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 멈춤 위기" 언급 홍남기 부총리…그런데 대책은?

'L자 경로'부터 급기야 '멈춤 위기'까지…우려 키우는 기재부, '특단 대책'엔 미온

홍남기(가운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지난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차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홍 부총리 왼쪽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오른쪽은 은성수 금융위원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는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제가 대위기를 맞는 가운데 우리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에 대해 경제 당국이 드러내는 우려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특히,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용범 기재부 제1차관이 최일선에서 코로나19 파급 영향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재부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이전과는 확연하게 다른 강도의 우려를 처음 공식화한 건 지난 16일 김용범 차관 입을 통해서다.

이날 김 차관은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코로나19 사태가 종료된 이후) 글로벌 경제의 'V자 회복'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과거 감염병 사태 경우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일시적 충격 후 반등'을 뜻하는 V자 회복이 일반적이었던 만큼 이번에도 V자 회복에 대한 희망 섞인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전 세계적 확산으로 치닫자 기재부 차관이 V자 회복은 고사하고 'U자 경로'도 아니라 침체가 장기간 지속하는 'L자 경로'까지 우려한 것이다.

바로 다음 날인 17일에도 김 차관의 '중대 발언'이 이어졌다.

미국 뉴욕증시 대폭락 직후인 이날 기재부 거시경제금융 점검 회의에서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실물·금융부문 복합위기 직면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경고했다.

◇ 김용범 1차관 "'L자 경로' 우려…경험 못한 복합위기 직면 가능성"

홍남기 부총리도 가세했다.

지난 20일 홍 부총리는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코로나19에 따른 국내외 소비와 투자, 수출 파급 영향을 고려하면 1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발언 앞에 홍 부총리는 "정책당국자로서 말하기는 적절치 않지만"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대한민국 경제사령탑이 '1분기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처음 공식 언급한 것으로, '경기 침체·위축' 등과는 결이 전혀 달랐다.

23일에는 홍남기 부총리와 김용범 차관이 함께 나섰다.

김용범 차관은 이날 오전 거시경제금융 점검 회의에서 "주요국의 이동 금지 조치가 본격화하면서 글로벌 실물경제는 애초 예상보다 더 크게 위축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오후에는 홍남기 부총리가 그야말로 '폭탄 발언'을 터뜨렸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방침에 따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를 서면으로 대체하면서 우리 경제의 '멈춤 위기(sudden stop)'까지 언급한 것이다.

"기재부 전 직원이 우리 경제의 멈춤 위기 방지 등을 위해 더욱 긴장감을 갖고 선제 대응하는 노력을 기울여 달라"는 당부였다.

'멈춤 위기 방지'에 강조점이 있지만, 홍 부총리가 현 사태를 얼마나 엄중하게 인식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낸 발언이다.

◇ 홍남기 부총리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경제 멈춤 위기 방지"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와 기재부가 이토록 엄중한 상황 인식에 걸맞은 위기 극복 대책을 적시에 내놓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11조 7000억 원 규모 코로나19 추경이 지난 17일 국회를 통과하자 홍 부총리는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고 절박함 속에 마련·확정된 추경"이라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추경은 편성을 주저하는 홍 부총리를 청와대와 여당이 견인해 마련한 성격이 짙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례없는 비상상황에 전례 없는 대책'을 거듭 강조했지만, '전례 없는 대책'이라고 부를 만한 대책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이 직접 위기 대응을 주도하겠다며 '비상경제회의'를 꾸리고 나서야 50조 원이 넘는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프로그램이 발표될 수 있었다.

코로나19 추경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2차 추경' 필요성이 제기되는 상황이 분명 정상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또한 그만큼 현 상황이 더없이 절박함을 웅변하는 것이다.

하지만 2차 추경 편성에도 홍 부총리는 코로나19 추경 때처럼 신중한 태도를 반복하고 있다.

홍 부총리는 특히, 내수 회복과 민생 안정을 위한 전례 없는 대책으로 관심이 집중된 재난기본소득에는 강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도 홍 부총리는 형평성과 효율성, 막대한 재원 문제 등을 거론하며 "전 국민 지급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장하준 교수 "한국 재정 관료 '건전 재정 강박 관념' 안타까워"

형평성과 효율성을 함께 거론했지만, 홍남기 부총리와 기재부가 재난기본소득에 미온적인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재원 문제' 즉, '재정건전성'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기재부에 재정건전성은 '금과옥조'에 다름 아니다.

코로나19 추경 편성과 관련해 가장 크게 논란이 된 것도 재정건전성이었다.

이와 관련해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경제학부 지난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한국 재정 관료들의 '건전 재정 강박 관념'이 안타깝다"고 꼬집었다.

장하준 교수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40%를 조금 넘는 한국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게 재정이 건전한 나라"라며 이 같이 말했다.

"지금 상황이 거의 준전시인데 2차대전 때 영국이나 미국에서 '재정 적자 나니까 히틀러랑 적당히 싸우자' 이랬으면 지금 세상이 어떻게 됐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18일 서울시 자체적인 재난기본소득 도입을 발표하면서 "시민이 없는 건전 재정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고 기재부를 정면으로 겨냥했다.

'우리 경제 멈춤 위기'까지 언급한 홍남기 부총리를 비롯해 김용범 차관도 그리고 기재부도 지금 상황이 준전시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 경제팀이 내놓는 대책에서 준전시 상황을 인식하기는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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