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정치 속살] 워런은 블룸버그의 논개였나

유력 대선주자 블룸버그와 워런은 어떻게 동반 몰락했나

마이크 블룸버그와 엘리자베스 워런 두사람의 운명을 가른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회 한 장면(사진=NBC캡처)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꼽혔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5일(현지시간) 경선 포기를 선언했다.

마이크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경선 중도 포기를 선언한지 하룻만이다.

두 사람은 한 때 가장 핫한 민주당 대선 후보였다는 공통점 외에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은 절대 살 수 없는 공동 운명체라는 특징을 가졌다.

두 사람이 동반 몰락의 첫 걸음을 뗀 것은 2월 19일 치러진 민주당 대선후보 TV토론이었다.

그 날은 블룸버그의 TV토론 데뷔무대였다.

대선에 늦게 출마한 탓에 대의원을 단 한명도 확보하지 못해 TV토론에 오를 자격을 갖추지 못했지만, 막대한 정치광고 덕에 전국적인 여론조사에서 10%이상을 4회 획득한 것이 그를 토론 무대로까지 인도했다.

급격한 지지 확산세를 등에 업고 TV토론장에 선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도 극에 다다랐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후보들도 견제 역시 극심했다.

후보들 가운데 블룸버그를 가장 벼르고 있던 사람은 바로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

워런은 블룸버그의 과거 인종차별적 정책과 여성차별 등의 추문을 집중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뉴욕시장 시절 흑인과 히스패닉(라틴계 미국인)을 겨냥한 '신체 불심검문'(Stop and Frisk)을 강화한 일, 또 블룸버그의 회사에 근무하던 임신한 여직원에게 "그것(아이)을 죽여버려(Kill it)"라고 말하는 등 여성차별과 성희롱을 일삼은 전력 등을 문제 삼았다.

그 가운데 압권은 이것이었다.

"나는 우리가 대항하는 후보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 후보는 여성을 '살찐 계집', '말의 얼굴을 가진 레즈비언'이라고 부르는 억만장자입니다. 내가 얘기하는 사람은 도널드 트럼프가 아니라 블룸버그 시장입니다"

워런의 촌철살인은 실로 대단한 위력을 발휘했다.

그날 밤 트위터에는 블룸버그에 대한 아래와 같은 풍자적인 부음기사가 삽시간에 퍼졌다.

사망일자: 2020년 2월 19일
사망장소: 민주당 토론장
사망원인: 엘리자베스 워런

그로부터 2주일 뒤 블룸버그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했던 슈퍼화요일이 왔다.


그는 그 이전 4차례의 예비선거를 모두 포기한 채 6600억원의 광고비를 집행하며 슈퍼화요일에만 몰두해왔다.

그러나 완패였다. 14개 주 가운데 단 한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많은 패인이 언급됐지만 '워런의 저격'이 가장 컸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가디언은 "워런이 단 60초만에 블룸버그의 6600억원 광고를 박살내버렸다"고 촌평했다.

하지만, 블룸버그의 죽음이 자신의 죽음으로 직결된다는 걸 워런도 모르고 있었다.

워런 역시 슈퍼화요일 14개 주 가운데 1개의 주도 건지지 못했음은 물론 자신의 지역구인 매사추세츠주에서도 바이든에게 밀리고 말았다.

블룸버그는 애초부터 조 바이든의 구원투수로 출마한 케이스였다.

블룸버그는 하자는 없지만 그렇다고 결정적인 한방도 없는 조 바이든이 버니 샌더스에게 침몰당할 때를 대비해 대선에 출마했다는 분석이 많았다.

하지만 바이든이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과 슈퍼화요일을 거치면서 흑인표를 징검다리 삼아 엄청난 뒷심을 발휘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사실 바이든은 그의 대체제로 인식됐던 블룸버그가 TV토론으로 죽자 다시 부활했다고 봐야 맞다.

하지만 블룸버그를 재물삼은 바이든의 무서운 부활은 워런에게도 사망선고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워런은 바이든을 살리기 위해 블룸버그를 끌어안고 포토맥강으로 뛰어든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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