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뭇매에도 또 '뒷북' 대책…금융시장 패닉

시의성 놓친 대책에 주가 끝없이 추락, 환율 고공행진
시총 632조 증발에 개인투자자 속수무책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가운데)이 19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비상경제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은성수 금융위원장.(사진=황진환 기자)
코로나19의 전세계 확산으로 글로벌 증시가 폭락하고 국내 주식시장도 연이어 바닥을 치는 등 위기감이 고조되자, 정부는 공매도 금지·금리인하·국고채매입·채권안정 펀드조성 등의 대책을 잇달아 발표했다.

하지만 예견된 재앙에도 뒤늦게 대책을 쏟아내면서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비판이 거세다.

◇대책 내놓을 때마다 '뒷북'…대책 내놔도 시장은 '요동'

국내 주식시장이 끝도 모를 추락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코스피는 전날 8% 넘게 폭락해 1,500선마저 내주고 1,450대까지 후퇴했다. 코스피가 종가 기준으로 1,500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지난 2009년 7월 23일(1496.49) 이후 약 10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환율도 폭등하며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85원에 마감하며 1300원 선도 위협했다.

19일 정부는 코로나19 피해를 입은 중소기업 및 소상공인, 취약계층 등에 대한 지원과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50조원 규모의 금융대책을 발표했다.

금융시장 안정 분야에 10조원 이상의 채권시장안정펀드 재가동과 증시안정기금 마련 등의 계획을 담았다. 하지만 당장 투입이 아니라 추후 2차 비상경제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도 또 ‘또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권의 공동 출자를 기반으로 우량 회사채에 투자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다. 증시 안전기금은 증시가 급락할 경우 이를 막기 위해 주식 매입에 나설 목적으로 조성되는 공공기금이다.

정부 대책에 앞서 공매도 전면금지, 증시안전기금 즉시 투입 등을 주장해온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정의정 대표는 “만날 예의주시한다고 하면서 정부의 컨틴전시 플랜에는 뭐가 들어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며 “증시안정기금을 즉시도 아니고 상당기간 있다가 투입한다는 건데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다”고 지적했다.


19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지수가 전일대비 133.56포인트(8.39%) 내린 1457,64을 나타내고 있다.(사진=이한형 기자)
◇1조원 빠져나간뒤 공매도 금지, 뒷북 대책 불구 '틈새'도 발생

앞서 공매도 금지 대책을 발표했던 타이밍을 두고도 이미 공매도 세력이 1조원 이상의 주식을 팔고 나간 뒤 나온 대책이라는 뭇매를 맞았다. 당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실기(失期) 지적에 "겸허하게 비판을 받아들인다"라며 "우리가 앞으로 급락 상황이 왔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한시적 공매도를 금지하는 부분이 맞았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뒤늦은 공매도 전면금지 대책도 시장조성자 제도를 통한 공매도는 허용하면서 공매도 거래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닷새 뒤 부랴부랴 시장조성자 제도와 관련한 내용 변경에 들어갔다.

금리인하도 ‘한 발’ 늦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은행은은 지난달 27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1.25%로 동결했다. 미 연방준비제도 이사회가 지난 3일 0.5%포인트 금리 인하한 데 이어 16일 추가로 ‘제로금리’수준으로 인하하자 한은도 그날 급히 금통위를 열고 0.5%포인트 금리 인하를 결정했다.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이 발 빠르게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것과는 상반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지난달 미 연준보다 앞서 기준금리를 인하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너무 신중했다는 평가다.

이같은 늑장대응에는 이번 코로나19 확산이 장기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이함도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확산이 시작된 지 두 달이 다 돼서야 ‘비상경제 시국’을 선언했다. 그 사이 지난 1월 20일 이후 국내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632조 830억원이 증발했고 환율은 10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김형렬 교보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심리를 안정시키는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고 메시지를 해 봤자, 이미 시장이 기능을 상실하는 과정에서 쓰여지면 정책의 시의성을 놓친 것”이라며 "시의성을 놓치게 되면 앞으로 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김 센터장은 “미국도 1조달러를 풀겠다고 했는데, 실현이 될지는 모르지만 시장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의 경우 1차 추경, 2차추경 등 몇 차 추경까지 할지 알 수 없는 메시지만 전달하고 있다. 말 그대로 시장에 대한 자생력만 신뢰하는 상황인데 지금은 시장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에서는 미국에서도 정부 대책이 약발이 들지 않는 것처럼 지금 상황에서는 대책이 먼저 나왔다고 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평가도 있다.

이종우 이코노미스트는 “한 달 사이 미국이 이렇게 요동 칠 거라는 걸 아무도 예상 못했다. 세상이 급변하는 걸 미리 대비하는 건 불가능하다”며 “상황이 워낙 급변하기 때문에 대책을 빨리 내놨다고 해도 큰 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봤다.
(그래픽=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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