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추행에 항의 안해서 무죄?…대법 "강제추행 맞다"

"상대방 의사 반하는 유형력은 '추행'"

(사진=연합뉴스)
회식자리 기습 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즉시 항의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2심에 대해 대법원이 다시 판단하라는 결정을 내렸다.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이 행사됐다면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하고 범죄로 봐야 한다는 기존 법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26일 직장 회식자리에서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손으로 쓰다듬은 행위는 '기습추행'으로, 강제추행죄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을 맡은 창원지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미용업체를 운영하는 52세 남성인 피고인은 가맹점 직원이었던 피해자(28·여) 등과 회식을 하던 중 피해자를 옆자리에 앉히고 "일하는 것 어렵지 않냐. 힘든 것 있으면 말하라"고 귓속말을 하며 갑자기 볼에 입을 맞췄다. 놀란 피해자가 "하지마세요"라고 말했지만 "괜찮다. 무슨 일이든 해결해 줄 수 있다"며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1심을 맡은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볼에 입을 맞춘 행위와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 모두 유죄로 판단하고 벌금 500만원과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 등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을 맡은 창원지법 형사1부(류기인 부장판사)에서 두 행위 모두 무죄로 결과가 바뀌었다.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갑자기 피해자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는 피해자 진술은 신빙성이 부족해 그대로 믿기 어렵고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1심 판단을 배척했다. 당시 회식자리에 있었던 다른 직원들이 피고인이 피해자의 다리를 쓰다듬고 뒤에서 안는 등의 행위는 보았지만 입맞춤은 보지 못했다고 한 진술을 받아들인 것이다.


피고인이 피해자의 허벅지를 쓰다듬은 행위는 인정했지만 "폭행행위라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의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경우에만 강제추행죄가 성립한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 과정에서도 당시 현장에 있던 증인들이 "피해자가 그냥 가만히 있었다. 가만히 있었다는 것은 성추행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한 증언을 받아들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강제추행죄에는 상대방에 대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해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 추행하는 경우 뿐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이라고 인정되는 '기습추행'도 포함되며, 이때 '폭행행위'에 대한 해석은 더욱 섬세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기습추행은 추행과 동시에 저질러지는 폭행행위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기만 하면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는 것이 일관된 입장"이라고 재확인했다.

이에 기존에도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 위로 엉덩이나 가슴을 쓰다듬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어깨를 주무르는 행위 등을 기습추행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바 있다. 교사가 여중생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거나 여중생의 귀를 쓸어 만지는 행위 등도 피해자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이뤄진 기습추행의 사례다.

또 대법원은 2심에서 피해자가 추행에 반발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채택된 것과 관련해 "성범죄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더라도 강제추행죄 성립에 지장이 없다는 기존 법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이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즉시 거부의사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서, 피고인의 행위에 동의했거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지 않았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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