속이기 위해서는 여성 조력자가 적합했다.
김씨 일당의 범죄는 그칠 줄 몰랐다. 6년동안, 꿈을 가진 학생부터 이제 겨우 사회에 발을 내딘 직장인까지 부모와 은행에 빌린 수천만원의 전세자금을 죄책감없이 마구 써댔다. 진짜 임대인에게는 다달이 수십만원의 월세를 건네면서 안심시켰고, 임차인들에게는 인심 좋은 오피스텔 관리자인 척하며 속였다.
그러던 2018년. 몇몇 임차인이 그동안 전세자금을 되돌려달라고 하자 김씨 일당은 당황해하며 차일피일 현금 지급을 미뤘다. 임차인들의 전세자금을 족족 써버린 이들이 더 이상 '돌려막기' 할 돈이 수중에 없었기 때문이다. 임차인들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정작 주범 김사장은 경찰이 바로 잡지 못했다. 수사 낌새를 알아차리고 바로 필리핀으로 도주했기 때문이었다. 현지에서는 슈퍼에서 물품을 훔치다가 절도죄로 필리핀 경찰에 붙잡혔다. 김사장은 도주 9개월만인 지난해 5월 한국에 송환됐고, 법원은 지난 25일 사기·사문서위조·공문서위조 등의 혐의로 그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 공범 김도연씨는 항소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창원지방법원은 판결문에서 "처음부터 돈을 가로챌 목적으로 문서를 위조해 임대인으로부터 받은 대리권의 범위를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임대차보증금을 편취해 사기죄 중에서도 그 죄질이 좋지 못하다"며 "피고인에게는 다수의 범죄전력이 있으며 피해자들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양형이유를 밝혔다.
<이 기사는 법원 판결문과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