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은 국경 문 닫지만…특별입국절차 확대 선택한 한국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유럽·미주 대륙 등 세계 곳곳에서 국경 차단
한국, 입국 금지 대신 입국자 모니터링하는 특별입국절차 확대 선택
외교적 부담 줄고 해외 유입 우려 커졌다지만
사태 초기 아닌 팬데믹 시점에선 오히려 현실성·실효성 낮은 대안

지난 13일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 입국장에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날 하루 동안 김포공항 국제선 스케줄은 한 편도 없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코로나19의 '팬데믹(pandemic·세계적 대유행)' 상황 속에 해외 주요 감염 국가들이 잇따라 국경을 차단하고 외국인 출입을 막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국경의 빗장을 닫는 대신 입국자들의 건강을 꼼꼼하게 살피는 특별입국절차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외국인 돌려보내는 유럽·미국…한국은 입국금지 대신 특별입국절차 확대 선택

정부는 오는 19일 0시부터 입국자의 증상 여부를 추적하는 특별입국절차를 전세계에서 입국한 모든 내·외국인에게 적용한다.

이와 달리 해외에서는 최근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유럽은 물론, 미주 대륙 국가들까지 국경을 봉쇄하고 외국인의 입국을 막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하나의 유럽'을 강조하며 유럽 내 국가 간의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했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6일 30일 동안 외국인의 EU 여행을 금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발맞춰 EU의 두 축인 독일과 프랑스를 비롯해 주요 유럽 국가들이 차례차례 국경을 막기 시작했고, EU 가입국은 아니지만 러시아도 18일부터 외국인 입국을 전면 차단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11일 유럽으로부터의 입국을 차단했고, 캐나다도 18일부터 미국인을 제외한 외국인의 입국을 막기 시작했다.

코로나19가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중남미도 국경 봉쇄조치를 선제 시행하기 시작했다. 칠레와 과테말라는 15일 동안, 콜롬비아는 오는 5월 말까지 국경을 폐쇄하기로 했고, 페루도 지난 17일부터 모든 출·입국을 차단한 상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중국 후베이성에 내렸던 기존의 입국금지 조치를 더 확대하는 방안은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부본부장은 17일 "우리나라 입국 국민이 많고, 필수적인 이동이 있기 때문에 이를 합리적, 이성적으로 걸러내는 대책을 취하고 있다"며 이처럼 밝혔다.

◇외교적 부담 줄고, 해외 환자 유입 우려 커지는데…입국금지 확대 가능할까?


로마 명소 트레비 분수 앞 마스크를 쓴 관광객들. (사진=연합뉴스)
해외 코로나19 환자 유입을 막기 위한 국경 봉쇄, 혹은 특정 지역·국가 입국자에 대한 입국금지의 필요성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거론됐다.

특히 정부가 중국 전역을 입국금지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은 바람에 정부의 초기 방역 대응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주장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당시 정부의 발목을 잡은 주요 요인 중 하나는 방역 효과에 비해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는 판단이었다.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도 우려될 뿐 아니라, 한국의 수출입 1위 국가인 중국과의 인적 교류를 완전히 끊으면 코로나19 피해보다 경제적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우려였다.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미 주요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국경을 봉쇄하고 있어 우리나라가 입국금지 조치를 확대하더라도 코로나19 사태 초기처럼 외교적 부담이 크지는 않다.

입국금지 확대를 고민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지점은 해외의 빠른 코로나19 확산세다.

최근 정부는 대구·경북에서 급증한 코로나19 환자가 크게 줄면서 국내의 산발적인 소규모 집단감염과 함께 해외로부터의 환자 유입이 새로운 위험요인이라고 수차례 지적해왔다.

실제로 지난 17일 0시 기준 해외에서 국내로 유입된 코로나19 환자는 총 55명인데, 최근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유럽에서 온 입국자가 27명으로 중국을 거쳐 온 확진자(16명)보다 약 1.7배 더 많다.

게다가 실제 코로나19 감염 추세와 잠복기를 지나 증상이 발현한 환자를 방역당국이 잡아낼 시차가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 환자 유입 우려는 갈수록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장기간 국경폐쇄 사실상 불가능…입국금지 시행해도 효과 크지 않아"

코로나19 확산 사태 방지 차원에서 미국행 비행기 탑승 시 국적과 상관없이 출국 검역 절차가 적용된 지난 11일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검역 조사실에서 미국행 탑승객이 건강상태질문서를 작성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그럼에도 국경봉쇄나 입국금지 확대 조치가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유는 우선 아직 해외보다 한국이 더 안전하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국이 해외보다 인구 대비 환자 밀도가 더 높고 위험하다면 굳이 외국인의 입국을 차단할 필요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16일 하루에만 84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얼핏 900여명에 달했던 기존 확산세나 최근 수백명씩 급증하고 있는 유럽, 미국 등에 비하면 적은 수처럼 느껴지지만, 여전히 한국은 주요 코로나19 발생국가 중 하나다.

권 부본부장은 "지난 1월 20일 첫 코로나19 국내유입 사례를 발견한 후 30번째 사례를 찾아내기까지 거의 한 달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 지금은 하루에 하나의 지자체에서도 30건이 넘는 사례가 발생한다"며 "이는 무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서울대병원 김남중 감염내과 교수도 "유럽과 한국 중 어느 곳이 더 코로나19 환자가 많이 확산됐는가, 경제적인 실익은 어떤가 등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검토하고 결정해야 하는 어려운 문제"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미 전 세계로 코로나19가 퍼진 시점에서 입국금지를 확대하는 것만으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도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환자 본인이 자극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상이 경미할 때에도 감염이 가능한 코로나19의 특성까지 감안하면, 전면적인 국경봉쇄가 아니라면 검역조치를 아무리 강화해도 외국 환자 유입을 100%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전면적인 국경봉쇄'가 실현 가능한 대안이냐는 점이다. 고대 안산병원 최원석 감염내과 교수는 "입국금지 등이 실질적인 방역적 효과를 거두려면 2, 3주 동안 중국 등 일부 국가만 막아서는 택도 없다"며 "팬데믹 상황에서는 몇 달 이상 전 세계의 입국자를 막아햐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외국인과 내국인의 위험 수준이 비슷하고, 국내에도 감염 경로가 알려지지 않은 감염 사례가 있다"며 "같은 논리라면 국내에서도 국민의 이동을 모두 막아야 '안전'하겠지만, 이것이 가능한 얘기겠느냐. 입국금지, 국경 봉쇄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해외의 국경봉쇄·입국금지가 한국의 특별입국절차보다 더 강력한 조치라는 생각부터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한국처럼 침착하게 입국자를 모니터링할 수 없는 나라들의 '최후의 선택'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한국의학연구소 신상엽 학술위원장은 "국경 봉쇄는 방역조치를 하다 하다 안될 때 감당하지 못한다고 선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해서는 안될 일"이라며 "솔직히 선진국이라면 모두 우리처럼 잘할 줄 알았는데, 그렇게 못하니까 자신들의 방역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한 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입국금지 조치는 감염병 사태 초기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병이 퍼질수록 효과가 떨어진다"며 "게다가 한국은 이미 입국금지 대신 방역강화를 선택했는데, 이제 와서 방역체계를 다시 세우는 작업 자체가 비효율적이고 당국이 검역 체계를 다시 만들 여유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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