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두고 통합당과 신경전 끝에 전날 한선교 전 대표가 사퇴한 점을 고려해 공천관리위원회 전면 교체 등 ‘한선교 체제’ 지우기에 나선 분위기다.
한 전 대표가 황교안 대표로부터 청탁을 받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오면서 일각에선 기존 비례대표 후보군의 반발 등 돌발 변수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전날 지도부 총사퇴로 공백 상태가 된 한국당은 이날 오전 의원총회를 열고 원 의원을 원내대표 겸 당대표 권한대행으로 추대했다. 최고위원은 정운천·장석춘, 사무총장 염동열, 정책위의장 김기선, 상임고문은 정갑윤 의원이 맡기로 하는 등 지도부 구성을 마쳤다.
원 대표는 새 지도부 구성 직후 공병호 공관위원장이 이끌던 공관위를 해산시켰다. 새 공관위원장에 배규한 백석대 석좌교수를 임명하고, 염동열‧조훈현 의원이 공동 부위원장을 맡는 등 총 7명으로 공관위를 구성했다.
지난 16일 통합당의 위성정당인 한국당 비례대표 후보 40여명이 담긴 후보 명단이 공개되면서 한 전 대표와 당내 최고위원들, 통합당 사이에 첨예한 갈등이 표출된 바 있다. 통합당 황 대표 측은 통합당이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대부분이 당선권(20번) 밖으로 밀려나자 강력 반발했다.
이 때문에 통합당 측에선 이같은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황 대표가 ‘믿을 수 있는’ 인사들을 한국당으로 보내 위성정당을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사퇴한지 하루 만에 한 전 대표의 폭로성 발언이 나오고 공 전 위원장 또한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는 등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전 대표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이 황 대표로부터 박진·박형준 전 의원의 비례대표 공천을 요구받았다고 폭로했다. 공 전 위원장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 또한 해당 의혹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전 대표로부터 들었다고 거들었다.
공 전 위원장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황 대표가 한 전 대표에게 박형준 비례대표 임명 요청을 한 것은 검찰이 수사를 하면 얼마든지 증거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한 전 대표 말대로 나중에 다 밝혀지면 황 대표가 감방에 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비례대표 명단 교체 움직임과 관련해 “후보를 선출할 때는 공관위 회의록을 다 남기는데, 그걸 뒤집기 위해선 입증할 자료가 있어야 한다”며 “아무 근거 없이 후보를 바꾸면 탈 없이 넘어갈 수 있겠냐. 대개 권력이 몰락할 땐 작은 사건이 시초가 된다”고 말했다.
새 지도부가 과거 지도부의 결정을 묵살하고 대대적인 손질을 가할 경우, 추가적인 폭로나 대응을 시사한 의미로 읽힌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과 통합당은 잘 아는 것처럼 자매정당”이라며 “그에 합당한 논의들이 있을 수 있고, 도를 넘는 것들은 없었다"고 답했다.
새 지도부의 명단 수정으로 인해 기존 비례대표 후보들이 당선권(20번) 바깥으로 대거 밀려날 경우 발생할 부작용도 우려된다.
몇몇 후보들이 도덕적 논란 등으로 인해 1차 수정 명단에서 배제되긴 했지만, 나머지 후보들은 공 전 위원장이 이끌던 공관위의 면접 심사를 통해 결정됐기 때문이다. 새 지도부의 명단 변경이 결국 통합당의 인재들을 밀어 넣기 위한 수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선교 사태’를 교훈 삼아 이번엔 황 대표와 신뢰가 두터운 인사들을 한국당에 포진시킨 것으로 보이지만, 돌발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오는 27일 후보등록 마감일까지 물리적으로 시간이 촉박한 만큼, 공천 작업 도중 사소한 갈등이 터져 나오기만 해도 자칫 비례대표 공천 일정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당내 한 중진의원은 통화에서 “상황이 여기까지 몰리도록 지도부가 대체 일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며 “한선교 쿠데타를 진압했지만, 제2 쿠데타가 터지면 통제 불능 상태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